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발목을 잡을 지나간 과거와 왜곡된 기억
이번에 소개할 책은 줄리언 반스의 유명작이자 2011 맨 부커(당시에는 맨 부커) 상을 수상했고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입니다.
전자책으로 읽었지만 기함할 정도로 좋아서 종이책까지 샀다는 말을 먼저 덧붙입니다..
*사진은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포스터입니다.
줄리언 반스 | 최세희 옮김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다산책방, 2012)
— 영미권 소설을 좀 읽으시는 분이라면 아주 익숙할 작가인데요. 저는 몇 년 전에 《연애의 기억》이라는 책으로 줄리언 반스 책을 처음 읽었어요. 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읽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연애의 기억》을 읽을 때 정말 감탄했었거든요? 제가 보기엔 그냥 할아버지 작가일 뿐인데 이렇게까지 사랑에 능할 수 있다니?! 사무치는 회한과 그리움에 대한 엄청난 묘사는 그렇다 쳐도 어떻게 ‘젊음’의 마음까지 이렇게나 잘 표현할 수 있나, 싶었어요.
— 이후 읽은 책은 쇼스타코비치의 생애를 다룬 《시대의 소음》이었습니다. 줄리언 반스의 출간 목록을 보면 실제 인물을 기반으로 한 팩션이 꽤 있는 걸 볼 수 있는데요, 그런 것만 봐도 뭔가 특이한 소설가라는 생각이 들긴 해요. 어쨌든 《시대의 소음》은 《연애의 기억》과 굉장히 다른 결이었고 그보다는 아니었지만 좋은 작품이었어요. 본 적도 없는 쇼스타코비치의 삶에 마음이 아려왔거든요.
— 어쨌든 제게 줄리언 반스는 젊음과 후회, 체념과 회한에 대한 묘사가 아주 탁월한 작가였는데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정말 이 모든 것의 결정체가 아니었나 싶어요.
— 이 책의 화자는 ‘토니 웹스터’인데요, 나이를 먹은 토니가 자신의 고등학생 시절부터 할아버지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쭉 합니다.
— 책 초반에는 토니의 고등학생 시절이 나오며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나와요. 그냥 어린 남자애들입니다. 수업시간에 킬킬대고 선생님 말에 딴지 걸고 언제나 웃기려고만 하고 여자에 환장하고. 뭐 그런 전형적인 어린 남자애들의 모습이랄까요?
— 그러다 토니의 무리에 명석한 괴짜 ‘에이드리언’이 끼게 됩니다. 왜 어딜 가도 잘 없는 똑똑하고 과묵한 그런 남자애 있잖아요? 에이드리언이 딱 그런 친구예요. 게다가 아주 똑똑해서 선생님들과 똑똑한 말도 곧잘 주고받습니다. 토니는 이런 에이드리언을 보며 가끔 뭔가 움츠러들기도 해요.
— 고등학생 시절을 회상하던 토니는 자연스레 대학으로 넘어갑니다. 에이드리언은 명석한 친구답게 아마 예일을 갔던 것 같아요.
— 여자에 환장하던 토니는 대학에 가서 ‘베로니카’라는 여자를 사귀게 됩니다. 토니가 회상하는 ‘베로니카’는 별로 호감이 가는 인물은 아니에요. 뭔가 좀 제멋대로고 뭐든 굉장히 묘한 반응을 보이거든요. (물론 제 생각에.. 베로니카는 토니가 베로니카를 좋아하는 만큼 토니를 좋아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싶네요.)
— 그럼에도 토니는 베로니카를 진짜 좋아하고 베로니카의 본가에까지 가게 됩니다. 왜 외국 애들은 애인 본가에 놀러 가서 며칠씩 놀다 오고 그러잖아요?(영화에서 많이 그러더라고요.. 정말 그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지만..) 토니도 마찬가지로 그 집까지 가는데 거기서 본인 말로는 굉장히 천대를 받아요. 그나마 자기를 챙겨줬던 건 베로니카의 엄마뿐이었습니다.
— 그런 싸늘한 반응을 받아도 토니는 베로니카가 좋으니 견뎠다고 생각해요. 물론 여느 젊은이들의 연애가 그렇듯 뒤에 토니도 베로니카와 헤어지지만요.
— 아, 그런데 토니가 고등학생 때 무리에게 베로니카를 소개해준 적이 있었거든요? 물론 그 자리에는 예일에 간 똑똑한 에이드리언도 있었고요. 자신을 뽐내고 싶었고 베로니카를 자랑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던 자리였습니다. 에이드리언에게 약간의 자격지심이 있는 토니는 그때 베로니카가 에이드리언을 쳐다보는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물론 생각만요.
— 토니가 생각했던 불상사는 헤어진 뒤에 일어났습니다. (아, 다행일까요..?) 에이드리언이 어느 날 토니에게 편지를 보냈거든요. “나 베로니카랑 사귀게 됐어. 너한테 얘기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
— 토니는 이날을 회상하며 아무렇지 않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적당한 위트를 섞어 답장을 보냈다고 말합니다.
— 소설 중반부까지는 이런 내용이 이어지다 갑자기 전개가 빨라져요. 에이드리언은 자살했고(네, 그는 아주 젊은 나이에 난데없이 자살을 합니다. 아무도 그가 왜 죽었는지 영문을 몰라요) 나는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 낳았고 이혼했고 전처랑 가끔 만나면서 혼자 살아~ 이렇게 갑자기 정리를 해버린달까요?
— 사실 처음에는 이게 《길 위에서》 같은 소설인가 싶었는데 이쯤 되니 아, 《스토너》 같은 건가..? 싶더라고요?(제가 정말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었습니다) 근데 사실 이 책의 이야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
— 혼자 유유자적 살던 토니에게 갑자기 편지가 한 통 날아와요. 베로니카의 엄마가 토니에게 유산을 남겼으니 확인하고 찾아가라는 뭐 그런 내용의 편지요.
— ???아니 딱 한 번 본 구애인 엄마가 나한테 왜??? 당연히 토니는 유산둥절이 되어 이게 무슨 일인가 알아봅니다. 토니에게 남겨진 유산은 500파운드(정확한 건 아닌데 어쨌든 유산이라기에 별로 큰 금액은 아니었어요)와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이었어요.
— 토니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편지를 보낸 변호사와 구애인인 베로니카에게 연락을 하기에 이릅니다. 그렇게 연락을 하던 토니는······ 자, 이제 여러분이 읽으셔야 합니다.
— 이 이상의 내용이 어딘가에 분명히 아주 많이 올라와 있을 테지만 저는 더는 쓰지 않으려 해요.. 왜냐고요..? 여러분의 재미를 빼앗기 싫거든요…
— 토니가 베로니카와 연락을 하고 ‘너네 엄마가 나한테 이걸 왜 남김? 에이드리언 일기장 뭐임?’이라고 하는 순간부터 여러분이 읽어온 모든 것이 통째로 뒤집히기 시작하다 마지막 몇 장에서는 정말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고 말 겁니다.. 아마 다시 앞으로 돌아가 헐..? 헐..? 하실 수도 있어요(바로 저요 저). 근데 저 말고도 그런 사람이 많은지 이 책이 원서로 150쪽인데 한 번 더 읽게 돼서 결국은 300쪽인 책이라는 말도 있다고 합니다.
— 사실 내용을 전혀 모르고 읽는 것도 좋으나 다소 지루해 보이는 초중반을 버텨야 엄청난 희열을 느끼실 수가 있기에 앞 부분 설명을 좀 해봤어요.
1) 줄리언 반스의 엄청난 필력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그는 정말 젊음에 대한 묘사가 아주 아주 탁월하고 또 지나간 일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을 표현하는 게 정말 기가 막혀요. 진짜 진짜로 이건 읽어보셔야 알 수 있습니다. 제발 함께 느껴주세요…
2) 그냥 뭐 너무 재미있습니다. 저는 그가 이런 장르적인 요소에도 능할지 몰랐는데.. 줄리언 반스는 정말 개짱이란 말을 또 하게 되네요.
3) 여러분 심장을 명중할 문장이 널렸습니다. 이 책에 하이라이트 친 부분이 정말 많은데요. 이건 책으로 읽어야 더 감동일 것이기에 굳이 쓰지 않겠습니다^^^
http://aladin.kr/p/0yWih
왜 이걸 이제 읽었지? 싶었지만 이제라도 읽어 아주 좋았다! 싶은 책이었어요.
최근에 집는 책마다 별로여서 타율이 안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 읽고 나서는 아주 만족했습니다.
쓰다 보니까 얼른 다시 또 읽고 싶어지네요.
어쨌든 오늘도 손 번쩍 들어 인사 올리며 2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