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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Nov 10. 2019

[다낭소리] 봉사활동 모금 공연

 봉사활동 모금 공연

 학생에게 연락이 왔다. 호이안에서 봉사 활동 모금 공연을 할 건데 같이 가겠느냐고 묻는다. 호이안은 다낭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관광지다.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밤 시간대를 이용해 모금 활동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언제? 내일이다.  


 다낭 대학교에서는 매년 우기 때마다 베트남 산간지역이나 소수민족이 사는 마을에 찾아가 따뜻한 옷과 학용품을 나눠 주는 활동을 한다. 친한 학생 몇이 나에게 같이 가자고 했었지만 하필 협력 활동과 날짜가 겹쳐서 못 가는 상황이었다. 너무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이렇게라도 함께하자는 연락이 와서 반가웠다. 


 다낭 외대 정문에서 만나 다함께 이동하기로 했다. 알려 준 시간에 맞춰 가니 오토바이 스무 여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학교에서 절대 볼 수 없는 수의 남학생들이 보였다. 순간 잘못 왔나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우리 학생들을 만났다. 이번 봉사활동은 다낭 대학교 부속 외국어 대학교와 건축 대학교 학생들이 연합하여 준비했다고 한다. 나에게 연락 준 학생이 외대 봉사단 리더, 그의 남자친구가 건축대 봉사단의 리더였다. 사랑은 이렇게 싹트나 보다. 


 모인 학생들을 보니 어림잡아도 서른 명은 넘어 보였다. 오토바이 뒤에 스피커와 기타를 싣거나 둘씩 짝을 지어 이동했다. 스무 대 넘는 오토바이가 다함께 출발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어디 출전하는 운동 팀 같기도 했다.

 

 호이안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공연할 장소를 모색했다. 이미 다른 팀이 자리를 잡아 하는 수 없이 출구 쪽에 세팅했다. 준비하는 데만 시간이 꽤 걸렸다. 곧 패키지 관광객이 떠날 시간이다. 나만 조급한 건지 아이들은 세월아 네월아. 그래도 이제 나는 우리 학생들을 믿는다. 내 눈에 어떻게 보이든 아이들만의 계획과 속도가 있다. 함께 ‘꽝찌에서 쏘아 올린 작은 공’ 봉사 활동을 하며 배운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재촉하는 대신 나도 대기하는 아이들과 수다 떨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자리가 좋지 않아서인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열심히 공연했다. 노래와 춤, 전통 무용까지 학생들이 정성들여 준비한 것이 느껴졌다. 몇몇은 모금 취지를 설명하는 팻말과 포스터를 들고 거리로 나갔다. 나는 한국어로 공연 취지와 봉사 활동 내용을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다. 언제 나갈지 몰라 대기하고 있다가 잠깐 긴장을 푼 사이에 호명되었다. 한참 박수치며 공연을 보다가 앞으로 나와 달라 기에 일단 마이크를 잡았다. 이들이 모두 대학생이고 자비로 이번 활동을 준비했다는 것을 설명한 뒤 우리가 가게 될 지역을 소개했다. 한국어가 들리자 지나치던 관광객들이 돌아 봤다. 다행이다! 


 오늘 학생들이 나를 부르고 한국인 관광객이 많은 이곳을 공연장으로 택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어로 된 공연이 하나도 준비되어 있지 않아 살짝 당황스러웠다. 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한국 음악 틀고 막춤이라도 추면 신기해서 구경 올 텐데, 연달아 구슬픈 베트남 노래를 부르는 사이  관광객들이 관심 없이 지나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나도 노래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예약을 받아 두고는 거리에서 홍보하는 아이들을 찾아갔다. 서투르지만 열심히 한국어와 영어로 설명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고 가슴 찡했다. 


 같은 공연이 몇 번 반복되어 슬쩍 지루하다 느껴질 때쯤 장소를 이동하기로 했다. 아까 선점하지 못 했던 거리의 중심지로! 그리고 내 차례가 왔다. 사람들 이목을 끌고 분위기를 띄워 볼 요량으로 트로트를 불렀다. 익숙하고 흥겨운 소리가 들리자 한국 관광객들이 모여 들기 시작했다. 이때를 틈타 모금함을 돌리고 간단히 공연 취지와 봉사 활동 내용을 소개했다. 


 달라진 분위기를 눈치 챘는지 학생 중 한 명이 즉흥으로 케이팝 커버 댄스를 췄다. 사람들이 점점 몰리기 시작했다. 다시 내게 마이크가 쥐어졌다. 정리되지 않은 말을 내뱉다가 실수가 터졌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베트남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잖아요.”


 아, 말을 주워 담고 싶었다. 만약 어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이런 말을 했더라면 나는 대번에 자존심 상했을 것이다. 그 말을 내가 하고 말았다. 여기 우리 학생들도 있는데…. 평소에는 부러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기 때문에 방금 한 말을 학생들이 알아들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단 한 명이라도 알아들었다면? 그래서 상처 받았다면? 


 당황해서 재빨리 다른 말을 내뱉었다. 말을 마치고 마이크를 내려놓자 아이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나는 본래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갑자기 무대에 세워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걸 믿고 방심해버렸다. 내가 더 겸손했더라면, 아까 시간 있을 때 할 말을 좀 골라 놨더라면, 같이 들뜰 게 아니라 차분히 내 차례를 기다렸더라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다시 내게 마이크가 돌아왔다. 모인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우리를 찍는 게 느껴졌다. 이런 건 싫지만 물 들어온 김에 노 젓자는 심산으로 아이돌 노래를 골랐다. 가운데 멀찍이 놓인 모금함을 들고 우리를 빙 둘러싼 구경꾼 앞을 한 번씩 지나갔다. 내친김에 학생과 듀엣 곡도 하나 부르고 베트남 댄스곡도 불렀다.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공연이 마무리 되었다. 


 뒷정리를 하고 난 후에는 잠시 소감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마무리하니 거의 10시. 배가 고팠다. 뭐 좀 먹고 가려고 해도 갈 길이 멀다.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한 시간을 더 달려야 한다. 돌아오는 길은 정말 추웠다. 칼바람을 맞으며 달린 시간이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다낭에 돌아 와 자취하는 아이들끼리 늦은 저녁을 먹으러 갔다. 학교 근처에 문 연 식당이 없어 오토바이를 타고 조금 움직였다. 당면 같은 면발이 들어간 쌀국수. 처음 먹어 보는 음식이었다. 뜨끈한 국물에 언 몸을 녹이고 다들 한 그릇 혹 두 그릇씩 맛있게 비웠다. 고생한 아이들을 대신해 계산하려 하니 이미 내 몫까지 냈단다. 오늘은 이렇게 하겠다기에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 대신 두 손을 모으고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하니 기분 좋게 웃는다. 맑은 웃음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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