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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잌 Feb 06. 2024

밀려나는 기분에 대해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네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은
내가 세상의 중심에서 가장 밝게 빛나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확한 출처가 기억이 나지 않지만(저는 출처도, 문장도 대충만 기억하는 못된 버릇이 있습니다), 위의 문장을 읽고 무언가 마음이(그리고 늘 뭉쳐있던 어깨가) 편안해지는 걸 느꼈어요. 


30대 후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구체적인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저는 그때쯤 제가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회사에서도 후배들이 크고 작은 행사의 주축이 되는 것을 보면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구나라고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그동안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다가 조금씩 멀어지면서 제가 서 있는 곳의 조도가 낮아지는 기분이었달까요? 


나이가 들수록 중요한 자리에서 ‘밀려나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많이 안 쓰는 것 같지만, 자라며 종종 들어왔던 ‘뒷방 늙은이'라는 표현에는 중심에서 밀려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가 배어있습니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저는 단 한 번도 세상의 중심에서 빛난 적이 없어요. 하지만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살았던 것 같습니다. 세상은 젊은이들에게 ‘너의 노력과 잠재력에 따라 세상이 네 것이 될 수도 있음’을 항상 주지 시키니까요. 마치 세상이라는 무대가 있고, 그 중앙에 오르면 모두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처럼 말이에요.


동시에 온 세상이 제가 망하나 안 망하나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것만 같기도 했습니다. 저의 잠재력을 재보고 드러나는 성과를 체크하고, 제 또래의 수많은 이들과 비교하는 누군가가 있는 것만 같았어요. 그걸 항상 의식하며 살았던 건 아니지만, 은연중에 저의 말과 행동과 외모를 늘 남의 시선과 평가 아래 두고 있었을 거예요. 


마흔의 저는 그 부담을 조금은 내려놓았습니다. 도대체 어디가 세상의 중심인지도 모르겠고, 제가 뭐 하러 거기 가서 환하게 빛나고 있어야 하나 싶어요.  


조도를 살짝 낮춘 지금의 제 생활은 편안합니다. 제 눈은 더 이상 세상의 중심을 향해 있지도 않아요. 메인 무대에 지금 누가 올라서 있는지 모르겠고, 제 알 바도 아니지요. 제 삶에는 오로지 제 무대만 있고, 오늘 밤이나 내일 밤이나 그 무대의 주인공은 오로지 나야나입니다. 


제가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느냐가 지금은 가장 중요해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다정한 사람이 되어주고 있는지가 핵심 성과지표고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 안에는 저 자신이 포함되어 있으니까, 스스로에게 친절하게 구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제가 영원한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얻은 것만 같지만 현실은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제 삶과 지지고 볶고 사투를 벌이고 있어요.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사나, 나만 이렇게 헤매고 있는 건 아닌가 그렇게 궁금할 수가 없어요. 다른 사람의 삶을 기웃거리다 보면 제가 영 잘못하고 있는 것만 같고요. 남의 말에 휘둘리고, 끝도 없이 비교도 하고, 나만 망한 것 같아…라는 생각도 하루 걸러 한 번씩 합니다. 


그래도 결국 제 몫의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걸 기억하려고 해요. 제 삶에 만족하는 것도, 불평하는 것도 결국엔 저니까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이유로 세상의 기준에 맞춰 살지는 않으려고 고집스럽게 망하는 중입니다(?). 


나이가 들면 무대에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이제 그만 내려놓아요.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자기 무대 위에 서는 거예요. 휘황찬란한 뮤지컬 공연을 올리든 모노로그를 하든 알아서 하세요.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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