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경 <그 자체로 소중한배움>을 읽고
소위 '학창 시절'이라고 불리는 10대 시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때를 생각하면 즐겁거나 행복했다 싶은 때가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무리에 속해 늘 배제되지 않은 상태로 있기 위해 머릿속에 힘을 꽉 주고 분투했던 기억만 떠오른다. 각자 휘몰아치는 폭풍우를 속에 담고 있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종류가 무엇인지도 불분명해 안팎으로 계속 상처를 내고 할퀴는 개인들의 집합이 좋았을 리가 있나. 그래도 그 시절을 통해 얻은 게 있다. 그때 배운 교과서의 내용들은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양분이 되어주었고, 그 양분은 또 3년 정도 숙성되어 나를 대학에 보내주었다. 대학에서는 운 좋게 잘 맞는 전공과 배제당할 염려 없는 사람들을 만났다. 위계질서도, 헛헛한 권위에도 눌리지 않고 너른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설칠 수 있었다. 대학 생활이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대학을 보내준 것만으로도 학창 시절의 고된 날들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그렇게 기억에 채색을 해놓고 살다 칼럼을 읽고 기억을 다시 뒤집어 봤다.
적으면 서른몇 명, 많으면 못해도 마흔몇 명의 인간 군상이 모여 있는 교실. 교실이라는 공간이 주어진 그 시기가 아니었다면, 언제고 이렇게 많은 인간 군상을 경험할 일이 있을까. 책상에 앉아 무슨 과목이 재미있고 흥미가 있고 이런 것을 발견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교실 안에서 배운 건 '적어도 이렇게는 살지 말자'라던가 '저런 어른은 되지 말자'와 같은 반면교사로 삼을 것들이었다.
학급 내 도둑들이 난무하던 때였다. 그 도둑들은 잊을만하면 나타났고, 다른 반에서 mp3니 뭐니 하는 것들이 털렸다는 흉흉한 얘기가 돌아 다들 값나가는 물건들은 교실에 두고 다니지 않게 되었다. 가방에는 도둑질 맞아도 손해가 없는 것들을 두고 다녔다. 어느 날엔 가방 속에 비상용으로 넣어둔 생리대를 털어간 걸 발견한 적도 있었다. 그냥 웃겼다. 털어갈 만한 게 없어 무안한 손이 생리대도 가져가는구나.
그러던 어느 날 급식을 먹고 교실로 돌아왔는데 도둑들끼리 싸움이 나서 서로 머리채를 잡고 뒤 엉기던 풍경을 마주했다. '오, 쟤랑 쟤가 내 생리대 털어간 애들인가?' 하는 생각이 스치는 사이에 찢어지는 고성과 손찌검이 오갔다. "이년아, 저 년아"로 시작해서 네가 훔치자고 했네 어쨌네 하며 겉보기엔 이기는 사람 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둘 다 도둑은 맞지 않나? 근데 싸움에 진 애가 그들 무리에서 왕따를 당하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는 방학 중 보충 수업 일 수 절반을 자습 시간으로 채우게 하곤 뉴욕 여행을 갔다 왔다고 자랑하며 흑인 여자들은 핫초코 색 파운데이션을 얼굴에 바르더라며, 너무 신기하지 않냐는 얘기로만 수업 시간을 꼴딱 채운 교사도 있었다. 남학생들은 선 채로 종아리를 때렸으면서 여학생들은 엎드려뻗쳐를 시키고 엉덩이를 때리던 남교사도 있다. 매질에 너풀거리는 옆 친구 치마와 그 사이로 드러나는 몸이 내 것인양 눈을 질끈 감곤 했다.
전쟁터와 같았던 교실에서 배운 것은 전부 그런 것이다.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저런 인간은 되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