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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Nov 12. 2019

[다낭소리] 협력활동: 라온 한국어2

 협력활동라온 한국어2

 2019년 1월 19일. 행사 전 날. 한마디로 개판이다.


 아침부터 욕이 나왔다. 벌써 설치되었어야 할 행사 부스는 올 생각을 않고 몇 번을 전화해도 받질 않는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통화가 되었다. 사과는커녕 기껏 한다는 소리가 오후에 출발한단다. 화가 입 밖으로 튀어 나오려 했지만 나대신 성내는 현지 선생님을 보며 꾹 참았다. 


 열심히 준비한다고 했는데도 다시 점검하자 모자란 것투성이다. 쉬는 날 부러 도우러 나와 준 다낭 외대 선생님들 덕에 하나씩 정리되어 갔다. 같이 하니 이렇게나 편한 것을. 고맙고 서운한 양가감정이 들었다. 진작 도움이 필요했을 때는 왜 그리도 요청할 데가 없었는지, 그때는 다들 왜 그렇게 바빴던 건지 아쉬울 뿐이다. 여러 가지로 속상함과 아쉬움이 들었지만 돌아보기엔 이미 늦었다. 괜한데 에너지 쏟을 시간이 없다. 


 오후가 되자 행사를 도우러 단원들이 와 줬다. 바빠서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일거리부터 던져 줬다. 못내 고맙고 미안했다. 리허설 시간에 맞춰 각 기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리허설을 준비하러 강당에 내려가 보니 이미 다른 행사가 한창이었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싶었다. 혹시나 해서 어제 확인까지 했는데 이렇게 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학교 행정실에 연락을 넣고 조치를 기다리는 사이 다른 기관 관계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얼른 리허설 마치고 다낭 구경이라도 하고 싶었을 텐데…. 모두에게 미안했다.   


 한 시간 후에는 리허설이 가능하다고 하여 한숨 돌리나 했는데 이번엔 다른 데서 일이 터졌다. 갑자기 음향 기사가 우리 행사를 맡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눈앞이 깜깜했다. 정황을 알아보던 중 음향 기사의 기분이 상했다고 한다. 아마 상부에게 책망 받은 게 아닐까 싶다. 자기 잘못이라고 말하는 선생님 앞에서 속상한 티를 낼 수도 없었다. 서로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모르겠으나 두 사람이 틀어진 원인은 이번 행사다. 나야 곧 안 볼 사이지만 이 선생님은 앞으로 몇 년을, 학교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음향 기사를 만나고 같이 일해야 한다. 도리어 미안한 마음이 들어 선생님을 위로하였다. 


 그러면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머리를 빙빙 돌렸다. 어쨌든 행사는 진행해야하니 외부 인력을 부르려고 하는데 음향 기사가 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우리 학과의 사회생활 잘 하는 선생님이 찾아가 어르고 달래 데려온 것이다.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을 보니 정이 뚝뚝 떨어졌다. 나이 먹을 만큼 먹은 남자가 젊은 여선생 팔짱을 끼고 걸어오는 모양새가 징그럽기까지 했다. 화가 턱까지 차올랐지만 참아야했다. 이딴 거 필요 없다고 자존심을 세우기에는 나를 위해 고생한 선생님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밖에서는 아직 부스 설치가 한창이다. 늦게 도착한 부스 때문에 계획이 다 틀어졌다. 내일 사용할 물품을 미리 세팅해 놓으려고 학생들까지 불렀는데 결국 아무것도 못하게 되었다. 뭐든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구나 싶어 서러웠다. 음향 기사의 도착으로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뀌년 특수학교 학생들의 부채춤 공연. 소리를 듣는 대신  바닥에 울리는 소리의 진동을 느끼며 동작을 이어나간다.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을까 싶어 기특하고 예뻤다. 지켜보는 사람들 눈에 감동의 눈빛이 어렸다. ‘꽝쏘공’ 협력활동 수혜 기관 아이들의 공연도 있었다. 한국어 수업 중 우리 학생들이 가르쳐 준 아기 상어 춤이다. 긴장된 미소를 띤 아이들이 사랑스러웠다. 이걸 위해 그 고생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 


 각기 열심히 준비한 학생들의 리허설을 보고 있자 왠지 울컥했다. 여기서 울면 안 되지 싶어 꽉 참고 있는데 행사 준비 잘 되고 있느냐는 말에 눈물이 쏟아졌다. 그걸 물어 온 사람의 목소리가 다정해서 그랬는지, 아는 사람 앞이라고 긴장이 풀려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한 번 터진 눈물은 걷잡을 수 없었다. 


 갓 들어 온 신입 강사와 외국인, 경험 없는 둘이서 쩔쩔매며 준비한 행사. 믿었던 협조는 고사하고 계획대로 진행된 일이 없다. 일이 터질 때마다 마음을 몇 번이고 다독였다. 잘 참아 왔는데, 오늘 하루는 너무 힘들었다. 모든 순간이 악몽 같았다. 내일이 기대되기 보다는 어서 끝나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2019년 1월 20일. 행사 당일

 어제 못 옮긴 짐을 옮기느라 아침부터 분주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스 장식을 도와주기로 했던 단원들로부터 늦을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그 빈자리는 학생들과 다낭외대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채워졌다. 대충 부스 정리를 마치고 행사가 열리는 강당으로 뛰어갔다. 


 오전에는 사전에 진행한 대회의 시상을 하고 말하기 대회와 백일장을 동시에 진행했다. 점심시간과 겸해 문화 행사를 하고 오후에는 퀴즈대회와 장기자랑을 열었다. 매 순서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순간순간 뭉클했고 재밌었다는 것 외에는 모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잔치라기보다는 전쟁 같았던 하루 일정이 끝났다. 뒷정리를 마치고 다낭외대 선생님들끼리 잠시 모였다. 행사 후 남은 음식을 먹으며 서로의 수고를 치사했다. 많은 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집에 오자마자 바닥에 드러누웠다. 축 처진 마음이 몸까지 지배하는 듯했다. 어제오늘 아쉬운 것투성이다. ‘그때 이렇게 할 걸, 그건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걸’하고 후회가 되었다. 학생들을 위해 준비한 시간인데 정작 나는 학생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다. 정신 못 차리고 누워 있다가 뒤늦게 휴대폰을 확인하니 여기저기서 연락이 와 있었다.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이 되었다는 인사, 행사 중 찍은 사진과 즐거웠다는 말. 그제야 이번 활동의 목적과 의의가 떠올랐다.


 이 행사로 인해 시골과 소도시의 아이들이 다낭에 한 번 와볼 수 있었다. 전통 놀이뿐만 아니라 한국과 관련된 다양한 게임을 하며 한국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누구든 한국 음식을 배불리 먹었고 작은 상품이라도 받아 빈손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전통한복부터 생활한복까지 골라 입고 직접 김밥도 말아 보았다. 학생들은 다양한 분야로 치러진 경시대회를 통해 한국어, 손글씨, 그림, 춤, 노래 등 각자의 재능을 뽐내고 실력을 인정받았다. 함께 장기자랑을 준비하거나 행사에 참석하며 단원들과 기관 관계자들도 더 가까워졌다. 짧은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코이카 홍보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중부 지역 단원들이 서로 한 번 만났으니 다음에 더 좋은 활동을 기획할 수도 있다. 


 어설프지만 할 건 다 했다. 내가 원한 대로 모든 것이 딱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세상사가 다 그런걸 어쩌겠나. 학생들로부터 오늘 너무 재밌었다는 연락이 왔다. 누가 보내 준 행사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모두들 웃고 있다. 그러니 이렇게 마무리하련다. 비록 썩 맘에 들지는 않지만, 아쉬움이 남더라도, 그래도, 그래도…. 

 ‘라온’, 즐거움이라는 뜻의 순 우리말이다. 비로소 내게도 라온이 찾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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