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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Nov 12. 2019

[다낭소리] 베트남에 오면 왜 살이 찔까?

 베트남에 오면 왜 살이 찔까

 오랜만에 만난 단원들에게 요즘 살쪘다고 고백하니 다들 베트남에 온 뒤로 몇 킬로씩 쪘단다. 사람들은 왜 베트남에만 오면 살이 찔까? 

다낭의 과일 시장


 첫째, 과일? 망고스틴, 망고, 리치, 람부탄, 구아바,….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없거나 비싸서 감히 사 먹을 엄두가 안 나는 열대 과일이 베트남에는 즐비하다. 

단옷날 먹는 본본과 리치
분홍 구아바
초록 구아바와 람부탄


문제는 누구나 알듯 이런 과일이 쉽게 살로 변한다는 거다. 날이 더우면 입맛이 없어야 당연할 텐데 더울수록 과일의 당도는 높아지니 전투적으로 냉장고에 과일을 쟁여 두게 된다. 물론 새콤달콤한 과일은 냉장고에 안 넣어 둬도 맛있다. 특히 한 번 먹어 보면 그 맛을 잊을 수 없다는 망고스틴은 베트남에 오는 한국 사람들이 필히 사 먹는 과일이다. 제철에는 2천원이면 1kg를 살 수 있어 ‘지금 망고스틴 안 먹으면 바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바보가 되기 싫어 오늘도 한 봉지 사둔다. 

현지 시장에서 파는 과일. 초록 망고가 눈에 띄게 많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과일
베트남에서는 소량을 사더라도 꼭 무게를 잰다.


 둘째, 커피? 날이 더우면 더울수록 단 게 먹고 싶어진다. 특히 여름이 시작되는 4월부터는 얼음 잔뜩 넣은 연유 커피를 끊을 수가 없다. 핀으로 내리는 커피는 콜라마냥 검고 진하다. 얼음을 넣어 그대로 마시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은 연유나 우유를 섞어 마신다. 향 좋은 커피에 같은 비율로 연유를 섞은 것이 그 유명한 ‘까페 쓰어 다’, 연유를 덜 넣고 우유를 부으면 ‘박 씨우’라고 한다. 이 달달한 커피가 지친 날 원기회복제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에 하루에 한 번은 꼭 마시게 된다. 


 셋째, 음식? 더운 나라여서일까, 베트남 음식도 한국 음식 못지않게 짜다. 대부분의 음식에 적정량 이상의 소금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 거기다가 무엇이든 ‘느억 맘’에 찍어 먹으니 이거야 말로 짠짠의 연속이다. 느억 맘은 생선 액젓을 발효시켜 만든 맑은 소스인데 보통 그대로 먹지 않고 다진 마늘이나 설탕을 섞는다. 


 국물 낼 때는 항상 고기를 사용하고 볶거나 튀긴 음식이 많아 대체로 기름지다. 어떤 음식에건 은근 미원이 많이 들어간다. 거기다 쿰쿰한 맛이 나는 음식이나 맵기로 소문난 베트남 고추가 들어간 요리를 먹으면 자연스레 단 음식이 생각난다. 과일이나 연유 커피 혹은 베트남 사람들이 사랑하는 설탕 듬뿍 든 밀크티까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맛있으니 자꾸 먹게 된다. 베트남을 떠나면 무엇이 제일 그리울 것 같으냐 묻는 사람들 말에 나는 주저 없이 ‘음식!’이라고 외친다.


시장이나 거리에서 파는 즉석 오렌지 주스. 수입산을 제외하면 베트남에는 초록 오렌지가 많다.
조그만 숟갈로 살살 긁어 먹는 얼린 요구르트. 소금을 찍어 먹으면 단맛이 더 강해진다.


 그러니 도무지 살이 안 찔 수가 없다. 이렇게 결론 내리자 뭔가 석연치 않은 마음이 들었다. 아니 그렇다면 먹는 사람 다 같이 살 쪄야지, 몸무게는 왜 나만 느냐고…! 베트남에 여행 오는 한국 사람마다 하는 소리가 여기 사람들은 대체로 몸집이 작다는 거다. 슬쩍 봐도 베트남 사람 대부분 늘씬한 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뼈대가 얇아서일까 흉통이 좁아서일까 여하튼 내가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몸매의 소유자들이 많다. 


 이렇게 달고 짜고 매운 음식을 먹으면서 그런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이 뭘까? 베트남에 고작 2년 있어 본 내가 함부로 결론내리기는 어렵다만 대충 가늠해보자면 활동량이 많기 때문 아닐까 싶다. 동남아 사람들은 게으르다는 보통의 인식과는 달리 내가 지켜본 이 곳 사람들은 늘 부지런히 산다. 낮잠도 너무 더운 한낮에는 활동할 수 없으니 오후 활동을 위해 힘을 비축해두는 삶의 지혜다. 그것도 나처럼 대책 없이 자버리는 게 아니라 고작 이삼십 분, 식후의 노고함을 해소할 정도로만 눈을 붙인다. 


 그리고 일단 식사량이 적다. 관광객이 찾는 식당은 가격을 올리는 대신 외국인에게 표준화 된 크기의 그릇을 내놓지만, 현지인들이 가는 식당에 가면 보자마자 ‘에게?’ 싶을 만큼 그릇이 작다. 먹을 땐 그럭저럭 배가 차는 것 같은데 뒤돌면 금세 배가 고프다. 그러고도 산다니, 베트남에 처음 왔을 때 동기와 했던 말도 ’여기 사람들은 배통이 작은가봐!’였다. 


 음료도 아주 작은 잔에 담아 준다. 성격 급한 나는 받자마자 쭉 들이키는데 서너 번 마시고 나면 얼음만 남는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은 대화하며 천천히, 잔에 든 얼음을 살살 녹여 가며 마신다. 술 마시는 것도 다르다. 마실 때마다마다 건배를 하며 시간을 두고 잔을 비운다. 큰 각 얼음을 넣어 마시기 때문에 별로 취하지도 않는다. 식당에서 맥주를 시키면 얼음 통 가득 맥주병을 넣어주기는 하지만 그걸 다 비우는 사람은 없다. 빈 술병을 세는 것보다 서로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뽐내는 데 더 집중하는 느낌이랄까. 


 이래서 살은 나만 찌나 보다. 같은 환경에서 살고 비슷한 음식을 먹지만 먹는 양이 다르니 몸집이 불 수 밖에. 코끼리도 풀만 먹고 코끼리가 된다 하지 않나.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다. 배고프면 예민해지는 걸. 나는 온유하고 인심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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