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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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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잌 Feb 21. 2024

글은 왜 쓸까요?

물음을 안고 계속하는 일

<마흔로그>를 쓰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보낸 시간이 길어지자, 눈을 질끈 감고 일단 쓰기 시작했어요. 하다 보면 뭔가 명확해지겠지,라고 기대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그냥 쓰고 있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글을 쓸 때마다, 이게 도대체 나에게, 그리고 읽는 사람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듭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마음속에 잔뜩 쌓여서 말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는 상태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여서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건 매번 똑같습니다.  


저는 제가 무슨 생각을 마음에 안고 사는지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글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고, 또 이게 나만의 생각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연결되고 싶기도 하고요. 


저는 업무를 할 때 그 일의 목적과 목표지점을 명확하게 해 두고 시작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일을 벗어난 인생의 많은 것들이 그렇게 되지 않더라고요.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도대체 뭘 그리면서 이걸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 때가 더 많아요. 


모든 게 명확해질 때까지 기다리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어떤 일들은 그냥 해버립니다. ‘그냥 하다 보면 명확해지는 순간이 올 거예요’라고 말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아요.


<마흔로그>를 통해서 하고 싶은 게 뭐야? 왜 쓰는 거야? 써 보니까 어때?라고 물으면 저는 웅얼웅얼거리고 맙니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여전히 모르겠어요. 명확한 것에만 움직이는 사람이었는데요, 지금은 명확한 게 하나도 없어요.


스페인의 순례길,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은 적이 있어요. 까미노길을 걷다 보면 중간중간에 노란 화살표가 있어서 그걸 따라가면 목적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어떤 화살표는 백 미터 앞에서도 보일 정도로 크게 표지판으로 서 있고, 어떤 것은 길가의 작은 돌멩이에 그려져 있어서 코 앞까지 가야 겨우 보일 정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잘 안보일 때도 있지만 어쨌든 화살표는 반드시 있어요. 그 사실이 안심이 되었습니다. 잘 살펴보기만 하면, 혹은 조금만 더 가다 보면 반드시 나올 거라는 걸 믿고 있으니까요.


20대 후반에 그 길을 걸으면서 제 인생에도 노란 화살표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길이 맞나? 싶은 불안감이 들 때즈음 눈앞에 노란 화살표가 나타난다면 얼마나 안심이 될까요. 이 길이 맞다면,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만 있다면 지금의 힘듦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 것이 됩니다(뭐,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요). 


인생이 괴로웠던 수많은 순간들은 제 선택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 괴로움이 증폭되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안 그래도 괴로운데, 이 괴로움이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 힘들었어요. 


어렸을 땐 촘촘하게 인생의 구간구간마다 누가 세워둔 노란 화살표를 따라 발걸음을 재촉해 왔는데, 언젠가부터 화살표가 잘 보이질 않네요. 


인생에 노란 화살표 같은 것이 있다면, 살아가는 것의 묘미는 노란 화살표를 얼마나 잘 따라가는가가 아니라 노란 화살표가 사라지는 구간을 어떻게 보내는가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얼마간은 목표를 잃고 헤맬 권리를 갖는 것이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도 어른이 되어 배운 것 중 하나예요. 잘 실천할 수 있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지만요.  


어딘가에 가닿지 않아도, 무언가 멋진 걸 만들어내지 못해도, 시도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것들을 그냥 해보는 것도 좋아요. 아마도 저에게 <마흔로그>는 그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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