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티아고 길을 걸었다.
2. 새벽부터 걷기 시작해서 점심때쯤 도착한 마을에서 짐을 풀고 나면 기진맥진이다.
3. 몸도 고되고 돈도 없는 여행자였기에 점심은 늘 대충 때웠다.
4. 그날도 숙소에서 오래되어 딱딱하고 질긴 빵을 갈비처럼 뜯고 있는데, 탁자 위에 화사한 테이블보를 깔고 있는 여행자가 눈에 들어왔다.
5. 숙소에 비치된 공용 그릇과 식기들로 정성껏 테이블 세팅을 하고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음식을 먹는다.
6. 그래 봐야 캔에 든 토마토소스를 부은 파스타에 딱딱한 빵이었지만 그걸 바라보던 나는 문득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7. 나는 왜 나를 이렇게 홀대하는 걸까.
8. 앞으로 대충 '먹어 치우는' 식사는 하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9.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행자도 아니고, 집도 돈도 시간도 있지만 여전히 끼니를 거르거나 대충 때우기 일쑤이다.
10. 자신을 대접하는 것도 꾸준한 연습이 필요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