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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Jul 01. 2020

이 나이에 아직도 처음인 게 있다니!


다른 이의 브이로그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다. 하루 혹은 며칠을 짧게 편집해 하이라이트로 만든 영상은 낯설다.특히 연예인의 일상이란, 우리네 삶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이벤트 같아 공감이라든가 여타 흥미로운 감정이 들지 않는다.


하루는 유튜브 알고리즘을 따라 배우 이하늬 씨의 채널을 보게 되었다. 그게 마침 발리에서 한 달간 요가 티칭 프로그램에 도전한 내용이었고, 슥슥 넘기며 보다가 영상 중간 몇 마디 말이 귀에 쏙 박혔다.


처음으로 영어 요가 티칭에 도전하는 날. 친구들 말고 타인에게 영어로 동작을 가르치는 건 처음이라며 "나이를 이렇게 먹었는데 아직도 처음인 게 있다니! 너무 좋아!"하고 소리 지르는 모습이 신선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게 영 어색하고 두려운 나는, 그 말이 참 듣기 좋았다. 내겐 늘 도전이 쉽지 않다. 실패할까 봐, 생각만큼 잘하지 못할까 봐서 몸을 움직이기에 앞서 걱정부터 든다. 그래서 도전은 늘 무겁고, 무섭고, 다른 이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하는 것으로 여겨 왔다.


영상 속에서 환히 웃는 그 배우는 달랐다. 삼십 대 후반에 하는 첫 도전. 그 뒤에 붙는 말이 흔히 예상할 수 있는 '부끄러워'나 '무서워'가 아니라 '좋다'라니. 긴장을 풀기 위한 자기 암시라도 좋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그 배우는 이전에도, 한 포럼에서 청년들에게 '영혼을 가꾸라'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묵상과 기도, 혹은 명상을 통해 내 영혼을 관찰하고 현재 어떤 상태인지 점검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깊은 내공이 느껴졌다. 요즘 같은 세상에선 쉬이 하기 힘든 말이다. 받아들이는 사람도 적고 자칫 괴언이라 여겨질 수 있는 생각을 자신 있게 얘기하는 모습에서 묘한 감동을 느꼈다.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괜히 조급해질 때가 있다. 누구는 정착할 수 있을 때 정착하라 말하고, 어떤 이는 기회 될 때 더 도전하라 말한다.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경험에 따라, 주변에서 보고 들은 상황에 따라 내놓는 말이 다르다.


여러 선택지 중 내게 맞는 삶을 찾아가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다. 후에 핑계 대지 않기 위해, 원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선택은 나 스스로 해야 한다. 나는 아직 삶의 다양한 형태를 경험해 보지 않았고, 하나씩 경험하다 보면 내게 맞는 모습을 발견하고 유지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를 위해 요즘엔 나름의 도전을 해보고 있다. 전에 생각만 하던 것을 일단 시작하고, 대충이라도 한 번 해 보는 것. 뭐든 완벽하게 갖추고 시작하려 하면 첫걸음도 못 뗀다. 그러니 좀 아쉽더라도 일단 해보는 게 낫다.


그리고 그 과정을 기록하는 것. 지금 내가 무언가에 도전하고 있다고, 무엇을 목표로 나아가는 중이라고 뚜렷이 밝히는 것. 결과를 알 수 없으니 불안하긴 해도 나의 도전을 숨기지 않는 것.




내겐 그 첫 시작이 도서 출간이었다. 원래는 원고 심사 통과 후, 출판사와 계약을 맺은 후, 어쩌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끝나 인쇄된 책이 세상에 나올 때쯤 얘기하려 했었다. 잘 안 될 수도 있는 거니까. 나조차도 결과를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혹시라도 누가 물어보면 '잘 안 됐어.라는 말이 하기 싫어서, 자존심을 지키려 꽁꽁 비밀로 묻어 두려고 했다.


그러다 게으른 내가 또 포기해버릴까 봐, 아무도 몰랐으니 아무도 모르게 멈춰 버릴까 봐.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려는 노력으로 사람들에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나 글을 쓸 것이라고, 결과는 모르는 일이지만 한 번 도전해보겠다고. 그 말을 지키기 위해 게으름은 덜 부렸고 열심은 더 내었다.


책 두 권 분량의 글을 쓰고 난 뒤, 나는 공들인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책을 내야겠다고 다짐했다. 혹 심사에 떨어지면 출판사 문을 두드려서라도 책을 출간하겠다 선언했었다. 완성된 원고를 처음부터 쭉 읽어 내려가자 이만하면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계획한 때에 원하는 것을 얻기는커녕 일의 진척도 알 수 없었다. 심사를 위해 제출한 원고는 반년이 다 되도록 깜깜무소식.  "너 책 낸다는 거 어떻게 되었어?"하고 묻는 사람들에게 할 말이 없어 민망할 때가 많았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쉽지 않았다. 


기세 좋게 시작했건만 일이 계획한 대로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타의로 멈춰서 있으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용기 낸다고 해서 그 순간부터 탄탄대로가 열리지는 않는다.'




9개월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출판사와 이메일을 주고받고 있다. 예상대로라면 작년, 늦어도 올해 초에 책이 나왔어야 했다. 


출간이 확정된 후에도 넘어야 할 산은 많았다. 먼저는 욕심 내서 쓴 원고 분량 줄이기. 애초에 두 권을 계획하고 쓴 터라 줄글로 A4용지 꽉 채워 100장이 넘었다. 출판사에서는 두 권으로 낼 수는 없으니 원고 분량을 절반으로 줄여 달라고 했다. 


몇 날 며칠 원고를 다듬다가 눈물이 났다. '내가 어떻게 쓴 원고인데... 이걸 어떻게 지워, 도대체 뭘 버려야 돼...' 삭제해야 할 원고를 앞에 두고 한숨만 푹푹 나왔다. 


며칠 후 출판사로부터 원고 분량을 3분의 1로 줄여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두 번째는 그나마 쉬웠다. 내가 독자라면 과연 이런 내용까지 궁금할까 싶을 에피소드는 빼고 중복되는 내용을 지웠다. 그래도 작업은 더뎠다. 마지막 다섯 개의 목차를 지워야 할 때는 아쉽고 아까워서 원고만 계속 읽어 내려갔다. 


이번 경험으로 깨달았다. 글은 쓰는 것보다도 지우는 게 더 어렵다. 




마지막 수정 원고를 출판사로 보내던 날, 속이 다 후련했다. 이제 내 손을 떠났으니 더 이상의 고민도 망설임도 별 수 없다. 여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작업을 끝내 놓고 보니 그때가 생각난다. 처음 용기내기로 다짐했던 때가, 사람들에게 나 글 쓰겠다고 고백하던 때가. 혹시나 잘 안 될까 봐서 밑밥도 참 많이 깔았다. 그래도 도전하길 참 잘했다. 


오래 기다린 만큼 더 간절해진다. 그리고 차분해진다. 여러 번 고치고 다시 쓰면서 글 속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당시에는 솔직하게 표현한 것인데 지금 보니 그릇된 마음이었다고 깨닫는다. 어린 날의 치기를 반성하고 그날의 다짐을 되새겨 본다. 그 시절의 내가, 나를 담은 책이 더욱 애틋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책은 일러도 시월에나 나올 테니 나의 고백은 내뱉은 지 일 년이 지난 후에야 실현되는 것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두 세배 더 긴 시간을 기다리고 있지만 애초에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경험하지 못했을 일들이다.




그래서 새로운 시도를 해 본다. 지금 당장은 작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쌓이고 쌓여 미래에 무엇이 될지 모르니. 가볍게 시작한 일이 내게서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지 모르니. 아직은 아무도, 나조차도 모르는 일일 테니까.


여전히 민망하고 떨리지만, 이것도 연습을 하다 보면 점차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 새로운 도전을 앞둔 어느 날, 나도 이렇게 설레는 비명을 질렀으면. 


"이 나이에 아직도 처음인 게 있다니!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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