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솔지책 Jun 16. 2022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언제나 발목을 잡을 지나간 과거와 왜곡된 기억



이번에 소개할 책은 줄리언 반스의 유명작이자 2011 맨 부커(당시에는 맨 부커) 상을 수상했고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입니다.

전자책으로 읽었지만 기함할 정도로 좋아서 종이책까지 샀다는 말을 먼저 덧붙입니다..

*사진은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포스터입니다.



줄리언 반스 | 최세희 옮김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다산책방, 2012)

리커버 에디션이지만 딱히 뭐 리커버가 의미가 있나 싶네요.. 뭘 둘렀어도 팔렸을 책입니다..


줄리언 반스

— 영미권 소설을 좀 읽으시는 분이라면 아주 익숙할 작가인데요. 저는 몇 년 전에 《연애의 기억》이라는 책으로 줄리언 반스 책을 처음 읽었어요. 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읽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연애의 기억》을 읽을 때 정말 감탄했었거든요? 제가 보기엔 그냥 할아버지 작가일 뿐인데 이렇게까지 사랑에 능할 수 있다니?! 사무치는 회한과 그리움에 대한 엄청난 묘사는 그렇다 쳐도 어떻게 ‘젊음’의 마음까지 이렇게나 잘 표현할 수 있나, 싶었어요.

— 이후 읽은 책은 쇼스타코비치의 생애를 다룬 《시대의 소음》이었습니다. 줄리언 반스의 출간 목록을 보면 실제 인물을 기반으로 한 팩션이 꽤 있는 걸 볼 수 있는데요, 그런 것만 봐도 뭔가 특이한 소설가라는 생각이 들긴 해요. 어쨌든 《시대의 소음》은 《연애의 기억》과 굉장히 다른 결이었고 그보다는 아니었지만 좋은 작품이었어요. 본 적도 없는 쇼스타코비치의 삶에 마음이 아려왔거든요.

— 어쨌든 제게 줄리언 반스는 젊음과 후회, 체념과 회한에 대한 묘사가 아주 탁월한 작가였는데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정말 이 모든 것의 결정체가 아니었나 싶어요.



안녕, 나는 어린 토니 웹스터~

 책의 화자는 ‘토니 웹스터인데요, 나이를 토니가 자신의 고등학생 시절부터 할아버지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쭉 합니다.

 초반에토니의 고등학생 시절이 나오며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나와요. 그냥 어린 남자애들입니다. 수업시간에 킬킬대고 선생님 말에 딴지 걸고 언제나 웃기려고만 하고 여자에 환장하고.  그런 전형적인 어린 남자애들의 모습이랄까요?

— 그러다 토니의 무리에 명석한 괴짜 ‘에이드리언’이 끼게 됩니다. 왜 어딜 가도 잘 없는 똑똑하고 과묵한 그런 남자애 있잖아요? 에이드리언이 딱 그런 친구예요. 게다가 아주 똑똑해서 선생님들과 똑똑한 말도 곧잘 주고받습니다. 토니는 이런 에이드리언을 보며 가끔 뭔가 움츠러들기도 해요.



와, 나 대학생 돼서 애인 본가도 가봄

— 고등학생 시절을 회상하던 토니는 자연스레 대학으로 넘어갑니다. 에이드리언은 명석한 친구답게 아마 예일을 갔던 것 같아요.

— 여자에 환장하던 토니는 대학에 가서 ‘베로니카’라는 여자를 사귀게 됩니다. 토니가 회상하는 ‘베로니카’는 별로 호감이 가는 인물은 아니에요. 뭔가 좀 제멋대로고 뭐든 굉장히 묘한 반응을 보이거든요. (물론 제 생각에.. 베로니카는 토니가 베로니카를 좋아하는 만큼 토니를 좋아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싶네요.)

— 그럼에도 토니는 베로니카를 진짜 좋아하고 베로니카의 본가에까지 가게 됩니다. 왜 외국 애들은 애인 본가에 놀러 가서 며칠씩 놀다 오고 그러잖아요?(영화에서 많이 그러더라고요.. 정말 그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지만..) 토니도 마찬가지로 그 집까지 가는데 거기서 본인 말로는 굉장히 천대를 받아요. 그나마 자기를 챙겨줬던 건 베로니카의 엄마뿐이었습니다.

— 그런 싸늘한 반응을 받아도 토니는 베로니카가 좋으니 견뎠다고 생각해요. 물론 여느 젊은이들의 연애가 그렇듯 뒤에 토니도 베로니카와 헤어지지만요.


영화 속 늙은 베로니카와 토니인 것 같아요. 아, 영화는 안 봤는데 책이랑 내용이 좀 다르려나요? 아 궁금해.. 얼른 볼 거야..


근데 구애인이 절친이랑 사귐.ㅋㅎ

— 아, 그런데 토니가 고등학생 때 무리에게 베로니카를 소개해준 적이 있었거든요? 물론 그 자리에는 예일에 간 똑똑한 에이드리언도 있었고요. 자신을 뽐내고 싶었고 베로니카를 자랑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던 자리였습니다. 에이드리언에게 약간의 자격지심이 있는 토니는 그때 베로니카가 에이드리언을 쳐다보는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물론 생각만요.

— 토니가 생각했던 불상사는 헤어진 뒤에 일어났습니다. (아, 다행일까요..?) 에이드리언이 어느 날 토니에게 편지를 보냈거든요. “나 베로니카랑 사귀게 됐어. 너한테 얘기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

— 토니는 이날을 회상하며 아무렇지 않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적당한 위트를 섞어 답장을 보냈다고 말합니다.



젊디젊던 나도 이제 할배가 됐는데······ 어? 구애인 엄마한테 유산 받아보신 분??

— 소설 중반부까지는 이런 내용이 이어지다 갑자기 전개가 빨라져요. 에이드리언은 자살했고(네, 그는 아주 젊은 나이에 난데없이 자살을 합니다. 아무도 그가 왜 죽었는지 영문을 몰라요) 나는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 낳았고 이혼했고 전처랑 가끔 만나면서 혼자 살아~ 이렇게 갑자기 정리를 해버린달까요?

— 사실 처음에는 이게 《길 위에서》 같은 소설인가 싶었는데 이쯤 되니 아, 《스토너》 같은 건가..? 싶더라고요?(제가 정말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었습니다) 근데 사실 이 책의 이야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

— 혼자 유유자적 살던 토니에게 갑자기 편지가 한 통 날아와요. 베로니카의 엄마가 토니에게 유산을 남겼으니 확인하고 찾아가라는 뭐 그런 내용의 편지요.

— ???아니 딱 한 번 본 구애인 엄마가 나한테 왜??? 당연히 토니는 유산둥절이 되어 이게 무슨 일인가 알아봅니다. 토니에게 남겨진 유산은 500파운드(정확한 건 아닌데 어쨌든 유산이라기에 별로 큰 금액은 아니었어요)와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이었어요.

— 토니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편지를 보낸 변호사와 구애인인 베로니카에게 연락을 하기에 이릅니다. 그렇게 연락을 하던 토니는······ 자, 이제 여러분이 읽으셔야 합니다.



150쪽이지만 사실은 300쪽인 책

—  이 이상의 내용이 어딘가에 분명히 아주 많이 올라와 있을 테지만 저는 더는 쓰지 않으려 해요.. 왜냐고요..? 여러분의 재미를 빼앗기 싫거든요…

— 토니가 베로니카와 연락을 하고 ‘너네 엄마가 나한테 이걸 왜 남김? 에이드리언 일기장 뭐임?’이라고 하는 순간부터 여러분이 읽어온 모든 것이 통째로 뒤집히기 시작하다 마지막 몇 장에서는 정말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고 말 겁니다.. 아마 다시 앞으로 돌아가 헐..? 헐..? 하실 수도 있어요(바로 저요 저). 근데 저 말고도 그런 사람이 많은지 이 책이 원서로 150쪽인데 한 번 더 읽게 돼서 결국은 300쪽인 책이라는 말도 있다고 합니다.

— 사실 내용을 전혀 모르고 읽는 것도 좋으나 다소 지루해 보이는 초중반을 버텨야 엄청난 희열을 느끼실 수가 있기에 앞 부분 설명을 좀 해봤어요.



사실 그 밖에도 좋은 게 많아요

1) 줄리언 반스의 엄청난 필력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그는 정말 젊음에 대한 묘사가 아주 아주 탁월하고 또 지나간 일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을 표현하는 게 정말 기가 막혀요. 진짜 진짜로 이건 읽어보셔야 알 수 있습니다. 제발 함께 느껴주세요…

2) 그냥 뭐 너무 재미있습니다. 저는 그가 이런 장르적인 요소에도 능할지 몰랐는데.. 줄리언 반스는 정말 개짱이란 말을 또 하게 되네요.

3) 여러분 심장을 명중할 문장이 널렸습니다. 이 책에 하이라이트 친 부분이 정말 많은데요. 이건 책으로 읽어야 더 감동일 것이기에 굳이 쓰지 않겠습니다^^^



http://aladin.kr/p/0yWih




왜 이걸 이제 읽었지? 싶었지만 이제라도 읽어 아주 좋았다! 싶은 책이었어요.

최근에 집는 책마다 별로여서 타율이 안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 읽고 나서는 아주 만족했습니다.

쓰다 보니까 얼른 다시 또 읽고 싶어지네요.


어쨌든 오늘도 손 번쩍 들어 인사 올리며 20000!


매거진의 이전글 효율이 판 치는 세상의 중심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