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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Oct 05. 2020

롱패딩과 독서실

독서실을 끊은 것은 내가 얼마나 나약한 사람인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올해의 계획이 흐지부지 사라질 것만 같아 무모하게 4주 회원권을 끊었다. 우습게도 그러자마자 추위가 시작되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아마 난 춥다는 핑계로 또 이불 속에 들어갔을 거다. 핑계가 습관이 되는 건 싫다.

올해는 공부를 좀 하고 싶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하는 공부는 쉽지 않았다. 하기 싫은 날들이 지속되었고 집중하지 못할 이유는 늘어났다. 이렇게 될 줄 뻔히 알았기에, 배수진 치듯 진작 신청해 놓은 자격증 시험은 벌써 한 번 미뤘고, 이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는 응시하는 수 밖에는 없어 책을 꺼내 들었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글쓰기는 거의 잊고 살았다. 그간 계속해 온 간헐적 단식도, 자취생으로서 거의 매일을 해 먹는 집밥도, 가끔 봤던 영화 후기도, 일상의 추억도 딱히 어딘가에 적어두지 않았다. 그렇게 바빴던 것도, 집중해서 공부했던 것도 아닌데 왠지 아쉽다.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는 작고 소중한 내 인생을 두고두고 추억하고 싶어서였는데-


퇴근 후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정신없이 졸았다. 집이 오자마자 환기를 위해 열어 두었던 창문을 모두 닫았다. 샤워만 하고 독서실에 가려고 했으나, 왠지 따뜻한 게 먹고 싶었다. 간단히 집밥을 차러 먹고 나니 다시 추운 밖으로 나갈 자신이 없었다.

고민하다 롱패딩을 꺼내 입었다. 10월에 롱패딩이라니 남들이 보면 비웃겠지만, 덜덜 떨며 독서실에 갔다가 꾸벅꾸벅 졸고 싶지는 않다. 패딩의 무게감이 갑옷같이 느껴져 다시 밖으로 나갈 용기를 주었다.

이렇게 추운 날에는 롱패딩이 최고다. 보들보들한 플리스(후리스)도 기모바지도 어디 한 군데는 아쉽기 마련인데, 롱패딩을 입으면 온 몸이 보호 받는 기분이다. 더군다나 춥다고 옷을 이것저것 껴입으면 졸음이 몰려오기 마련이니, 가볍게 입고 롱패딩을 걸치는 게 제일 안전하다. 누군지 몰라도 롱패딩 만든 사람은 상 줘야 돼 진짜.


큰 맘 먹고 나만 나온 건 줄 알았는데, 독서실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다. 이들이 경쟁자로 느껴지기보다는, 마음에 위로와 힘이 된다.

기왕 이렇게 나왔으니 오늘도 오늘의 공부를 해보련다.


2020년 10월 5일의 기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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