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라서 그래?2
꽝찌 가는 길. 협력 활동이 끝나 이번엔 나 혼자다. 푹 잘 요량으로 늦은 시간대 기차를 탔다. 실랑이하기 싫어서 아예 침대 2층 칸을 끊었다. 기차가 출발함과 동시에 닫힌 문에서 퉁퉁 소리가 난다. 담요부터 마스크까지 완벽했는데 그만 귀마개를 깜빡했다. 출발이 1시간이나 지연된 기차는 목적지를 향해 느리게 나아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시끄러운 소리에 깼다. 벌써 아침인가 싶어 시계를 보니 그렇지도 않다. 찡얼대는 아이와 그를 꾸중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는 ‘이거 안 먹고 저거 먹을 거야!'하며 땡깡을 부렸고, 엄마는 아이를 혼내다가 다시 간식거리를 쥐어줬다. 그런 소란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이 비좁은 6인실 침대칸에서. 몰려오는 피로감에 다시 눈을 감았다. 들리는 소리 대부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동물의 음성처럼 느껴졌다. 목을 긁어내는 아이 엄마의 호통이 신경을 바짝 긁었다.
단원들 사이에 베트남 기차 침대칸은 복불복으로 통한다. 조용히 가는 경우도 있지만 나 빼고 다 가족이거나 일행이라면 각오를 해야 한다. 가는 내내 수다를 떠는데다가 한 상 가득 차리는 음식은 덤. 마스크를 뚫고 올라오는 강한 냄새와 귓전을 강타하는 소리는 무시하려고 해도 무시할 수가 없다.
내 맞은편 아래 칸에 탄 모자는 간식을 나눠 먹으며 한참을 실랑이했다. 잠시 소음이 멈춰서 이제 자나 했더니 아이 엄마가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쇼프로그램인지 우렁찬 MC의 목소리와 방청객의 환호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눈을 떠보니 내 맞은편에 누운 베트남 사람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게 보였다. 이어폰 없이 너무 당당히 시청하기에 곧 끝나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한 편을 통째로 볼 요량인지 소음이 멈추지 않는다.
참다못한 내가 아이 엄마를 불러 조용히 해달라는 몸짓을 했다. 나를 흘낏 쳐다보곤 휴대폰으로 눈길을 돌렸다. 다시 불러 조용히 해달라고 하자 아랑곳 않고 시청하는 것은 물론 동영상의 음량을 더 키워 버린다. 뭐 이렇게 무례한 사람이 다 있나 싶어 기가 찼다. 자존심 높기로 유명한 베트남 사람의 신경을 건드렸으니 이렇게 복수를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여기서 한마디 더 했다간 무슨 사단이 나지 않을까 싶어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내리기까지는 2시간이 남았고 그동안 소음에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귀에 이어폰을 꽂을까 하다가 순간 떠오르는 재치로 아이 엄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 부드럽고 친절한 목소리로 여기는 6명이나 타고 있으니 혹시 계속 보고 싶다면 이어폰을 빌려 주겠다고 했다. 이번엔 영어로. 영어를 모르더라도 느낌상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것이다. 이어폰을 건네는 내 손짓에 아이 엄마는 고개를 젓고 난 후 동영상의 소리를 줄였다. 시청을 아예 멈춘 건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됐다 싶어서 나도 고맙다고 말한 뒤 다시 자리에 누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엄마가 소리를 줄인 건 내가 이어폰을 건네서였을까 아니면 영어로 말해서였을까. 아까는 나를 베트남 학생이라고 생각해서 무시했던 거고 이제는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려 수그러든 걸까?
베트남에서 산 지 근 2년째. 이제는 가끔 영어로 말해야 더 유리해진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베트남어로 말해 봤자 '아쥼마. 여기 여썻 싸라암. 치끄러워.‘ 뭐 이쯤으로 들릴 테고 그럼 사태의 심각성이 결여된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베트남어로 한마디 하면 상대방은 적어도 대여섯 마디를 쉴 새 없이 하며 내 기를 팍 죽일 거다. 이건 경험으로 안다.
베트남에 살면서 가능한 한 영어를 사용하지 않으려 했지만 때때로 필요할 때가 있다. 최근 이사한 집주인과도 그렇다. 이 아저씨는 내 연락은 며칠이고 확인도 안 하면서 자기 필요할 때는 밤 열시고 열한시고 전화를 건다. 아침 아홉시에 와 달라고 하면 한 시간 전에 와서 문을 두들기질 않나 연락 없이 두 시간씩 늦어 버리질 않나. 돈 많은 사람이라 영어도 할 줄 안다. 하지만 내가 베트남어를 한다는 것을 알고 난 뒤로는 현지인에게 하듯 말을 쏟아 냈다. 내 말은 듣지도 않고 한참을 혼자 베트남어로 말하다가 마지막에 ‘이해했어?’하면 나는 다시 말해 달라 하고, 그래도 여전히 같은 속도로 쾅쾅쾅쾅. 한 번은 참다못한 내가 영어로 다다다 쏘아 붙이니 수그러들었다. 그제야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집중해서 듣는 것이 느껴졌다.
왜 그러는 거야 정말. 이게 뭘까 싶다. 내가 선의로 다가가면 마음 상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가끔은 화가 나고 그보다 더 자주 속상하지만 이해하려 노력해 본다. 어쩌면 외국인을 자주 만나 보지 못해서, 그래서 그런 건 아닐까 하고. 우리 엄마도 그럴까. 아빠도 그랬을까… 그래, 그랬을 거다. 그러니 에피소드처럼 웃어넘길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