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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잌 Feb 16. 2024

하고 싶은 일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 하는 이유

매일 틀에 박힌 일상 말고, 뭔가 재미난 일 없을까?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고 싶은데…

좋아하는 취미를 잔뜩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좋겠다…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날들이 점점 쌓여 갑니다.


재미있는 일, 새로운 일, 좋아하는 일의 문제는, 그것이 ‘해야 하는 일’을 없애주지 않는다는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내고 부가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야 할 일은 언제나 밀려들고,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내고 마침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 같은 건 영원히 오지 않아요. 콩쥐가 밑 빠진 독에 물도 다 채우고, 자갈밭에 김도 매고, 베도 다 짜놓고 난 다음 잔치에 참석하기란 불가능한 것처럼요(마법의 두꺼비가 있지 않는 한 말이에요). 


어쩌다 짬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일을 할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시간이 없거나 에너지가 없거나, 아니면 아주 높은 확률로 둘 다 없거나... 일상이 해야 하는 일로만 가득 차는 이유입니다. 


할 일을 대신해주는 사람도 없고, 가만히 뭉갠다고 일이 사라지지도 않는데 거기에 더해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해야 하는 일 + 재밌는 일 = 무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죠. 


퇴사를 하고 쉬는 동안 새로운 일을 여럿 시작했어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PT 받고, 농구 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도 시작해 보고(몇몇은 망했습니다), 각종 취미활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거 사실 다 회사 다니면서 할 수 있는 일이잖아?’


하지만 다시 일을 시작하고 나서, ‘회사 다니면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버거워지기 시작했어요. 나 좋자고 스스로 시작한 일이 시간이 지나면서 괴로운 일로 변하는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저는 ‘하고 싶은 일’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싫어하고요. 한동안 그게 참 기이하다고 생각했어요. 


엄밀히 따지자면 제 하루가 그렇게까지 바쁜 것은 아닙니다. 이리저리 일정 테트리스를 잘한다면 분명 한 두 가지 일 정도는 더 끼워 넣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멍하니 허비하는 시간을 따져보면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죠.


하지만, 저는 로봇이 아닙니다. 제가 멍하니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날려 보낸 1시간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거나, 밖으로 나가서 몸을 움직이는 시간으로 바꿀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좋은 걸 몰라서도, 하고 싶은 마음이 부족해서도 아니에요. 저에겐 에너지가 부족합니다. 몸의 에너지가 부족한 순간도 있고,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고 마음도 쓸 수 없는 순간도 종종 있을 거예요.


회사 업무를 하고, 집안일을 약간 하고, 소소한 행정적인 일들을 처리하고, 가족이나 지인과의 관계를 그럭저럭 챙기다 보면 에너지를 모두 소모하고 맙니다. 뭐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나라를 구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것도 아닌데, 그것만으로 왜 이렇게 힘이 들까요?


더 할 수 있는데 왜 못할까,라고 자책하던 순간도 많았어요. 


이유야 어찌 됐든 지금 하루에 해내는 일의 양이 현재 나의 에너지 레벨에 적절한 수준이라고 보는 편이 옳습니다. 남들보다 적든, 몇 달 전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졌든 신경 쓰지 말고 지금 현재 해내고 있는 정도를 기준으로 잡아 보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현실적인 계획을 세워 보는 겁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나 넣으려면, 해야 하는 일을 하나 빼야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하는 일을 모두 끝마치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SNS에 존재하는 갓생사는 사람들을 비교점으로 삼지 맙시다!). 우리에겐 마법의 두꺼비가 없어요! 해야 하는 일의 일부를 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죠? 


하고 싶은 일을 안 할 땐 나만 불편하면 됩니다. 상대적으로 간단하죠.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기로 결심할 때에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이 생겨요. 예를 들어, 저는 종종 집안일을 포기합니다. 영양가 있는 집밥을 정성스럽게 만들어서 가족들에게 먹이는 일을 포기해 버리고 그 시간에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합니다. 이를 테면 농구요. 


집안일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마음도 조금은 불편합니다. 제가 농구를 하는 동안 혼자 육아를 담당하는 남편에게도, 매주 배달음식을 먹어야 하는 아이에게도 그다지 이상적인 상황은 아니겠죠(하지만 제가 만드는 집밥이 과연 영양만점일까 하는 의구심은 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해야 할 일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을 때의 불편한 마음을 조금은 더 견딜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나의 작은 만족을 다른 사람의 행복보다 우선시 두어야 하는 경우도 분명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모두 다 잘 해낼 수는 없어요. 해야 하는 일을 야금야금 내려놓고, 하고 싶은 일을 조금씩 채워 넣어 보아요. 아주 작은 것부터 조금씩 서서히. 그러고 나서 변화된 일상이 마음에 드는지 아닌지 한번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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