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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Sep 21. 2019

[다낭소리] 내 맘 같지 않을 때

 내 맘 같지 않을 때 

 수업하는 내내 진땀이 났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칠판에 글씨를 쓰느라 뒤돌아 선 틈에 한숨을 푹푹 쉬었다. 오늘의 수업은 최악이다. 


 이번 수업은 준비에 평소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비슷비슷한 어휘와 문법이 많아 베트남 선생님들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완성시킨 교안인데 오늘따라 학생들의 수업 태도가 좋지 않다. 같은 내용으로 어제 수업한 반과 비교했을 때 가히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구름이 잔뜩 낀 흐린 하늘, 에어컨 대신 천장에 붙은 팬이 돌아가는 후덥지근한 교실, 가장 졸릴 오후 12시 반 수업. 당연히 지칠만하다. 하지만 어제 수업도 어제 이 시간에 똑같은 환경에서 진행되었고, 평소에는 “대화 지문 읽어볼 사람?”하면 손도 번쩍번쩍 잘 들던 녀석들인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나사가 풀려 있다. 준비해 간 질문도 반응이 없어서 그냥 넘어갔다. 


 겨우 수업을 마치고 나니 진이 다 빠졌다. 학과 사무실로 갈 생각도 못하고 잠시 강의실에 앉아 있었다. 문득 교사로서 내 자질을 의심하게 되었다. 학생들을 집중시킬만한 카리스마나 위트가 없는 걸까? 


 한참 앉아 있다 보니 머리가 식으며 객관적인 사고가 가능해졌다. 이런 날도 있는 거라고, 나도 대학생 때 그러지 않았느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정말 피곤한 날에는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교수님의 강의 시간에도 졸릴 때가 있었다. 봄과 가을, 때로는 너무 추워서 혹은 더워서 집중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 나 역시 그런 학생이 아니었으면서 우리 학생들에게만 많은 것을 바라는 건 욕심이지 싶다. 


 오후에 토픽 동아리 수업을 위해 강의실 열쇠를 빌리려는데 담당 아주머니께서 다른 곳으로 가면 안 되겠냐고 하셨다. 지난주에도 그렇고 미리 공문까지 띄워서 신청했는데도 번번이 이러는 태도에 화딱지가 났다. 그럼 미리 알려주든가. 꼭 이렇게 시작하기 전에, 그것도 내가 열쇠 빌리러 가야만 말하는 게 못내 짜증스러웠다. 내가 오늘 하루 화장실 가랴 양치하랴 직원 휴게실에 몇 번이나 들락거렸는데…! 학생들에게 급하게 장소 변경 메일을 보냈다. 


 초반 70명 넘게 시작한 토픽 동아리는 참석 인원이 점차 줄더니 이제 30명가량을 웃돈다. 당황해서 학교 선생님들에게 물어 보니 원래 그렇단다. 동아리는 물론 다른 기관과 협력하여 하는 봉사 활동에도 참가 신청서를 낸 뒤 말없이 안 나오거나 전날에서야 못 한다고 연락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강의 시작 전에 지난주에 내줬던 과제 확인을 했다. 쓰기 51번 유형을 배우고 연습한 뒤 집에 가서 풀어보라고 기출 문제를 줬었는데 학생의 절반 정도만 해 왔다. ‘어이구 나 좋으라고 하나 자기들 좋으라고 하는 거지! 이런 것도 안 해오면서 시험 잘 보길 바라다니 양심도 없다.’하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서 비실비실 올라왔다. 


 그래, 시작은 평범하게 거기부터였다. 속된 말로 나는 삔또가 나갔다. 오늘이 토픽 시험 보기 전 마지막 강의이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알려 주고 싶었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웠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가르치는데 의자에 등을 기대 눕다시피 앉아 있는 학생 몇이 눈에 띄었다. 뭐를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고 읽어보라 해도 개미 콧구멍만한 목소리로 읽는 모습에 분통이 터졌다. 나만 급한 건가, 나 혼자 열 내고 있는 건가 싶어 힘이 빠진다. 


 대학시절 내가 교직 이수를 왜 안 했는지 알겠다. 스물의 나는 나를 잘 알았었나 보다. 나는 교사와 맞지 않는다. 나처럼 성질 급하고 인내심 없는 사람은 학생을 들들 볶기 마련이다. 강의를 하다가도 몇 번이고 고민한다. 허허 웃고 말까 화를 낼까. 진지하게 혼낼까 장난스럽게 엄한 표정을 짓고 말까. 이쯤 할까 더 해볼까…. 괘씸해서 때려 칠까 하다가 다시 나아가기로 한다. 그래 이럴 때도, 이런 날도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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