아내의 일은 손을 많이 쓰는 일이다.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 손을 쓰면서 일을 한다. 그래서 항상 어깨가 뭉치고 손목이 아프고 심하면 목 디스크까지 오는 경우가 있다.
일하는 데 있어 아내의 필수품은 손목 밴드이다. 손목 밴드를 깜박 잊고 출근하는 날이면 꼭 어디선가 사서 직장에 출근한다. 그렇게 쌓인 여러 개의 손목 밴드를 볼 때면 아내의 고단함이 느껴져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둘째를 낳고 나니 육아의 강도가 훨씬 세졌다. 게다가 직장 일도 힘들어져 아내의 건강이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일하는 날짜를 조금 줄여서 어떻게든 일과 육아를 병행하려고 해 보았지만 이미 균형을 잃어버린 아내의 몸 상태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눈이 펑펑 오는 날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해본 결과 의사는 손목 터널 증후군이 의심되고, 목 디스크가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아직은 수술할 단계는 아니지만 쉬지 않으면 더 악화될 것이라고 했다. 아내의 손을 꼭 잡고 결국 당분간 일을 쉬기로 결정했다.
사실 난 아내가 일을 그만두면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 두려웠다. 부모 도움 없이 둘만의 힘으로 겨우 버텨내고 있었는데, 아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방법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아내가 일을 계속하도록 하기 위해 부모님에게 도움을 요청해 7년간을 같이 살았고 이런저런 비용을 추가로 부담하였다.
하지만 실제로 맞벌이를 그만두고 나니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돌파구가 보였다. 우선 부모님과 분가를 했다. 더 이상 육아의 지원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맞벌이를 위해 시간이 부족해서, 체력이 감당이 안돼서 썼던 돈들을 줄였다. 수입이 크게 줄었지만 맞벌이에 드는 비용도 상당 부분 줄어들었다.
가장 큰 것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스트레스가 크게 줄어들자, 집이 '전쟁터'가 아닌 '휴식처'로 바뀌었다. 퇴근 후 집으로 가는 길은 마치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행복했다. 집은 하루의 고단함과 피로를 사라지게 하는 나의 오아시스가 되었다.
그때, 나는 크게 깨달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언제든지 아내가 일을 그만둘 수 있도록 아내의 월급이 생활비나 장기적인 저축 등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모든 계획을 조정했다. 내 월급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도 남도록 비용을 줄여나갔다.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는데 막상 닥치니 가능했다. 욕심을 줄이고 하나 둘 내려놓고 나니 방법이 있었다. 아내와 나는 많이 후회했다.
그렇게 3년 정도가 흘러 아내는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임시로 며칠 일을 하고 돈을 벌어왔을 때 우리는 뛸 듯이 기뻤다.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후 아내가 정기적으로 일을 하고 나서는 매월 계획에도 없는 보너스가 들어온다. 한 달에 백만 원, 2백만 원 매월 보너스가 들어올 때면 우리 마음도 풍요로워진다.
그렇지만 다시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다시 일할 때는 일주일에 3일을 넘기지 않도록 했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져 다시 일주일에 2일로 일을 줄였다. 일을 조절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아내가 참으로 다행스럽다.
돈을 공부하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서는 안된다'는 교훈이 우리 부부가 깨달은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건강이 나빠지고 나서야 맞벌이를 그만둔 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돈이 그렇게 많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 돈은 있으면 좋고, 많으면 더 좋다. 하지만 얼마나 많아야 할까? 어디까지 모아야 우리가 필요한 '자유'에 도달할 수 있을까?
우리가 갖는 불안감과 두려움에 비해 훨씬 더 적은 돈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내의 보너스 말고도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이 세상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넓고 많은 기회가 있지 않을까?
나는 새로운 돌파구를 위해 다시 한번 열심히 살기로 결심한다. 생각지도 못한 길을 발견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거위를 키워내는 상상을 한다. 직장이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는 지금 아직 기회와 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