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기분을 알 수 없을 때 필요한 말들
이 책들이 맞을 것 같을 분
1)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을 때가 꽤 있는 분
2) 해답보다는 설명이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분
3) 장녀
*글 제목은 빈첸의 노래 <그대들은 어떤 기분이신가요(feat. 우원재)>에서 따왔습니다.
1. 다미 샤르프, 서유리 옮김, 《당신의 어린 시절이 울고 있다》, 동양북스, 2020
“나는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내가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일은 삶에서 필연적이다.”
간략한 내용 설명
— 독일의 심리치료학자이자 트라우마 치료 전문가가 쓴 심리학 책입니다. 현재 겪는 문제를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설명하는 책이에요.
— 요즘 워낙 쉬운 심리학 책이 많긴 한데 이 책은 그중에서도 쉬운 편이 아닌가 싶습니다. 책에 쓰인 단어나 문장이 굉장히 단순하고 간결해요.
좋았던 점
— 사실 저는 언젠가부터 심리학 책을 잘 읽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답이 뻔하기도 하고 저도 다 아는 내용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제가 그런 걸 몰라서 같은 잘못을 또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는데 마음과 행동이 따라주지 않아서 못하는 거죠.
— 어디서 이 책을 알게 된 건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이 책도 역시 같은 마음으로 집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무슨 말인지도 알겠고 저도 대충 알고 있는 내용들인데 이상하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제가 알았지만 잊고 있던 것들을 다시 되짚을 수 있기도 했고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되뇔 수도 있었고요.
— 메시지가 굉장히 명쾌하기도 합니다. 현란한 수사나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서 단번에 와닿는 게 있더라고요. 여러 번 곱씹게 하는 것도 좋지만 개인의 심리 상태나 행동을 설명하는 책은 확실히 단순하고 명쾌해야 한다는 걸 느끼기도 했어요.
— 어떤 부분들에서는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라는 제목으로 서너 가지 지침?이랄 게 나오는데요. 제가 이 부분들 중 하나를 SNS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많은 사람이 무슨 책이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정말 대단할 게 없는 메시지인데도 저 포함 사람들이 반응하는 거 보면 정말 이런 말을 남에게도 듣지 못했고 스스로에게도 전혀 해주지 않고 살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사족
— 왜 남들의 기분과 감정을 위해 나의 시간과 기분을 망치는 건지, 왜 사랑을 담뿍 주지도 받지도 못하는지, 왜 자꾸 마음의 어깃장을 놓는 건지… 살면서 이런 것들을 참 많이도 반복하며 살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제가 왜 그랬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긴 했던 것 같아요. 물론 고치는 건 어렵고 제 마음을 제 마음대로 하는 건 여전히 힘들지만 그래도, 책을 읽던 순간만큼은 아픈 마음들을 잘 봉합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좋았던 문장 하나
“마음을 준다고 해서 내가 손해 보는 것이 아니다. 꼭 뭔가를 성취하지 않아도 내 존재는 가치가 있다.”
2. 리세터 스하위테커마르/비스 엔트호번 지음, 이상원 옮김, 《첫째 딸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지만》(갈매나무, 2018)
간략한 내용 설명
— 제목 그대로 ‘첫째 딸’, 즉 장녀들을 타깃으로 한 심리학 책입니다.
— ‘K-장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 장녀들은 늘 고통과 빡침을 호소하는데 이 책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쓴 책이에요. 이 책을 읽고 알았습니다. 장녀들은 국적 불문하고 고통받는다는 것을요..
좋았던 점
— 제목에 홀려 산 책이라 정말로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만.. 읽으면서 눈물이 글썽일 정도의 위로를 받곤 했었어요. 일단 ‘아, 나만 이런 게 아니었다’라는 안도감이 가장 컸던 것 같고요, 두 번째는 전 세계 모든 장녀가 고통받고 있다는 걸 알게 돼서였습니다. 우리집이 나를 주워와서가 아니었구나.. 다들 이런 걸 힘들어했구나.. 하면서 몰랐던 걸 알게 된 게 가장 좋았어요.
— 이건 좋았다기보다 놀라웠던 건데요, 이 책에 의하면 장녀뿐만 아니라 오빠를 둔 여자 둘째도 장녀의 역할이 주어진다고 하더라고요. 그 둘째가 막내여도 마찬가지고요. 읽은 지 꽤 되어서 이유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뭔가 막연히 짐작만 했던 것을 사실로 알게 되어 여전히 인상 깊게 남아 있는 부분입니다.
— 제가 이 책을 읽고 당시 친하던 회사 동료(역시 장녀)에게 ‘진짜 이상하게 위로받는 책’이라고 얘기를 했는데, 그 동료의 주변 장녀들도 그런 얘기를 많이 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만 좋아한 게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 무엇보다 저는 제가 늘 뭔가를 먼저 하는 게 정말 심하게 억울했거든요. 제 동생은 다른 동생들에 비하면 더 애처럼 구는 면이 많아서 집에서는 아직도 ‘네가 언니니까’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요. 근데 이런 현상이 다 나오기만 하는 것으로도 좀 통쾌한 부분이 있었어요. (몇 달 전에는 자꾸 동생을 챙기라는 엄마한테 “나도 엄마 딸인데 왜 나한테만 챙기라고 해!” 하면서 화를 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이 책이 생각났답니다..)
사족
— 다만 장녀인 제가 불편할 정도로 장녀를 찬양하거나 추켜세우는 부분이 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연구를 진행한 두 사람 모두 장녀라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또 모든 장녀가 같진 않으니 당연히 저와는 완전히 다른 부분도 있었고요. 하지만 이 정도 불편함이나 단점은 책 내용에 비하면 별로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습니다.
개인적인 일로 바빠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지냈는데..
알고 보니 꽤 오랫동안 업로드를 하지 않았더라고요. 그걸 알고 나니 보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괜히 스스로가 너무 게을렀던 것 같아 반성했습니다.
(아, 이 역시 저 책에서 말한 장녀의 특성 같아요.. 기후변화마저 자기 탓인 것 같다고 생각하는 장녀도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쨌든 모두 이 천고마비의 계절을 잘 보내고 계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손 번쩍 들어 인사 보내요.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