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는 내 모습도 나

어떤 모습은 조금 더 힘이 들고, 어떤 모습은 편하고 그런 거지

by 케잌

1. 미팅에서 많은 말을 하고 돌아온 날이면 기력이 쇠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특히 아주 매끄럽게 잘 진행된 미팅 이후에 그 정도가 심했다.

2. 예를 들어, 꽤나 좋은 인상을 남긴 인터뷰라던지, 성공적으로 끝난 협업 미팅이라던지,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사적 만남 같은 것들 이후에 나는 유독 힘이 드는 걸 느꼈다.

3. 말을 그렇게 많이 하지 말 걸, 그런 말은 하지 말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오고, 모두가 좋아했던 바로 그 대화 속의 나 자신이 정작 나에게는 생소하고 이질적이고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았다.

4. 내가 기본적으로 내향적인 사람이어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대화가 진행되는 그 자리에서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대화를 주도하고,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에 아무 어려움이 없다.

5. 힘이 드는 건 미팅이 모두 끝난 이후에 그 대화를 곱씹어 보면서다.

6. 지나치게 나를 드러낸 것 같고, 내가 아닌 모습으로 너무 애를 쓴 것 같고, 나에게 없는 텐션을 끌어올리느라 에너지가 모두 고갈되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7. 결국 대화의 좋은 ‘결과’를 위해, 상대에게 인정받기 위해 내가 아닌 사람이 되었다는 자괴감이 가장 컸던 것 같다.

8. 하지만, 그렇게 애쓰는 내 모습도 나의 한 부분이고, 때때로 사회생활에서 요구되는 모습의 가면을 쓰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9. 나는 다층적인 사람이므로 한 치의 오차 없는 일관된 ‘진짜 내 모습’이라는 것이 있을 수도 없고, 모든 순간, 모든 관계에서 내가 생각하는 ‘진짜’ 내 모습을 드러낼 필요도 없다.

10. 그저 그것이 너무 반복되고 오래 지속되어서 나 혼자 있을 때조차 진짜 내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을 지경만 아니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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