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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숲 Apr 07. 2024

네모난 보상

내일의 기록: 지하철 출퇴근

가로지르다는 말 그대로 인천에서 서울을 향한 지하철 노선은 가로로 놓여있다. 출근 시간엔 상행선이 만원이고 저녁시간엔 하행선이 만원이다. 안타깝게도 인천이 거주지, 서울이 일터인 탓에 출퇴근길 모두 만원 전철에 오른다. 일자리는 서울에 모여있고 인천의 집값은 서울에 못 미치니 당연한 결과인가 하고 노동자 특유의 자기 비하 섞인 한숨을 쉬어보기도 하지만, 그 깊은 한스러움도 자리를 차지하기엔 역부족이다.


지하철 자리. 그것은 새벽같이 나와 밤늦게 퇴근하는, 늘 지쳐있는 자에게 눈치 싸움의 치열함과 그날의 운이 점철된 보상이다. 새벽같이 나와 밤늦게 퇴근하는, 게다가 꽤 오랜 시간을 지하철에서 보내야하는 자에게는 간절히 바라게 되는 안락함이기도 하다.


그까짓 것 서서 가는 게 뭐 대수라고. 기껏해야 한 시간 남짓 조금 참으면 어떠냐 할 수도 있겠다. 오히려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것이 관절에 좋지 않은 데다가 서 있는 것이 몸에 더 좋을 것이라는 나름의 건강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앉을 수 있을지도 모를 그 기회를 포기할 수는 없다. 좁은 자리에 몸을 구겨넣고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앉은 자 앞에 서서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이다. 한 두어 정거장 지나면  제발 내려주세요.

자리를 얻기 위한 노력은 승강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오랜 기간 같은 시간에 같은 노선을 이용하다 보면 각 칸의 특성이 보이기 마련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환승역은 타고 내리는 사람이 많다. 시간을 금처럼 여기는 계획적인 많은 수의 사람을은 환승 노선으로 이어지는 계단이나 통로가 가까운 칸을 이용한다. 내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자리가 날 기회가 많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반대로 다른 칸 보다 밀도 높은 고통을 겪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게다가 높은 밀도는 자리가 나더라도 이를 차지할 기회를 낮춘다.


때문에 오히려 하차 후 다음 경로까지 좀 더 긴 시간을 들여야 하는 불편한 칸을 찾는다. 보다 여유 있는 공간에서 두리두리 살펴보다가, 한두 명 내리는 기회를 놓치치 않는다. 내리는 사람은 적지만 그만큼 서 있는 사람도 적어 자리를 차지할 확률이 높다.


서있을 때에는 주로 좌석의 가장 바깥쪽에 자리한다. 텅 빈 지하철에 오른 사람들이 어느 위치의 좌석부터 앉는지에 대한 기사를 본일이 있다. 대체로 처음에는 가장 바깥쪽 자리가 차고, 그다음은 그 반대편 가장자리가, 이어 중간 자리 바로 옆이 각각 채워진다. 징검다리처럼 한 칸씩 띄어 앉은 후에야 그 사이사이 빈자리들이 채워진다고 한다. 누구나 옆사람과 붙어 앉기보다 사람이 없는 자리에 편히 앉길 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패턴으로부터 가장자리에 탄 사람이 가장 먼저 탔을 확률이 높다.  물론 가장 먼저 탔다고 가장 먼저 내리는 것은 아니다. 저 먼 종점까지 갈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 역에서 방금 승차해 앉은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평균적으로는 바깥자리에 앉은, 아마도 지하철에 오른 지 가장 오래된 사람이 보다 먼저 내릴 확률이 높다는 믿음으로 그 앞에 선다.


지옥철이란 말이 있다. 그 혼잡함이 고통이 되어 버렸음을 뜻하는 말이다. 매일같이 오르내리는 역은 모두 환승역이기에 탑승자가 넘쳐 지옥철을 피하기 어렵다. 때문에 출퇴근길에 편히 앉아 가길 바라는 것은 요행에 지날지도 모르겠다.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 초연하지 못하고 승강장 번호를 외워 끝자리에 서 어느 자리가 먼저 나나 눈치보는 피곤함은 구질구질함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직 덜 깬 잠을 재워줄 자리가, 꾹꾹 눌러 담다 넘쳐버린 스트레스를 가라앉혀줄 자리가, 무거운 피로를 덜어줄 자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오늘도 찾아본다. 

출근길의 치열함과 퇴근길의 지침을 담아줄 네모난 보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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