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낭소리 Jun 19. 2020

리뷰_가치관과 성장, 올바른 교육 (앵무새 죽이기)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금도 기억에 남는 선생님 한 분이 있다. 

중3, 여러가지로 힘든 시기를 견뎌내며 고등학교 입학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적정 점수만 넘으면 랜덤으로 학교가 정해지는 시스템이었지만 시골에서 공부하던 나에겐 그것도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학년 중 유일하게 남아 야간자율학습을 하던 나를 집까지 자주 데려다 주시던 선생님. 어느 날은 선생님과 그런 얘기를 했다. 이 학교에서 타지로 나가는 학생은 나 혼자인데 어쩌다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느냐고.


사실 도시에 나가 공부한다고 해서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오히려 시골 학교에 남아 좋은 내신 등급으로 대학에 가는 것이 내게는 더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 모든 것을 시험을 준비하는 나도, 그런 나를 응원해주시는 선생님도 알고 있었다. 그 때 나는 이런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완전히 낯선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 두렵긴 하지만 더 큰 세상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성장해 더 큰 꿈을 품고 싶다고.


그런 내게 선생님은 한 권의 책을 선물해 주셨다. 하퍼 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 표지는 파랗고 책은 아주 두꺼웠으며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선생님은 자신이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책이라고 하셨다.


'가치관'. 그 당시 나는 이런 단어에 푹 빠져 있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께서 아끼는 책이라니 두말 할 필요도 없었다. 그 날 부터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책의 말미에선 계속 울며 읽어 내려갔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여러 해가 지난 지금, 오랜만에 이 책이 생각났다. 몇 해가 흘러도 책을 읽는 나는 여전히 울고 있다.



「앵무새 죽이기」는 주인공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되짚어 가는 이야기이다. 때때로 이런 소설을 보면 신기하다. 나는 심지어 중학교를 다니던 때의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이 사람들은 대체 기억력이 얼마나 좋길래 일곱 살이며 열 살에 일어났던 일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 그게 바로 소설의 허점 아닐까 싶지만, 가끔 유달리 기억을 잘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니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한다.


어쨌든 이 이야기는 시골 마을의 단란한 가정에서 시작한다. 엄마는 일찍이 돌아가시고 나이 많고 점잖은 아빠 밑에서 자란 스카웃(주인공)의 유일한 친구는 오빠 젬. 둘은 어울려 다니며 때로는 용사가 되기도 하고 천덕꾸러기가 되기도 한다. 조용한 시골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은 딱히 특별하지도 이목을 끌만 하지도 않지만 그 또래에게는 늘 그렇듯이, 깔깔거릴 일은 어디에나 있고 작은 사건 하나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마을 사람들에게 늘 존경받던 아빠가 흑인을 변호하며 손가락질 당하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마음 속 깊이 상처를 받는다. 스카웃은 사람들이 왜 검둥이 옹호자라는 말을 써가며 아빠를 비난하는지 이해 할 수가 없다. 재판 당일 스카웃의 아빠가 완벽한 증거를 대며 애써 변호하지만 결국 모두가 평등한 법원에서조차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고 그 당시의 편견, 즉 '흑인은 부도덕하며 그 어떤 범죄라도 저지를만하다'라는 당시의 인식이 승리해버린다. 그리고 그 재판을 지켜본 아이들은 실망하고 좌절한다.


사실 그 누구라도 이 가련한 아이들에게 아직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겠지만 이 소설은 그런 기적을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어른들의 눈에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스카웃을 통해 편견에 사로잡힌 이들의 비양심과 모순을 꼬집는다.


우리는 자라면서 남들이 '옳다'라고 하는 가치관을 무심코 따를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비판없이 따라하고 다수가 싫다하면 나는 좋다고 말할 용기조차 잃게 되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 누구라도 언제든 나와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가치관이 다르고 경험한 일들이 다르다면 한 사건에 대해서도 충분히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틀렸다'라고 비난할 수 없다.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옹고집들이 많다. 그러나 쉽게 단정짓는 것은 위험하다. 한 두 번 봤으니 '그 사람은 이런 성격 이런 모습일 것'이라고 착각 하지만 실은 그의 어느 한 부분만 알게 된 것일 때가 많다.



「앵무새 죽이기」가 성장 소설이라고 하여 아이들이 이 한 번의 사건을 통해 불쑥 성장해버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온 음식에 달디단 시럽을 뿌려먹는 가난한 친구를 보며 "저대로 놔두면 시럽에 빠져 죽을거에요."라고 못마땅해하는 스카웃에게 "누군가가 나와 다르게 행동한다면 그건 틀린 것이 아니니 존중해야 한다"라고 한 어른이 가르쳐주었을 때, 


집 밖으로 나오기 싫은 이웃 아저씨에게 계속 나오라고 강요하는 것은 이기적이며 진짜 말을 걸고 싶으면 옆 창문이 아니라 정문을 열고 들어가 인사해야 한다고 일러주었을 때,


평소 점잖은 말씨를 사용하던 가정부가 흑인 교회에 나가 흑인의 억양과 말투로 말하면서 '내가 한 무리 안에 있다면 때로는 그들의 방식을 따를 줄 알아야 한다.' '나의 잘남을 내세우기보다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을 때. 그때 이 아이들이 바로 배우며 성장한 것은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생리통이 올 거라면 회사에서 오는 게 낫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