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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Sep 21. 2019

[다낭소리] 첫 시험 감독

 첫 시험 감독

 아침 7시 30분과 9시 30분 각각 한 시간씩 두 번에 걸쳐 기말고사 감독을 하고 왔다. 지난번에 다른 선생님 대타로 들어간 적은 있었지만 정식 감독은 처음이라 여러모로 떨렸다. 요즘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된지라 혹시 늦을까 봐 잠을 뒤척이다 6시 알람에 일어났다. 맑은 정신으로 가야 하니 카페인 듬뿍 든 밀크티 한 잔 마시고 일찌감치 택시를 타고 다낭 외대로 향했다. 


 다른 건 지난번에 다 해봐서 떨리지 않는데 어려운 이름 탓에 출석 부르기는 힘들어 현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 내가 어려워하는 부분을 먼저 알고 “제가 같이 가 드릴게요.”하는 다정함이 늘 고맙다. 


 시험장에 가보니 사전 공지도 없이 강의실이 변경되어 있었다. 서로 당황하다가 교직원 실에 연락해 새 강의실을 배정받았다. 출석과 자리 배정까지는 선생님이 도와주셨고 나는 시험 시작을 알린 다음 카세트 소리를 확인했다. 음량이 적당한지 물어보고 시험을 시작하는데 이게 웬걸. 2번부터 지지직거리더니 중간 중간 뚝뚝 끊겼다.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CD를 다시 틀었다. 결과는 똑같았다. 3번부터는 또 괜찮아서 일단 2번 지문을 내가 다시 읽어주는 걸로 하고 넘어갔다. 문제는 4번. 아예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한 소리가 났다. 흡사 테이프가 늘어났을 때 나는 소리. 이대론 시험 진행이 어려울 것 같아 급하게 학교 선생님들께 카세트를 바꿔주었다. 다시 틀어보는데 역시나. 아무래도 CD에 이상이 있는 것 같았다. 다시 연락을 하니 새 CD를 가져오는데 15분쯤 걸린다고 했다. 이때부터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거듭 사과한 후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새 CD로 교체한 뒤 무난하게 시험이 진행 되는가 싶더니 이번엔 그놈의 커닝이 말썽이다. 한두 명도 아니고 줄지어 부정행위를 시도한다. 듣기 시험이라 중간에 뭐라 할 수는 없으니 눈빛으로 경고를 줬다. 좌우로 고개를 들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내 쪽에서 안 된다는 표시로 고개를 가로젓고 무서운 표정을 지어도 잠시 주춤할 뿐 또 고개가 돌아간다. 


 답안지 정리할 시간을 준 뒤 시험 종료를 알리는데 아무도 말을 듣지 않는다. 이미 듣기는 다 끝났는데 무슨 문제를 푼다고 계속 시험지 위로 손이 왔다 갔다 바쁘기만 하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나도 엄한 소리를 냈다. 아예 모르는 사람이면 말을 않겠는데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이 그러고 있으니 속이 상했다. 


 시험지를 걷어 학과 사무실로 돌아가 다른 선생님에게 얘기하니 그쪽도 상황은 매한가지였나 보다. 학생들에게 싫은 소리 하기가 싫어 커닝하는 사람 없기를 바라며 다음 시험장으로 향했다.


 이번 반도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다. 시험 전에 미리 제발 커닝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래도 말 안 듣는 애들이 있다. 부러 계속 그쪽을 지켜보고 있는데도 눈치를 못 채는 건지 아니면 그만큼 절박했는지 계속해서 커닝을 시도했다. 질문은 선생님에게 하라고 몇 번 경고해도 나아지지 않자 나도 커닝하지 말라고 소리를 높였다. 다른 학생들에게 이 무슨 피해란 말인가! 


 발소리를 줄여 가며 계속 서 있으려니 발바닥이 불이 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내가 자리에 앉으면 학생들 기강이 흐트러질 것 같아 아픈 걸 꾹꾹 참으며 시험 시간 내내 서 있었다. 


 여차저차 시험이 끝났다. 나는 심란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시험 보느라 고생했다고 학생들을 격려해주었다. 그리고 이번 시간에 정말 커닝 안했냐고 물어보니 제 문제만 열심히 푼 학생들은 당당하게 대답하고 몇 번 커닝을 시도한 학생들은 가만히 있다. 커닝 여부를 재차 물어보면서 슬그머니 그 학생들의 눈을 바라봤다. 그리고 오늘 가장 문제가 됐던 자리의 학생 한 명을 남게 했다. 


 베낀 놈이 아니라 알려준 애를 남긴 것은 내 실수였을까 자존심이었을까. 정작 커닝한 사람은 끝끝내 잡아뗄 것이 분명했기에 먼저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본 게 맞는지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아까 시험 종료를 몇 분 앞두고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앞 다투어 커닝을 시도했었다. 내가 기억하는 몇 명만 감점하는 것도 공평하지 않은 것 같아 혼내고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학생에게 옆자리 친구에게 답을 알려줬냐고 묻자 친구가 물어봤지만 내가 보고 있어서 못 알려줬다고 한다. 내가 계속 지켜봤다고 덧붙이며 정말 안 알려줬냐고 다시 묻자 딱 한 문제 알려줬다고 한다. 먼저 안 물어 보면 안 알려줬을 텐데 정말 친한 친구라 어쩔 수가 없었다고. 그러면서 “선생님 정말 미안해요.”하는데 나도 속이 상했다. 


 커닝한 학생은 다른 애들보다 나이가 한 살 많고 기가 세다. 반면 이 학생은 조용하고 소극적인 아이. 지난 학기 내내 둘이 어울리는 모습을 본 적 없다. 정말 친해서 보여준 건지 아니면 무서워서 보여준 건진 모르겠지만 내가 뻔히 노려보는데도 친구 등쌀에 못 이겨 답을 알려준 이 애의 마음도 오죽했을까. 


 고민하다 마음 아프지만 이 학생을 본보기 삼기로 했다. 커닝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알려 주고 부러 큰 소리로 혼냈다. 강의실 밖에서 몰래 지켜보던 학생들이 수군거리는 게 들렸다. 여학생의 자존심을 지켜 주고 싶어 목소리를 낮췄다. 학생에게 본인과 답 알려 준 학생의 이름을 종이에 적으라고 했다. 오늘은 학교에 말하지 않는 대신 내가 보관해 둘 것이지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경고 없이 바로 0점 처리하겠다고 겁을 줬다. 밖에 나가면 학생들이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물어볼 것이고 이름 적어간 게 소문날 테니 이쯤하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학생에게 다음부터는 시험 전에 미리 누구 옆에 안 앉게 해달라고 내게 부탁하라고 말했다. 학생 수가 많아 교사들이 자리 배치까지는 신경 쓸 수는 없지만 이것만큼은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조치였다. 남은 시험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더니 "네. 정말 미안해요 선생님"하며 폭 안겨온다. 조금 당황했지만 나도 그 애를 안고 잠시 토닥여줬다. 


 빈 강의실을 정리하고 나가는데 마음이 참 이상했다. 괜히 실망스럽고 속상했다. 그 마음 그대로 달려가 베트남 선생님들에게 "애들이 커닝을 너무 많이 해요."하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자 선생님 한 분이 “너무 무섭게 안 한 거 아니에요?" 하고 물어온다. 커닝을 하면 한 번 경고를 하고 다음엔 바로 시험지를 뺏어버리라고. 그렇게 보여줘야 다른 애들도 함부로 시도를 안 한다고. 


 그래, 물론 그게 당연한 거다. 하지만 중간시험 30%, 기말시험 70%로 점수를 매기는 학교 시스템 상 시험을 못 보면 그 손해가 너무 크다. 다른 선생님들이 커닝한 학생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몰랐기에 함부로 결정할 수 없었다. 오며가며 감독 중 휴대폰도 하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여러 번 봤던 터라 혹시 나만 유별나게 행동하면 내가 감독한 반 학생들이 손해를 볼까 봐 걱정 됐었다. 베트남 학생들은 자존심이 강하니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주면 안 되고 따로 불러내어 주의를 주거나 고쳐줘야 한다는 말만 기억하고는 내 본분을 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학생들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질까 봐 겁먹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애들이 이렇게나 커닝을 많이 할 줄은 몰랐다. 지난번 대타로 감독했을 때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런 저런 핑계를 대봤자 오늘 이건 내 잘못이다. 시험 감독 전 선생님들께 커닝하는 학생은 어떻게 대처하는지 미리 여쭤봤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학생을 울리고 집에 돌아와 나도 우는 일이 없었을 텐데…. 꿀꿀한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 건 우중충한 날씨 탓이려니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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