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낭소리 Nov 13. 2019

[다낭소리] 외국인이라서 그래?1

  외국인이라서 그래?1

 친한 단원을 만나러 가는 길. 기차로 6시간 걸린다기에 편히 가고 싶어 4인실 침대칸을 예약했다. 초행길이라 정거장에서 바로 내릴 수 있도록 1층 칸으로 잡았다. 내 자리에 갔더니 이미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나를 흘끗 쳐다보고는 비킬 생각을 안 한다. 여긴 내 자리라고 말하니 태연히 2층으로 올라가라고 했다. 예? 뭐라고요? 1층 칸과 2층 칸의 가격은 엄연히 다르다. 다시 한 번 표를 보여 주고 여기가 내 자리라고 말하자 서로 한참 얘기하더니 아주머니가 올라갔다. 


 전에 어떤 단원은 1층 칸을 예약하고 갔더니 그 자리에 임산부가 앉아 있었다고 했다. 비킬 생각을 안 하기에 자기가 2층으로 올라갔다고. 입이 턱 벌어진다. 미안한 말이지만 편하게 가고 싶으면 돈 더 주고 1층 칸을 사면 될 것 아닌가. 아마 이 단원 대신 베트남 아주머니나 할아버지가 탔더라면 그 사람은 군말 않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을 거다. 


 때때로 우리가 분노하는 건 이런 거다. 뻔뻔함과 비양심. 그런 것들은 분명 우리 안에도 있다. 우리 역시 대차게 뻔뻔해지고 양심을 저버릴 때가 얼마나 많은가. 어쩌면 타국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를 이방인이자 약자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차별 당한다는 피해 의식에 사로잡힌 우리도 건강하지는 않다. 하지만 살다 보면 인정해야 할 때가 온다. 외국인이고 이방인이기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할 때가 있다는 것을. 


 가끔은 시장에서의 입씨름도 지친다. 가격 흥정을 잘 하지 않는 편이지만 대놓고 덤탱이를 씌우려 들면 화가 난다. 작년 12월의 일이다. 꽝찌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사러 시장에 갔다. 수업 마치고 다른 물건을 사러 이미 마트를 몇 번 돌고 온 터라 기운이 없었다. 몇 군데 돌며 가격을 알아보고 머리띠를 구매했다. 좀 더 살까 싶어 옆 가게에 갔더니 다섯 배가 넘는 가격을 불렀다. 어이가 없어서 “저 가격 알아요. 이거 바로 옆에서 2만동(천 원)에 샀어요.”했더니 옆 사람에게 내 말을 따라하며 깔깔댄다. 명백한 조롱이었다. 


 그만 기분이 잡쳐서 다른 가게로 갔다. 얼마냐고 물으니 두 배를 부른다. 지쳐서 들고 있는 걸 보여 주며 “언니, 저 이거 2만동에 샀어요. 갈게요.”했더니 “그럼 2만동!”하며 붙잡는다. 아니 내가 외국인이라서 그래? 똑같은 머리띠가 왜 어딘 천 원이고 이천 원이며 오천 원씩이나 하는 걸까. 


 매번 그런 건 아니지만 가끔 이런 일이 생기면 정이 뚝 떨어진다. 바보 같은 나는 함부로 화도 못 낸다. 우리 학생들이 생각나서다. 가족이 시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 그럼 짜증내지 말고 그냥 인심 좋게 속아 주던가. 그게 싫으면 싸우던가. 둘 다 못 하겠으면 시장에 가질 말든가. 


 부임 초반에는 되도록이면 시장에 가려고 했다. 이미 잘 나가는 마트보다야 시장에 있는 물건을 더 팔아 주고 싶었다. 코이카에서 받는 생활비는 여기다 쓰고 가라고 주는 것이니 되도록이면 갑부가 아닌 사람들에게로 흘러가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요새는 고민하다 마트로 가 버리는 때가 많다. 괜히 기운 빼고 싶지 않아서다.



  “나 이제 봉사단원으로 안 살고 월급쟁이로 살끼다!” 

 전에 어떤 단원은 이런 말을 했다. 매달 코이카에서 주는 생활비 50만원. 차라리 그걸 받고 외국에서 일한다 생각하면 마음이 더 편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저 돈 벌러 온 거라면 굳이 베트남 사람들을 이해할 필요가 없을지도. 애써 그 입장이 되어 보려 노력하고 배려하며 속이 시커멓게 탈 일도 없을 것이다. 화가 나면 대판 싸우기도 하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베트남 욕을 실컷 해도 괜찮을지 모른다. 하지만 봉사단원이기 때문에, 누가 알든 모르든 우리가 스스로를 그렇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한 번 더 참게 된다. 참으면 내 기분만 상하니까. 그러면 되니까.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을 생각해 보게 된다. 상황은 다르지만 보통 기분 나쁜 일을 당해도 말 못 하고 하소연할 데가 없을 사람들을. 그들도 나와 같은 마음일까? 더하면 더했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이 몇몇 나라를 얼마나 무시하는 지 안다. 그래서 감히 여기서 화를 낼 수가 없다. 

작가의 이전글 [다낭소리] 서로를 바라보는 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