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부터 읽으면 체할 수도 있으니깐요
1. 김백상, 《에셔의 손》(허블, 2018)
—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부문 대상을 받았던 김백상 작가의 작품입니다. 정확히 한국을 배경으로 한다는 얘기는 없지만 인물들의 이름이나 묘사 등이 한국적이라 이입하거나 읽는 데 큰 무리가 없다는 장점이 있는 책이에요. 또 SF와 미스터리, 스릴러가 적절히 섞여 있어서 더 읽기가 쉬운 작품이고요.
—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엄청난 서사입니다. 김백상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알고 있는데, 정말 첫 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 구조가 아주 치밀해요.
— 기억을 잃어버린 자들, ‘전자두뇌’를 활용하고 있는 현실 등 때문에 자칫 산으로 가버리거나 복선을 다 활용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이 책은 허투루 쓰인 부분이 정말 하나도 없어요. 그러다 보니 몰입을 아주 열심히 하게 되고 이야기에 흠뻑 빠져 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됩니다. 이걸 읽었던 게 2018년 겨울이었나 그랬는데 그 겨울 내내 이 책을 생각하며 여기저기 선물할 정도였어요. 엉엉.
— 정확하진 않지만 책에 실린 ‘작가의 말’에는 이 책을 쓰기까지 9년 정도 걸렸다고 돼 있어요. 고쳐 쓰고, 또 고쳐 쓰고 했다고요. 그래서인지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김보영 작가가 극찬을 한 작품이기도 합니다(제가 생각하는 김보영 작가는 어쩐지 매우 차갑고 칭찬을 쉬이 하지 않는 분이라 더 감탄했었죠!). 널리 알려지진 못했지만 읽은 사람들은 대부분 한껏 호평을 쓰고 마는 작품이니 꼭 접해보세요!
2. 정세랑, 《지구에서 한아뿐》(난다, 2019)
— 작품 곳곳에 장르적 요소를 잔뜩 뿌려놓는 정세랑 작가가 데뷔 초에 썼던 장편소설이에요. 원래 네오픽션에서 나왔던 책이지만 잠시 절판됐다가 2019년 난다에서 새로운 옷을 입고 나왔습니다. 데뷔 초에는 완전히 장르소설만 써서 첫 번째 장편인 《덧니가 보고 싶어》도 SF와 미스터리가 결합되었던 작품이었는데, 이 책은 작가의 말대로 다디단 친환경 SF 로맨스입니다. 정말 어찌나 단지 읽고 나면 사랑이 넘쳐나는 기분이라니깐요!
— 여기 띠지에 아주 대놓고 써 있듯, 이 책은 외계인 경민이 지구인 한아를 만나러 1억 광년을 날아온 얘기입니다. 외계인..?이랑 사랑을 한다고..? 하면서 ET의 모습을 떠올리실 순 있지만, 똑똑한 경민은 한아의 애인과 모종의 거래를 하고 그의 몸을 빌려 한아에게 와요(사실 제 입장에서 보면 한아 애인은 좋은 놈 아냐..).
— 어쨌든 한아는 난데없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외계인을 경계하면서도 그를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게 됩니다. 한없이 사랑을 내놓는 경민과 조금씩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한아의 이야기는 정말… 막 ‘이히히이힝’ 하면서 응원하게 되는 이야기예요.
— 실제로 이 책을 많이 선물해봤는데, 정말 실패한 적이 거의 없었어요. 책을 거의 안 읽는 친구도 이 책은 여러 번 다시 읽을 정도였거든요. 짧은 분량, 잘 읽히는 문체, 다디단 이야기까지! 이 작품으로 SF를 좀 더 알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실지도 몰라요!
3. 배명훈, 《맛집 폭격》(북하우스, 2014)
— 좋아하는 SF 작가 중 한 명인 배명훈 작가의 책입니다. 사실 배명훈 작가는 책 여러 권을 썼고, 또 대표작으로는 《타워》가 꼽히기도 하지만, 입문용으로는 이 책이 더 적절할 것 같아 골라봤어요. 정말 제목 그대로 맛집들이 폭격당하는 얘기거든요.
—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서울이지만, 전쟁이 일상이 된 곳이라 저희가 생각하는 서울과는 달라요. 하지만 사람들이 얼마나 굳센 존재인가요.. 대한민국 사람들 홍수를 뚫고도 출근하듯.. 전쟁도 불사하고 출근하는 삶을 이어갑니다.
— 주인공도 마찬가지였는데, 어느 날 미사일 폭격이 일어나요. 이태원 어드메 건물이 날아간다거나 하는 식이었는데 하필 주인공이 누군가와 자주 갔던 맛집인 거예요. 근데 두 번째, 세 번째… 계속 그런 식으로 주인공과 다른 사람이 함께 갔던 맛집이 폭격으로 사라져요.
— 주인공은 생각하죠. 어, 여기 그 집인데..? 왜..? 왜 이 맛집들만 이렇게 폭격을 당하는 거야..??? 함께 갔던 사람이 미사일로 시그널을 주는 건가?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요. 함께 갔던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었거든요.
— 이상하지만 강력한 우연을 느낀 주인공이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하면서 현상 너머 진실을 찾아보는 이야기인데, 음식과 사람 얘기가 적절히 섞여 있어 지루한 맛이 없었던 것 같아요. 배명훈 작가도 막 어렵기만 한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라 쉽게 읽히는 편이고요. 익숙한 소재를 흥미롭게 풀어낸 배명훈 작가의 SF 세계를 발견해보세요!
오늘도 20000 끝. 물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