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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Jan 01. 2018

새해가 밝았다.

그래서 내 마음도 밝아졌다.

새해가 밝았다. 이렇게.

오랜만에 다낭에도 해가 떴다. 

잠을 실컷 자려고 했는데, 눈부신 햇살에 그냥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내일은 다시 한 학기가 시작되는 날. 학기 첫날부터 5시간 연강에 조금 겁이나긴 하지만, 욕심내서 OT 대신 수업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니 기대도 된다. 그래도 새해 전에 수업 준비를 다 마쳐서 마음이 뿌듯하다. 



한 해를 돌아보니 생각나는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말이다. 정말 죽겠는 사람에게 '그래도 이겨내야지, 그래도 힘내'라고 말하는 나를 상상하면 너무 잔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상대방의 어려움을 몰라서 던지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상대를 아끼고 사랑하기에 '다시 일어날 이유가 (어딘가에는) 분명 있다'라며 희망을 주고 싶은 마음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수업 준비를 하며 유튜브를 뒤적거리다 방송인 안영미 씨가 자존감에 대해 말한 영상을 봤다. 본인은 꿈이 없다고. 분명한 목표와 계획이 있으면 자꾸 남과 나를 비교하게 되는데, 자신은 '이렇게 되고 싶다'라거나 '이건 꼭 할 거야'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남들이 볼 때는 자존감이 높아 보이는 것 같다고. 그래서 그냥 하루하루에 감사하며 즐기며 살아간다는 말에 깊은 공감이 되었다. 


물론 세상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있고 저마다 다른 방법과 다른 방향으로 삶을 살아간다. 꿈을 좇으면서도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는 사람이 있고, 오히려 구체적인 목표나 계획이 없어서 자존감이 낮아지는 경우도 있다. 


나의 경우를 돌아보자면, 나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이 있어서 더 힘들었었다. 

어릴 때야 뭐 무한대의 꿈을 꾸었지만, 조금씩 자라면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짜는 것이 좋았다. 대학 때도 교양수업 때 교수님이 소위 말하는 '인생 플랜'이라는 걸 짜보라고 하면 그 시간이 그렇게 신났었다. 하지만 삶이라는 게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만은 않기에. 때로는 예상치 못했던 제삼자가 개입해서 삶이 어그러지기도 했고,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목표한 것을 향해 나아가지 못해서 몸과 마음이 다 주저앉기도 했었다. 


그런 노력은 대인 관계에까지 이어졌다. 나는 말에 실수가 잦고 행동도 얌전치 못한 편이다. 그래서 부단히 '아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며 자책할 때가 많았다. 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나의 잘못을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우울의 늪에 빠질 때가 더 잦았다. 나도 사람이기에 때로는 신경질이 나고 질투도 하고 짜증을 내는 것이 당연한데도, 나 자신을 너그럽게 봐주지 못했다. 


어떤 영화에서 말했듯이 누구나 소쩍새 우는 슬픈 사연은 있다고는 하지만 인간이란 본래 자신의 슬픔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이기에. 나는 계획이 틀어질 때마다 좌절했다. 그로 인해 내 삶 전체가 틀어져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한없이 무기력해졌고, 기운이 나지 않았다. 내게 융통성이 있다면 좋았으련만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은 촌스럽기에-. 


얼마 전 친한 친구들이 잠시 다녀갔다. 둘 다 바쁜 일정을 쪼개서 온 것이기에 긴 시간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오랜만에 만나 수다를 떨며 다낭의 맛과 아름다움을 공유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나는 본래 혼자 있는 것을 더 선호하지만, 내 마음에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라고 다시 한번 느꼈다. :)


요즘 다낭 날씨가 정말 별로라서 이 친구들이 다녀가는 동안 만이라도 해가 좀 뜨길 바랐었는데, 이들이 머문 3일 내내 날이 흐렸고, 심지어 바나 힐에 간 날엔 비바람이 불었다고 한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이들을 배웅하고 난 다음 날 아침부터 해가 뜨기 시작했다. 반팔을 입고 나가도 될 만한 날씨였다. 이런 날에 예쁜 바다도 보여주고 싶었고, 그 근처에서 맛난 해산물도 먹이고 싶었는데-. 이 별난 타이밍에 당황스럽기보다는 웃음이 났다. 


그렇게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신나게 놀았고, 매 순간이 즐거웠다. 심지어 와인 오프너 없이 달랑 와인 한 병을 들고 왔을 때에도, 가위로 코르크 마개를 파가면서 우리만의 소소한 파티를 벌였다. 비행기 티켓은 끊어 놓았지만 여행 일정 짤 시간도 없어서 '이러 다 못 가는 거 아닌가'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무계획으로 다낭에 왔을 때, 그들은 여유로웠고 나는 몹시 당황했었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래도 볼 건 다 보고, 먹을 건 다 먹고, 살건 다 사고, 놀건 다 놀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치 즐겼다. 아예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면 거짓이겠지만, 여행이란 언제나 조금의 아쉬움을 남겨두어야 두고두고 미화시킬 수 있는 거니까-.


삶이란 참, 이렇게 내게 다채로운 감정을 주려고 자꾸 이렇게 다른 방향으로 뛰나 보다. 돌아보면 나 역시 예상치 못했던 귀인을 만나서 일대 기회를 잡기도 했고 노력에 비해 과한 상과 관심을 받기도 했다. 나를 할퀴고 지나간 사람과 사건이 있었고 그때는 정말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진 듯한 느낌이었지만, 어느새 그 일도 과거가 되었고 나는 이렇게 또 하루를 살아가고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이십 대 후반을 달려가면서도 나는 여전히 못하는 게 많다. 자전거도 못 타고, 그렇게 벼르던 수영도 못 배웠다. 쉽게 우울감에 빠지고 자주 설레며, 코에 바람이 한 번 들어가면 분위기에 너무 쉽게 취해버리곤 한다. 여전히 사랑받는 게 좋고, 그것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노력하고 마음을 쓰기도 한다. 미움받는 게 싫어서 속 편히 살지도 못한다. 중요한 순간에 자신감을 잃기도 하고, 때때로 열정이 과해 적당히를 모르거나 버릇없어지기도 한다. 가끔은 그 누구도 나의 존재를 모를 만큼 조용히 살고 싶다가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나의 연약함이 드러난 날에는 내가 너무 가련하고 짠하다. 그리고 나의 진가가 드러나는 날에는 내가 한없이 예쁘고 자랑스럽다. 새해를 맞아 나는 지금 이대로의 나를, 시간이 지나며 이런저런 모습으로 변하게 될 나를 더욱 사랑하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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