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때문에, 아니 덕분에 머물고 싶어지는 마음

by 오늘도 지금처럼

지유: “금성, 만약에 12월 이후에도 일할 수 있다면 청도에 계속 있을 거야?”

금성: “음… 아니! 나는 12월에 바로 집에 갈 거야.”


지유는 틈틈이 내년에도 청도 있을 마음이 있는지 물어왔고, 그때마다 나의 고민을 들어줬다. 보통의 나라면 누군가 제안하거나 마음을 묻는 말에 “그래, 하자!”, “좋아!”라고 대답했을 텐데, 이 질문만큼은 늘 단호하게 “아니”라고 했다.


분명 6월 전까지는 그랬다. 내년을 생각했을 때 내가 어떤 업무나 포지션을 맡게 될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고,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 자주 노출되었다. 나는 빠르게 익숙해지려고 발버둥 쳤지만, 짧은 시간에 지쳐버렸고, 도망치듯 본가에 다녀오곤 했다. 주변 사람들은 정말 힘들면 중간에 포기해도 괜찮다고 말해줬다. 하지만 청도에 내려오기로 했을 때, 그만큼 많은 고민을 했고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를 만든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중간에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간다면, 나중에 비슷한 상황에서도 쉽게 포기해 버리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건 다른 사람보다 내가 나에게 실망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12월까지는 버티자고 다짐하며 시간을 보냈다.


KakaoTalk_Photo_2025-08-24-23-34-05.jpeg 2025. 06. 05 / 청도군 각북면 지슬 1리에서


그런데, 6월 초, 확고했던 마음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내가 맡은 사업은 아니지만, ‘모두의 마을’이라는 사업을 보조할 기회가 생겼다. 중학생들이 마을의 어르신들을 만나 사라지는 마을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사업이었다. 한 달 동안 마을 회관을 찾아갔고 빨래터, 저수지 같은 이야기가 있는 장소들을 함께 다녔다. 주로 읍에서 생활하다가 마을로 들어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청도의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 풍경과 분위기가 우리 시골과 닮아 있었다. 긴장하던 내가 아닌 편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했고, 같이 일하는 동료가 “금성님, 너무 행복해 보인다”라고 할 만큼 즐거운 시간이었다.


회사 밖에서는 새로운 친구들도 만났다. 청도에서 사귄 친구들은 경산, 밀양, 대구, 경주와 같이 내게는 여행지인 곳을 “저녁 먹으러 갈까?” 하며 일상으로 만들어 주었다. 내가 따로 계획하지 않아도 이미 친구들은 많은 곳을 알고 있었고, 나는 그냥 마음만 먹으면 됐다. 초등학생 이후로 이렇게 계곡에 많이 간 적이 있었던가? 여름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나였는데, 올해 여름은 특별히 청량하고 소중해서 여름이 가고 있는 게 아쉬웠다.


2025. 07. 05 퇴근 후 훌쩍 떠난 경주에서

그래서 6월 말, 처음으로 이 말을 내뱉었다. “내년에도 청도에 있고 싶다. 이제 내 선택이 어디로 흘러갈지 잘 모르겠다.” 결국 나는 사람, 관계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최근 지유에게 말했다. “만약에 12월이나 언젠가 청도를 떠나게 되면, 아마 다시는 청도에 못 올 것 같아.” 청도역, 공설운동장, 읍내… 우리가 함께 다녔던 곳들을 혼자 걷을 때 어떤 감정을 느낄지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의 순간과 감정들이 분명히 떠오를 것이다. 장소는 그대로여도 모든 것이 변해 있을 그 상황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솔직히 무섭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건 철저히 나만 생각한 이기적인 마음이라는 걸. 우리는 결국 언젠가는 서울로 돌아갈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떠난 이후에도, 남아 있는 사람들은 내가 걱정했던 그 상황을 똑같이 겪게 된다. 그들의 감정을 고려하지 못한 채, 나만의 두려움만 생각했다.


그래서 요즘은 오히려 더 고민이 깊어진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친해질수록, 전처럼 “12월까지는 버티자”가 아니라 “이 사람들 때문에라도 청도에 더 남고 싶다.”라는 마음이 커진다. 아마 내가 청도에서 배우고 있는 건 결국 ‘사람’, 그리고 청도가 나에게 준 것은 결국, ‘사람 때문에 머물고 싶어지는 마음’ 같다.


☁︎ 기록한 사람 | 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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