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중국 아저씨, 루쉰의 이야기
어른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는 하고 싶은 말은 산처럼 쌓여가지만 좀처럼 뱉을 수 없다는 게 아닐까 싶어요.
삼키고 삼켜버린 말들은 응어리나 분노가 되기 마련이지만.. 마땅히 분출할 곳이나 사람은 갈수록 없어지죠.
오늘은 해야 할 말은 꼭 뱉거나 쓰고 말았던 유명한 중국 아저씨, 루쉰의 책을 들고 왔습니다.
루쉰, 이욱연 옮김, 《루쉰 독본》(휴머니스트, 2020)
— 루쉰을 잘 모르더라도 어디선가 이름은 많이 들어보셨을 수 있는데요. 그건 저도 그랬기 때문입니다. 대체 이 아저씨를 어디서 봤을까요? 교과서에 나왔던 걸까요? 어쨌든 루쉰은 1881년부터 1936년까지 그리 길지 않은 생을 살다간 중국의 사상가이자 작가입니다. 60이 안 된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게 좀 씁쓸하네요. (그런데 동양 작가들은 주로 몸이 아파 죽고 서양 작가들은 여러 중독으로 죽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루쉰의 이름은 모르더라도 <아Q정전>이나 <광인일기> 같은 작품은 들어보셨을 수도 있을 거예요. 특히 <아Q정전>은 읽은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을 것 같지만 제목만은 굉장히 널리 퍼졌다는 느낌적 느낌입니다.
— 책 소개에도 나와 있지만 이 책은 루쉰의 산문과 소설을 추려 엮어낸 책이에요. 유명작인 <아Q정전>부터 그가 연인에게 보낸 편지까지 아주 다양한 글이 실려 있습니다.
— 사실 어느 작가가 궁금해져도 글 하나하나를 찾아 읽기는 굉장히 품이 많이 들고 힘든데(특히 외국 작가라면 더더욱), 이 책은 ‘루쉰이 궁금해? 그럼 이거 하나 잡솨봐~’ 하는 느낌이에요.
— 게다가 소설부터 산문까지 여러 글이 실려 있다 보니 괜찮아 보이는 글만 골라 읽어도 된다는 장점도 있고요.
— 책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호기심이 생기는 책의 구매를 결심하는 요소가 많이 나뉘는데요(대개 온라인서점에서 구매를 합니다). 저는 100퍼센트 발췌문을 보고 결정하는 편이에요. 발췌문 또한 일종의 광고 카피인데 대략 5~8개 정도의 발췌문을 봤지만 저한테 와닿거나 흥미로운 부분이 하나도 없다면 장바구니에도 넣지 않게 되더라고요. 근데 발췌문이고 나발이고 차례를 보는 분들도 봤어요. 책의 구성과 책에 담긴 대략적인 내용을 보는 거겠죠?
— 물론 《루쉰 독본》 알라딘 소개 페이지에는 발췌문이 없지만(저는 루쉰 책을 찾아 구매한 거라 소개 페이지를 읽지도 않았습니다) 이 책은 차례에서 이미 독자의 흥미를 유발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루쉰은 어떻게 보면 독설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굉장히 솔직한 글을 쓰는 사람인데 그게 제목에 여실히 드러나거든요.
— 예를 들어, <무엇을 사랑하든 독사처럼 칭칭 감겨들어라> <얕은 못의 물이라도 바다를 본받을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아버지 노릇을 할 것인가> <내 붓이 날카로운 이유> <나는 남보다 나를 더 무정하게 해부한다> 등이 그렇다고 느꼈어요. 제목이 오히려 아포리즘처럼 느껴질 정도랄까요..? 물론 제가 루쉰을 좋아해서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나는 남보다 나를 더 무정하게 해부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안 들춰볼 수 있겠어요?!
— 저는 트위터에서 루쉰 봇을 팔로우하며 그의 날카로운 말들을 잘 수집해왔고 그중 위의 말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놈들’이 구역질 할 수 있는 글을 써내려면 사람 이하인 ‘놈’들을 날카롭고 논리적으로 비판할 수 있어야 하는데, 루쉰은 충분히 그런 역할을 해낸 것 같거든요.
— 그를 본 적도 없고 글 몇 편 읽었을 뿐이지만 제가 본 그는 꼿꼿하고 솔직하며 비판적이지만 결코 회의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은 아니었어요. 놈들과 타협을 하진 않지만 관용이 없는 사람은 아니고요. 게다가 그의 분노는 언제나 위를 향했던 것 같아요. 강강약약의 모습이었달까요. 그러니까 어떤 시대에서든 필요한 지식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나 싶어요.
— 사실 백마디 말보다는 그가 쓴 문장 몇 개가 더 그의 책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알라딘 소개 페이지에 넣고 싶은 문장들을 여기에 발췌해봅니다. (아, 근데 정말 발췌문 왜 없을까요… 이렇게나 좋은 것이 많은데…!)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원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다. 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되는 것이다. _ <고향>
이전에 현세에서 살기를 원했으되 살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침묵도 하고, 신음도 하고, 탄식도 하고, 통곡도 하고, 애걸도 했다. 그렇게 현세에서 살기를 원했지만, 그러지를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분노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_ <잡감>
자식들을 구속하는 가장이 없어야 구속에 반항하는 불효자가 없다. 협박하고 유혹하는 것으로는 가정이 영원히 평안할 수 없다. _ <우리는 지금 어떻게 아버지 노릇을 할 것인가>
돈이란 말은 매우 귀에 거슬리지요. 혹 고상한 군자들한테 미움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인간의 의견은 어제와 오늘이 다를 뿐만 아니라, 식전과 식후가 왕왕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무릇 밥은 돈을 주어야 사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돈 소리 하는 것을 비천하다고 하는 인간들은, 그들의 위를 눌러보면 틀림없이 배 속에 아직 소화되지 않은 고기와 생선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온종일 굶긴 뒤에 다시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_ <노라는 집을 나간 뒤 어떻게 되었는가>
하지만 나더러 청년들이 어떤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꼭 대답하라고 한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남을 위해 생각해둔 말, 즉 첫째는 생존해야 하고, 둘째는 입고 먹어야 하며, 셋째는 발전해야 한다고 말하겠습니다. 이 세 가지를 가로막는 자가 있다면 그가 누구이든 우리는 반항하고 박멸시켜야 합니다. _ <베이징 통신>
— 이 밖에도 인덱스를 붙인 문장은 많았으나 여러분의 읽는 재미를 위해 정말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루쉰이야말로 정말 백문이불여일견이니까요!
그가 죽은 지 100년이 다 되어가지만 세상은 어쩌면 100년 전보다 더 퇴보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과학과 기술과 생활과 경제는 나날이 발전해가지만 과연 그 발전된 세상을 사는 우리가 100년 전 루쉰보다 더 나은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은 분들이라면 뜨거운 여름 루쉰의 말을 새겨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읽기 전보다는 한 뼘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오늘도 손 번쩍 들어 인사 보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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