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배우지 않아도 잘 할 것이라는 착각
좋아해서 챙겨보던 콘텐츠 중에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무명 가수들에게 무대에 설 기회를 준다는 컨셉으로 진행된 오디션 예능 프로그램인데요, ‘다시 한번 꼭 무대에 서 보고 싶었다’며 눈물을 흘리는 참가자들을 보면 괜히 따라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사실은 그게 무슨 마음인지도 모르면서요.
옆에서 같이 보고 있던 남편에게 물었어요.
‘나에겐 저렇게 절실한 무언가가 있나? 내가 10년이 지나 눈물을 흘리며 ‘클릭률을 다시 한번 높이고 싶었어요’라고 말하는 거랑 마찬가지 아냐(제가 가장 오래 한 일은 퍼포먼스 마케팅입니다)? 자기의 정체성을 설명할 일을 가진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제가 하는 대부분의 요상한 질문에 그러하듯, 남편은 ‘뭐라는 거야'와 같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평생의 열정을 마음에 품고 사는 인생에 부러운 마음이 들다가도, 그런 인생만 소중한 건 아니라고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라’는 말은 참 멋있게 들립니다.
하지만, 저 말에 가슴이 뛰기보다 막막해지는 저 같은 사람도 있을 테죠.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말라고 막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뭘 하고 싶은지 참 모르겠어요. 그래서 ‘나는 OO 하는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자신의 정체성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보면 주눅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 분야에서 대단히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자기가 원하는 걸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멋져 보이니까요.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안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일 같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단번에 해답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더 그래요.
우리는 정작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는 배우고 연습하지 않고도 잘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기획/마케팅/프레젠테이션/외국어 같은 것들은 참 열심히도 배우면서, 내가 좋아하는 걸 찾는 법 같은 건 본능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막상 뭘 좋아하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적잖이 당황하게 되고요.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안 해본 일, 새로운 일, 재밌어 보이는 일을 계속 시도해 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살면서 그럴 기회가 너무 적었잖아요. 눈앞의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데에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 버려서 다른 삶을 탐색하는 데에 쓸 기력이 남지 않기도 하고요.
'사람들은 자유시간을 즐기는 것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며 별다른 기술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자유시간은 일보다도 즐기기가 어렵다.
여가를 효과적으로 쓰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여가가 아무리 생겨도 삶의 질은 높아지지 않는다.
그리고 여가를 효과적으로 쓰는 것은 자동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타임 푸어' - 브리짓 솔트>에서 재인용
자신의 취향과 욕구를 계속해서 탐구하는 자세, 기꺼이 시도해 보고 시행착오도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마음은 결국 ‘잘 노는 것'과 맞닿아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잘 노는 것 역시 연습이 필요한 일이에요.
즉각적인 재미를 주는 무언가를 소비하는 건 손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어떤 것을 즐기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 좋아하는 것을 찾을 때까지 기꺼이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일은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이에요. 그래도 꼭 필요한 일인 것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오롯이 한 곳에 열정을 품고 살아가는 인생은 제 것이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해서 즐거운’ 일들을 조금씩 만들어가며 사는 인생은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공들여 쌓아 올린 탑 같은 인생도 멋지지만, 좋아하는 걸 잔뜩 이어 붙인 꼴라쥬 같은 삶도 괜찮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놀아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