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ing progress; on the way of achieving
박소연, 『일하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위 책을 발견하고, 미리보기를 통해 앞의 몇 쪽을 읽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이었으나, 글로 잘 정돈된 것을 읽으면서 다시금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기억하기 위해 일부를 옮겨본다.
1. 나를 가르쳐줄 멘토는 없는 게 정상이다. 내가 배워서 답을 찾아내야 한다.
2. 유니콘은 없어도 말, 뿔, 날개, 달리기로 나눠 배울 수는 있다.
3. 자기 앞에 놓인 과제부터 공부하면 된다. 일종의 최소 유효 지식(minimum viable knowledge)을 갖추는 것.
4. 스스로 적응하고 배워나가야 한다. 자신의 성장이 '책임'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나 외에는.
5, 어느 분야를 가든 '흐름'과 '기준점'부터 파악하자.
6. 정보가 완벽하지 않아도 출발해야 하는 순간을 아는 것: 완벽주의에 매몰되는 순간, 시간이 공중으로 허무하게 사라지는 마법을 보게 될 것이다. 열심히 일했음에도 일주일 프로젝트에 이틀짜리, 두 달 프로젝트에 한 주짜리 결과물이 나오는 황당한 마법 말이다.
특히 3번은 불과 며칠 전에도 집에 오는 길에 생각했던 부분이었다. 코스웍의 기본이자 근간인 수학은 물론이고 전공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도 부족한 나에게, 저 멀리 앞서가는 친구들을 따라잡기란 단기간 내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해내야죠.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일단 해야 한다 첫 걸음을 떼야 한다. 이제 문제는 '어디부터 시작할 것인가'가 된다. 기초부터 차근히 밟아가기. 아주 좋은 생각이고 불변의 정석이겠으나, 문제는 당장 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나에게는 시간과 체력이라는 제약 조건이 있고, 이들은 아주 강력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학기 중인 만큼 매주 수업을 듣고 있으며 수업 때마다 엄청난 속도로 엄청난 양의 새로운 지식을 소화해야 한다. 나아가 수업에선 분명히 1을 배웠는데 과제로는 10을 풀어가야 하는 엄청난 괴리가 있다. 심지어 매주 새로운 과제가 나온다. 이런 과목이 무려 3개! 게다가 여름에 있을 종합 시험을 위해 이번 학기 내용은 물론 지난 학기 내용도 복습해야 하고, 과거 기출 문제 등등 봐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따라서 불가능함.
얼마 전 이동진 평론가의 유투브 영상을 보았다. "무언가 깊이 파고 싶다면, 넓이를 넓혀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공감했다. 이상적인 상황에서, 즉 장기 균형에서 깊이와 넓이는 통하는 것 같다. 문제는 그것으로 이행해가는 마찰 상태 또는 단기 균형의 순간들이 아닐까? 깊이와 넓이 중 먼저 취해야 하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이때 각자의 상황에 맞게 무엇을 먼저 취할 지 정해야 한다. 예컨대 (꼭 들어맞는 비유는 아닌 것 같지만)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 물가 안정과 경기 진작을 동시에 달성할 수 없으므로 먼저 좇아야 할 정책 목표를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 상황에서는, 특히나 1년 안에 눈 앞에 닥쳐올 당면 과제들을 감안했을 때, 깊이를 먼저 택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깊이라고 하기에 애매할 지도 모르겠으나, 일단 수업 내용과 과제 위주로 안 되면 외우기라도 해서 내 것으로 만들기. 그렇다, 일단 당장 꼭 해내야하는 것들을 열심히 파야지. 그러나 과거의 경험과 한 학기 동안의 슬픈 삽질을 통해 느꼈던 점에 비추어본다면, 어쨌든 깊이를 택하여 정신 없이 달려가는 동안에도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의 능력과 저변 또한 어느 정도 넓어져 있었던 것 같다. 뭐랄까, 큰 어항 속에 들어있는 실린더를 채우는 듯한 느낌이다. 어쨌든 당장 채워야할 실린더에 열심히 물을 채우다보면 그것이 넘쳐흘러서든 아니면 실린더의 작은 틈과 구멍을 통해서 새어나간 것이든, 그 과정에서 큰 어항의 수면도 높아질 수 있는 것 아닐까.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열심히 온 맘 다해 하는 것. 실린더 넘치게 쏟아부어보자구요.
괴테의 파우스트에는 이런 말이 있다. "날마다 자유와 삶을 쟁취하려고 노력하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네," 원문이 무엇인지 찾아보던 중, 다른 구절을 보았는데 오히려 마음에 더 와 닿았다.
Who strives always to the utmost, for him there is salvation.
연금술사라는 소설의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나를 돕는다'는 구절이 유행처럼 번져 모두의 마음을 흔들던 때가 있었다. 파우스트의 위 구절들도 결국 같은 맥락에 있는 것 같다. 무언가를 갈망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 걸까?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은 시대와 국가를 초월하여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는 듯하며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려왔던 것 같다. 그러나, 간절히 바라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 물론 가장 본질적이고도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겠지만, 마음만 안 꺾이면 뭐하냐고요. 못 하는 것을 계속하면 비굴해진다고 누가 그랬던가. 결국 최종 귀착지가 그것을 완전히 이루는 것이라면, 나아가는 과정에서--때때로 헤매고 거꾸로 갈 지언정--크고 작은 중간 단계들을 달성해나가는 것 역시 '갈망'을 성취해내는 것을 구성하는 일부로 볼 수 있겠다. 그러므로 간절한 마음을 소중히 지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정성을 다해 해나가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동양 문화권에서는 '진인사 대천명' 정신일까.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등 꾸준한 노력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말은 수도 없이 많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 만큼이나 많다. 자, 그렇다면 이제 오늘의 일기이자 다짐은 여기까지 하고 한 걸음 떼러 가보자고요!
* '날마다 자유와 삶을 쟁취하려고 노력하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네.' 이것의 원문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것으로 추정된다.
Freedom and life are earned by those alone who conquer them each day anew.
Partially English
As always, too many stacks of work are right around the corner; oh, wait, it's already here lol. How on earth can the very first assignment be a full five-page long--even supposedly in 9 pt-- requiring me to recall almost all I've learned from the previous semester? But yes, I know I totally deserve it since I was a bit negligent in wrapping up and reviewing the course materials; instead, I just relaxed and unwound (feat. abortive plans for the winter break). Ah, now I hate you, me from the past. Nonetheless, no time to waste grieving over past mistakes. What I have to do right now is just learn from them and move on, and do homework. By the way, this being so, rewriting pieces from my daily journal in English would be coming shortly later on, or just skipped and substituted by this short introspection with a small drop of whingeing in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