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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무 Apr 07. 2021

비대면 글쓰기의 기쁨

신 인류의 우정


온라인 글쓰기 공동체

<마감의 기쁨과 슬픔> 1주년을 기념하며


초조한 마음으로 목요일을 맞이한다. 생각의 흐름을 적어둔 핸드폰 메모장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뭐라도 써질 것처럼. 부지런하게 미리 써두고 싶지만 대개는 일요일 오전에서야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지난 1년 여의 시간 동안 마감의 기쁨과 슬픔의 굴레로 들어온 내 일상의 한 흐름이다.


근 십 여년간 '쓴다'는 행위를 지속하기는 했다. 시험보다 글 쓰는 과제가 많은 전공을 택한 죄, 그리고 그 시절을 되돌아보지 않고 대학원에 진학한 죗값 덕분이다. 하지만 보고서의 형태를 가진 글쓰기는 틀이 정해져 있고, 익숙해지면 큰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한 때 논문을 탐독하며 지식 흡수의 열망에 휩싸이기도 했으나 밥벌이와의 병행은 이를 어렵게 만들었다. 마감일이 오면 책의 요점이나 논문의 서론과 결론을 이리저리 조합해 제출하는 것에만 의의를 둔 무언가를 던져버리고 새까맣게 잊어버리곤 했다.


그래서 비정형화된 자발적인 기록을 하고 싶었다. 태생적으로 귀찮음이 많아 실천은 잘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러다 만나던 사람에게 이별 선언을 듣고, 실연의 고통에 사로잡혀 있다가 인스타그램에서 평소 내적 친분을 쌓아오던 사과집이 글쓰기 동료를 구한다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게 되었고, 덜컥 참여하겠다고 메세지를 보냈다.


모임을 주최한 사과집 이외에는 모두 초면이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아는 건 필명, 인스타그램 계정 정도였다. 궁금한 마음에 사람들의 인스타그램을 구경해보았다. 독립출판으로 책을 발간하고, 안정적으로 직장을 다니는 동시에 자기 색깔로 뚜렷하게 일상을 꾸리는 사람, 숱하게 많은 책을 읽으며 세계를 확장하는 사람,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뚜렷하게 아는 것 같은 사람 등, 다들 무언가를 한 가지씩은 꼭 성취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실연으로 예상치 못한 상실의 고통이 커서 그랬는지 나는 그림자만 어둡고 짙게 남은 사람 같았다.


누구도 나를 패배시키지 않았으나, 패배감을 안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욕심의 절반을 줄였다. 그저 써낸 것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글을 내놓자고. 마기슬 제 1규칙,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 제출하기'를 늘 되새겼다. 마음에 안 들 것 같으면 시작도 안 하거나 뒤엎어버리고 싶은 욕구를 삼키고 한 편, 두 편 그렇게 글을 제출했다. 나에게 이런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고 조심스레 드러내 보았다. 그림자가 있는 만큼 빛이 비춰지는 부분도 있고, 혹은 다른 모양의 그림자도 있다며 대책없이 솔직한 이야기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이에 우리는 글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의 자발적인 독자가 되어 각자의 글에 '읽기'라는 행위를 동반했다. 글을 읽고 피드백을 하는 제법 적극적인 읽기 행위는 우리가 모르고 있던 각자의 삶을 이해 하도록 돕고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는 매개체였다. 빨간 줄을 벅벅 긋는 첨삭이 아닌, 공감을 덧붙이고 거기에 또 나의 이야기를 털어 놓고, 좋은 점에 좋은 것을 더해주는 방식이었다. 피드백이 글 한 편에 맞먹는 분량으로 달린 적도 있었다. 글쓰기에 글쓰기를 더하기, 우리는 서로 피드백이 받고 싶어 글을 올린다는 우스갯 소리를 나누기도 했다.


1년 여의 시간이 지나며 우리는 서로의 실명은 알게 되었다. 나이가 몇 살인지, 무슨 일을 하며 밥벌이를 하는 지는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기도 하다. 하지만 떡볶이 먹는 걸 아직도 좋아하고, 카페에 가면 커피 아닌 음료를 시키는 지 취향도 알게 되었고, 누군가는 맥주에 관대하고 또 누군가는 와인을 선호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모든 소통이 비대면일 것을 권고 받는 시국에 오히려 각자의 글을 얼굴과 목소리 삼은 것이 새로운 형태의 관계 맺기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우리는 무너짐을 독려하고 삶 안에서 서로가 이룬 성취를 눈치 보지 않고 드러내고 또 기꺼이 자랑해줄 수 있는 사이, 그리고 이루기를 격려하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의 발은 모두의 안전을 위해 묶여 있으나 키보드 위를 누비는 손가락만큼은 자유로울 수 있다. 얼굴을 맞대지 않고도 새로운 우정을 쌓아 올릴 수 있다는 가능성의 발견이 내가 경험한 비대면 글쓰기의 황홀한 기쁨이 아닐까 싶다.





본 글은 2020 비학술적 학술제에 글쓰기 동료들과 함께 기고한 글 중 일부입니다.

https://www.forumnotforum.net/magiseul.html


[마감의 기쁨과 슬픔]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weeklyma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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