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게 부서지는 여름의 책
*사진은 <아웃사이드>라는 매체가 윌리엄 피네건과 진행한 인터뷰 기사에 있던 헤더입니다.
몇 년 전부터 한국도 동남아가 다 되었다..는 말을 달고 살았는데 정말로 그런 것 같은 날씨가 이어지네요.
더웠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가 잠시 서늘했다가 다시 습했다가 더웠다가.. 정말 어디 처박혀 책 읽기 딱 좋은 날씨죠. ^^^
오늘은 이 더위를 단숨…!까진 아니더라도 잠시 잊게 해줄… 여름이 되면 꼭 떠올리는… 책을 갖고 왔습니다.
윌리엄 피네건, 박현주 옮김, 김대원 감수, 《바바리안 데이즈》(알마, 2018)
— nn년 다독 인생에서 딱 한 가지 믿는 진실은 퓰리처상 수상작은 진짜 좋다! 인데요. 제가 영미권 논픽션을 유달리 좋아해서기도 하지만.. 특히 퓰리처상 수상작은 정말로 글이 너무 좋다..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책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노미네이트된 책들도 하나같이 훌륭했던 것 같거든요.
— 그리고 이 책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휴가지에 들고 간 책이기도 했답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독서 목록을 보면 굉장히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것 같던데.. 무려 미국 대통령을 하면서 책까지 많이 읽었다니.. 게으름을 타고난 저는 그가 대단할 따름입니다..)
— 이 책의 저자인 윌리엄 피네건은 이제 거의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여기 있는 글들은 그가 바다와 파도와 서핑에 미쳐 있던 유년 시절에 대해 쓴 회고록이고요. 그래서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여름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그는 서핑을 하기 위해 거의 모든 걸 내팽개치고 전 세계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요. 정착한 곳에서 일을 하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네, 그리고 사랑도 합니다.
— 책을 읽다 보면 ‘근데 얘 이렇게 살아도 돼?’라는 생각이 좀 들 정도예요. 물론 이게 꽤 옛날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모아둔 돈도 없고 나이는 드는데 딱히 어디에 속해 있지도 않고.. 사실 한국에서는 이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지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청춘(윌리엄 피네건)은 눈에 뵈는 게 없고 무모하기에 아름다운 모험을 잘도 해나갑니다.
—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벅차오르는 부분은 바로 윌리엄 피네건이 정말 찬란하고 무모하게 지나온 젊음인 것 같아요. 노화가 누구에게나 주어지듯 젊음 또한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지만 그걸 지나오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잖아요? 겁 많고 소심한 저는 윌리엄 피네건처럼 무모하게 떠나버리고 대책 없이 저질러버리는 젊음을 겪지 못했던 것 같아요. 해야 할 것에 급급해(심지어 잘하지도 못함^^^) 하고 싶은 일들은 죄다 놓치고 살았달까요.
— 물론 성격상 또 동양인 여자라는 불리한 조건상(윌리엄 피네건은 1세계 백인 남자라는 점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가 대책 없이 여기저기를 떠돌 수 있었던 건 분명 이 점도 엄청나게 유리하게 작용했을 거예요) 그처럼 살 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그 패기가 미치게 부럽긴 했습니다. 그와 같은 젊음을 보냈다면 후회보다는 흐뭇함과 뿌듯함이 더 크지 않았을까? 싶어요. 여름이 되니까 그의 젊음이 더 부럽네요…
— 윌리엄 피네건은 서핑을 사랑함과 동시에 글까지 사랑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작가를 꿈꿔왔고 계속해서 글을 써왔습니다. 이 책이 퓰리처상을 수상한 건 서핑과 모험으로 점철된 젊음이라는 특이하고 눈부신 경험 때문만이 아니에요. 윌리엄 피네건은 계속해서 글을 써와서인지 그걸 풀어내는 필력마저 아주 아주 탁월해요.
— 책에서 드문드문 나오지만 그는 서핑을 하러 전 세계를 돌면서 서점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재밌는 책을 발굴하기도 하고 출간되지 못할 책을 쓰기도 하고 그래요(그래서 그는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가 되었습니다). 대단한 젊음을 보낸 그가 글까지 잘 쓰는 건 정말 독자들에게 엄청난 행운 아닌가 싶습니다. 그가 글쟁이를 꿈꾸지 않았다면 이런 책을 읽지 못했을 거 아니에요..? (상상이지만 벌써 슬퍼져요..)
— 이 책은 서핑과 젊음과 사랑과 모험으로 가득찬 책이라 미문이 아주 가득가득 해요. 그래서.. 분량이 꽤 되는 편입니다. 거의 700쪽에 달하는 책이지만.. 그렇지만..! 이 여름을 이 책과 함께하신다면 정말로 전혀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여름 내내 이 책만 붙들고 계셔도 2022년 여름을 ‘아, 여름이었다!’로 기억하실 수 있을 겁니다.
— <아웃사이드>라는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를 보니 회고록을 쓸 거라곤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어렸을 때는 소설을 주로 썼다고요. 미국 회고록의 99퍼센트는 모두 소설이었지만 편집자들이 설득 끝에 회고록으로 출간하게 한 거라는 이야기가 스쳐가네요… 자기 얘기를 쓰는 건 영미권이라도 부끄러운 모양이에요.
한 번 읽으면 매해 여름마다 떠올라서 앓게 될 《바바리안 데이즈》와 함께 시원하고 찬란한 여름을 보내실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