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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Dec 14. 2017

글쓰기에 대한 열망

때로는 쉬어가듯, 때로는 춤추듯

오전 3시. 아직도 잠 못 이루고 있다. 이 새벽에 갑자기 노트북을 켠 건 순전히 복숭아 홍차 때문이다. 홍차에 카페인이 많다는 걸 깜빡 잊고 향기가 좋아 몇 잔을 연달아 마셨더니 통 잠이 오지 않는다.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도무지 가만히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글을 써보기로 했다. 


글쓰기에 대한 열망은 늘 있었다. 한창 인터넷 소설이 유행하던 때에는 새벽까지 글을 쓰기도 했다. 늘 새로운 소재를 생각하며 행복한 공상에 빠졌고, 그맘때쯤 릴레이 소설이 유행했었는데 친구들과 함께 인터넷 소설을 쓰기도 했다. 밤늦게까지 컴퓨터 하는 걸 부모님이 좋아하시지 않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모두가 잠든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기도 했었다. 그때 쓴 글을 어디 사이트에 올리거나 출판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지금도 그때의 설렘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한때 그렇게 열정적일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다.


이렇게 좋아했던 글쓰기와는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간간이 책은 읽었다. 선생님들은 "책 읽지 말고 공부해야지."하곤 하셨지만, 다행히 그때는 논술이 대세였다. 고 1인가 2 때는 학교에서도 논술 강사를 초청해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논술 수업을 듣기도 했다. 소위 말하는 '어렵고 중요한 책'을 그때 몇 권 읽었던 것 같고, 가끔은 논술을 핑계로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책을 읽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항상 글이 쓰고 싶었다.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고, 책을 읽거나 글 쓰는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 하지만 고 3이 되어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하다가, 크게 성공하지 않는 이상 작가로 돈 벌기는 쉽지 않다는 현실을 인정한 뒤 꿈을 깔끔히 내려놓았다. 대신 성공한 사람들이 우후죽순으로 책을 펴내는 것을 보며 나도 다른 일을 하며 언젠간 책을 내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간 딱히 큰돈을 벌지도 못했는데 그냥 어릴 적 꿈대로 나아가 볼 걸 하는 아쉬움도 있다. 돈에 눈이 멀어 내 오랜 꿈을 너무 일찍 포기해버린 게 아니었는지. 그때 조금만 더 용기 냈었더라면. 그냥 눈 딱 감고 문예창작과나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물론 못 가 본 길이 더 아름답다고. 어쩌면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이라 마음에 더 밟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당시 내가 그만큼 간절하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늘 글이 쓰고 싶었지만, 언제나 시작하지 못할 이유를 대기 바빴다. 학생 땐 '노트북만 있다면'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아쉬워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기숙사에 살았고, 공용 컴퓨터실은 늘 자리가 꽉 차 있었다. 대학생이 되어 아르바이트하고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는 '조금만 더 여유로워지면'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막상 노트북을 장만하고 나자 처음의 다짐은 사라졌고, 여유 시간이 나면 다른 일을 하기에 바빴다. 글 쓰는 것보다 이미 보기 좋게 완성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편이 더 쉽고 간단했으므로.



그렇게 스물일곱이 되었다. 늘 하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그 일을 지속할 힘은 없었다. 그래서 관계도, 일도 너무 쉽게 시들해지거나 때로는 너무 조바심을 냈고 그만큼 쉽게 지쳐 버렸다. 그래도 지금껏 포기하지 않은 게 있으니 바로 글쓰기다. 마침 혼자만의 공간과 여유시간이 생겼고, 이 곳에 짐을 풀면서 이번엔 한 번 진득하게 글을 써보자고 다짐했다.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내 이십 대의 마지막 기록을 갖고 싶어서. 그렇게 노트북 한편에 차곡차곡 글이 쌓여가지만 이마저도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다. 벌써부터 끝을 고민할 필요도 없고, 본디 꼭 끝을 보기 위해 시작하는 것은 아니니... 그저 쉬어가듯, 때로는 춤을 추듯 한 번 나아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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