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07 그토록 바랐던 오늘

작년의 내가 그토록 바랐던 순간에 살고 있다는 것

by 꾸준한마음

일기 겸 영어 작문의 일상화를 야심차게 꿈꾸며 시작한 브런치는 역설적으로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뒷전으로 밀려나고야 말았다. 작가 신청이 승인된 줄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불현듯 생각나서 확인해보니 다행히 한 번에 통과가 되어 있었다. 작은 기쁨 +1. 브런치 작가가 된 기념으로 써보는 그간의 근황 정리 및 마음일기.


이틀 뒤면 개강한 지 1달째가 되는 날이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것들이 결정되었으나, 여전히 많은 것들이 불확실한 상태이다. 가장 큰 불확실성은 다음 학기의 내 거취와 직결되어있는데, 다음 학기에 내가 여기 이곳에 존재하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인 상황이므로, 그간 내렸던 결정과 결단들이 과연 실제로 발효될 수 있을 것인지를 단언할 수 없는 다소 무서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허허.


이제 내가 멍청하다는 것을, 당연히 꼼꼼히 읽고 내 힘으로 풀어야겠으나, 시간은 부족하고 할 것은 많으므로 안 되겠으면 답지라도 외워서 체화해야 한다는 것을 아주 완전히 납득하였고 또 그렇게 할 각오가 되어있으며 한 학기 하고도 한 달의 고군분투를 통해 이런 삽질들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늘 그렇듯 대단한 각오와 완벽한 계획을 얼마나 실행에 옮기느냐는 또 다른 문제인 것이다.


예컨대 지난 주에는 천재지변으로 인해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수업을 들은 덕에 이래저래 버려지는 시간이 줄어 공부할 수 있는 절대 시간은 늘어났으나, 그만큼 여유로워진 마음에 공부한 시간은 오히려 줄어든 것 같았다, 아니 확실히 줄어들었다. 반성하며 다시 조금 더 정신을 차리게 되었고 조금 더 정신을 차린 덕분에 조금 더 집중한 시간과 공부한 시간이 길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저 흘려보내는 시간은 많다. 1분 1초도 흘리고 싶지 않은데. 이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어이없도록 무력하게 시간을 흘리고 있는 나 자신. 我와 非我의 투쟁도 아니고, 그냥 我와 我의 투쟁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흘리는 시간이 조금 줄었다는 것, 즉 나와의 약속을 어긴 시간이 조금은 줄어들었다는 데 희망을 가져보기로 한다. 이 기세를 몰아 바짝 폼을 올려봐야지.


어떻게든 힘을 내서 꼭 해내고 싶다. 간절하다. 다음 학기에도 여기서 계속 미래를 꿈을 꾸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도록 만드는 건 온전히 내 몫이다. 인생은 버티는 거라고 했다. 나보다 잘하는 친구들이 나보다 열심히 하고 있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다행히도 이 레이스는 경쟁이 아닌 것 같다. 나는 내 페이스대로 가면 된다. 그래도 멋진 보석을 타산지석으로 삼으면 인생에 도움이 될 테니까, 그 친구들보다 더 열심히 해서 조금씩일지라도 꼭 그들과 나 사이의 갭을 좁혀가야겠다.


그래도 이 곳에서의 하루하루가 나는 너무 즐겁다. 수업 듣는 것도 재밌고, 내 연구를 하게 될 것도 기대가 된다. 물론 순간 순간 불만스러웠던 점들이 없었겠냐만은 그것은 정말로 순간일 뿐이었고 금세 잊혀졌다. 대세에 지장을 줄 정도로 치명적이고 근본적인 것들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상 속에서 한국에서 아쉽다고 생각했던 점들이 모두 채워지는 것이 참 좋다. 왠지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잘 될 것 같다는, 근거는 없지만 기분좋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렵게 얻은 기회인 만큼, 내 하루하루를 돌이켜 생각할 때면 늘 벅차고 또 감사하게 된다. 작년에 새벽에 택시를 타고 집에 오면서, 택시 안에서 봤던 캠퍼스의 모습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게 생각이 난다. 기사 아저씨의 "At least you are here" 라는 말에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짓누르던 큰 바위가 쩌억 하고 갈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도 여전히 할 일을 다 마치지는 못했지만 (암, 택도 없지..), 다음날 수업을 들어야 하니 잠깐 눈 좀 붙이고 씻고 나오려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정말 피곤했고 뭔가 신체의 노화가 체감되면서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지만, 생각해보면 불과 2022년에 그토록 바라고 또 바랐던 곳에서, 그토록 바라던 공부를 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토록 바랐던 것이 일상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새삼스럽게도 갑작스레 행복해졌다.


그래서 인가 보다. 아무리 힘들어도 베이스는 행복함과 감사함인 것은. 열심히 해서 꼭 이 행복을 더 이어가야지. 부디 몸도 마음도 건강했으면 좋겠다. 맘껏 달려볼 수 있게!


* 오늘도 영어 일기는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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