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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Sep 21. 2019

[다낭소리] 글을 쓰는 이유

 글을 쓰는 이유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우기가 시작되었는지 요즘은 날이 멀다 하고 비가 온다. 그 예쁘던 도시가 이렇게 우울하게 변할 수도 있구나 싶어 놀랍다. 

비 오는 날의 집 앞 풍경


 우기라 해도 해만 뜨면 가을 날씨 같아서 참 좋은데 이렇게 한 번 비가 내렸다 하면 밤새도록 춥다. 몇 시간 서서 수업하다 보면 금방 더워져서 외출할 땐 원피스에 카디건을 챙겨 나가지만 그 외에는 늘 긴 옷과 잠바를 고수한다. 


 친구들에게 베트남이 춥다고 하면 믿지 않는다. 다낭이 추운 줄도 모르고 바캉스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관광객들을 보면 안쓰럽다. 이렇게 추울 줄은 몰랐겠지. 온도가 낮은 건 아니지만 습도 때문에 더 춥게 느껴진다. 소위 말하는 뼈가 시린 추위다. 열심히 움직이다 보면 견딜만 하지만 한 번씩 비바람이 불어 올 때는 이가 덜덜 떨린다. 특히 오토바이 택시를 이용할 때는 빗방울이 뺨때기를 때리기 때문에 아프고 서럽다. 비를 피해 보고자 머리부터 종아리까지 오는 우비를 입고 안경에 마스크까지 낀다. 다낭이 이렇게 추울 줄이야! 


 바깥보다 건물 안이 더 추운 것 같다. 난방 시스템이 없는 건물이니 한기가 들어 늘 손발이 시리다. 장판 위에서 몸을 녹이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큰 맘 먹고 난방 텐트를 설치했다. 추위를 많이 타는 탓에 혹시나 싶어 챙겨왔던 난방텐트가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날마다 물을 끓여 마시고 수면 양말을 챙겨 신지만 입에서는 춥다 소리가 계속 나온다. 


 한동안은 난방텐트 안에서만 생활했다. 쉬는 날이면 아예 난방텐트 안으로 기어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 안에서 책 읽고 영화 보다 졸리면 잤다. 딱 밥 먹고 화장실 갈 때만 텐트를 나왔다. 처음에는 이게 해외에서 누리는 여유인가 싶어 좋았지만 이런 생활이 오래 이어지자 우울해졌다. 춥다는 핑계로 집 밖에 나가지 않으니 늘 깜깜할 때 눈 떴다가 다시 깜깜할 때 잠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영화를 봐도 재미가 없고 책을 읽어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밥도 늘 그저 그런 인스턴트로만 때우고 요리도 손 놓은 지 오래. 기말고사 준비 기간이라 수업도 없으니 내가 무얼 위해 이곳에 왔나 싶었다. 더욱이 날마다 습기와의 싸움이 계속되었다. 곰팡이는 보이는 곳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 스며들어 발견할 때마다 허탈했다. 그러면서 점차 무력감이 찾아왔다. 


 그러던 중 책에서 읽은 글귀가 떠올렸다. ‘성을 쌓고 그 안에 머물지 말라.’ 물론 이 말을 한 사람의 의도는 내 생각과 달랐을지 몰라도 너무나도 공감 되었다. 여기가 좋아 성을 쌓고 머물렀다간 어느새 몸과 마음에 힘을 잃어버리게 되는 거다. 그러면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도, 자기 자신을 지킬 수도 없게 된다. 나도 이래선 안 되는 거였다. 정신을 차려 황급히 새해 목표를 세우고 내년의 활동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내게는 글쓰기가 줄리의 요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리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줄리 앤 줄리아」의 주인공이다. 요리와 블로그를 하는 이유는 '그 날의 일들을 날려버리려는 것'이라고 말했던. 물론 너무 집착하다 보면 되려 그 일에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꿀꿀한 하루를 정리하고 스스로에게 생기를 주기 위해 하는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 스트레스 해소법을 갖고 있다. 그래서 생각이 많아지면 누구는 요리를 하고 또 누구는 청소를 한다. 밖으로 나가 냅다 달리거나 불을 끄고 잠을 자기도 한다. 저마다 가장 단순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며 그 날의 스트레스를 날려 버린다. 


 나에게는 딱히 스트레스 해소법이 없었다. 요리? 좋아하지만 꾸준히 할 재간은 없다. 맛집 탐방? 외출 자체가 부담이다. 그나마 내가 스트레스 받지 않고 남는 시간에 노닥거리며 할 수 있는 게 글쓰기였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단 뭐든 써보기로 했다. 일기에 우울한 이야기를 쓰는 건 정말 싫지만 두 달 째 계속되는 비와 도통 풀리지 않는 마음은 나를 글쓰기의 장으로 인도했다. 이 한기는 2월까지 계속된다고 하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텨낼 재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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