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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Sep 21. 2019

[다낭소리] 비바람이 치는 도시

 비바람이 치는 도시

 시계를 보니 새벽 세시였다. 다시 자려고 누웠지만 잠이 오질 않아 멀뚱멀뚱 누워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퍽'하는 소리와 함께 세찬 바람이 들어왔다. 이게 웬 소란인가 싶어 얼른 불을 켜고 문제의 소리가 난 창가로 가봤다. 문 잠그는 걸 깜박했는지 바람에 창문이 열렸다. 놀란 마음을 가다듬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로수 잎이 휘청휘청. 바람 부는 폼이 제법 무섭다. 게다가 마치 살수차를 끌고 온 듯 장대비가 쏟아진다. 무슨 큰일이라도 나려고 하나…. 괜히 불안해진다.


 ‘어차피 잠도 안 오는 거 책이나 보자’하고 펼쳐 들었지만 통 진도가 안 나간다. 날씨 탓인지 웅웅거리는 바람소리 때문인지 마음이 심란하다. 그때 또 '퍽'하는 소리가 났다. 확인해보니 아까 그 창문. 바람이 한 번 대차게 불었다 하면 그걸 못 견디고 열려 버린다. 생각해보니 아까도 문을 안 잠근 게 아니었나 보다. 아무리 꼭 닫아도, 몇 번을 확인해도 큰 바람 앞에 휙휙 열려버리는 통에 정신이 사나웠다. 


 다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방으로는 찬바람이 휭휭 들어오고 나는 난방 텐트 안에서 이러다 창문이 깨질까봐 안절부절. 비바람은 새벽 내내 노크하고, 화답하듯 자꾸만 열리는 창문과 귓전을 때리는 바람 소리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이 훼방꾼은 다시 한 번 내가 쫄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정말 태풍이라도 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세찬 비바람을 뚫고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이 있었다. 새벽 네다섯 시에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사람들. 날이 어떻든 간에 일터로 나가야 하는 사람들. 하루는 이렇게 또 흘러가는 거였다. 

나를 살린 난방텐트


 밤새 요란하게 불던 바람은 곳곳에 정전을 안겨 주었다. 흐린 날씨 때문인지 정전 때문인지 온 도시가 어두침침했다. 교회에 가니 어색하게 놓인 기타 두 대와 그보다 더 어색한 얼굴의 찬양팀이 서 있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탓에 키보드도, 가사를 띄우는 빔 프로젝터도 사용할 수가 없다. 당황스러울 법도 한데 인도자가 “오늘은 어쿠스틱 버전이에요.”하며 태연히 웃는 통에 다들 따라 웃었다. 교실보다 좁은 공간에 모여 도란도란 노래하는 지금의 기쁨을, 이 따뜻한 분위기를 기록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져서 설교하는 목사님의 얼굴이 까맣게 보일 때쯤 예배가 끝났고, 비가 올까 싶어 챙겨왔던 우비는 바람막이가 되어 주었다. 우산도 좋지만 이렇게 바람까지 대차게 부는 날에는 우비가 딱이다. 발목까지 오는 긴치마에 가을용 스웨터를 입었는데도 춥다. 아 정말 춥다. 이제는 다낭이 춥다고 말하기도 지친다. 그저 ‘다낭의 우기는 이런가 보다’하며 지내는 중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추워”, 자기 전엔 "춥다"를 외치며.


 버스를 기다리느라 오들오들 떨다 집에 오니 집주인이 내일은 오전 내내 정전일거라고 알려 준다. 그래, 나만 피해 가란 법은 없지. 이렇게 미리 알려줘서 고마울 때도 있고, 갑자기 정전이 되어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그래도 몇 시간 지나면 다시 들어오는 것이고 대부분 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일어나는 일이라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덕분에 냉동실에 얼려 둔 재료를 다 꺼내서 카레 라면을 만들어 먹었다. 맛있고 배부르고, 무엇보다 따뜻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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