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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Sep 22. 2019

[다낭소리] 오 대한민국? 오 베트남!

 오 대한민국오 베트남!  

 역사적인 날이다. 베트남 축구 역사상 최초로 우승에 도전하는 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학생들과 함께 모여 축구를 보기로 했다. 학생들의 요청에 맞춰 베트남을 뜻하는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나갔다. 도로는 온통 베트남 국기로 치장되어 있었다. 오토바이도 자동차도 베트남 국기가 그려진 스티커를 붙이거나 빨갛게 칠해 놨다. 


 2002년 월드컵 때 대한민국이 딱 이랬다는 말을 들으며 괜스레 가슴이 뛰었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숙제로 축구를 보고 감상문을 써 오라는 선생님의 말에 축구를 좋아하지 않던 나는 ‘이게 말이야 방구야’하며 인터넷으로 기사를 보고 대충 써 갔던 것 같다. 어른들은 학교에서, 동네 마을 회관에서 큰 스크린을 설치해 놓고 다함께 축구를 봤다. 남자애들은 너나할 것 없이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다니기도 했다. 너무 어려서 별 감흥 없이 지나갔던 2002년. 시간은 돌고 돌아 2018년 베트남에서 그 열기를 확인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학생들과 함께 카페에 들어가 축구 경기를 봤다. 경기 시작 전인데도 이미 사람들로 복작거렸고 우리 자리도 겨우 마련했다. 우리가 앉은 카페뿐만 아니라 사람이 많이 몰리는 식당이나 학교 같은 곳에서는 스크린을 띄워 축구 경기를 중계했다. 전자제품 판매장 앞에 모여서 관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현지 선생님들 말로는 베트남이 이렇게까지 올라온 것이 처음이기 때문에 오늘은 우승을 해도 기쁘고 못해도 기쁜 날이라고 했다. 그래도 내심 이겼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두근두근. 음료를 시켜 놓고 중간에 화장실 가고 싶어질까 봐 맘 놓고 마시지는 못했다. 한참을 기다리는데 슬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천장이 뚫린 카페였기 때문에 준비해 온 우비를 입고 경기 시작을 기다렸다. 말하기 좋아하는 베트남 민족답게 저마다 한마디씩 하느라 열기가 뜨거워지는데 문제는 인터넷. 와이파이 연결 신호가 약한지 화면이 뚝뚝 끊기는 게 영 불안했다. 급기야 먹통. 경기 시간은 다가오는데 스크린에 까만 화면만 뜨니 초조해졌다. 아마 카페 주인은 더 애가 탔을 거다.

베트남에서 축구 보는 법

 다행히 경기 시작 전에 인터넷 문제가 해결되어서 선수 입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베트남 선수들이 입장하자 환호성이 쏟아졌다. 잘 해야 될 텐데… 경기장에는 눈보라가 날렸다. 추위에 익숙하지 않은 베트남 선수들이 경기를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오랜만에 본 축구는 재밌었다. 대놓고 응원하는 팀이 있어서 그런지 주변 사람들과 함께 안타까워하고 응원하며 제대로 된 경기를 즐겼다. 문제는 이놈의 와이파이. 인터넷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건지 화면이 다시 끊기기 시작했다. 골문을 향해 달려가는 베트남 선수,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보는데 건너편 가게에서 사람들이 방방 뛰는 모습이 보였다. 그걸 보고 환호성, 우리 스크린으로 확인하고는 한 발 늦게 또 환호성! 골문이 열렸구나!


 미리보기도 아니고 이렇게 몇 번이 계속되는데 짜증보다는 웃음이 났다. 이거 어디가도 못 볼 풍경이구나 싶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덕분에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달까? 


 경기장에는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이 쌓였던지 경기 중간 쉬는 시간에 밀대로 눈을 치우기까지 했다. 선수들의 체력도 급격히 떨어졌을 거다. 모두들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쉽사리 골문이 열리지 않았다. 차라리 이대로 버틴다면 개인별로 공을 차 그 점수로 승부가 결정 날 것이고 그렇다면 베트남이 유리하다고 했다. 


 경기 종료를 몇 분 앞두고 상대팀의 선수 교체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아차 하는 순간 그대로 골이 들어갔다. 예상 못한 전개에 너무 놀랍고 아까웠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텼더라면…! 단 몇 분을 남기고 들어가 골이었기에 판을 뒤집을 방도가 없었다.  


 경기가 끝나고 베트남 선수들이 엎드려 우는 모습을 보았다. 추위에 얼굴이 빨갛게 얼어붙어선 펑펑 울고 있었다.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같이 축구 경기를 보던 우리 학생 한 명이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모두들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괜히 날씨 탓을 해 본다. 베트남 사람들은 눈을 본 적 없다. 눈이 온다고 알려진 북부 산간지역에도 서리가 내릴 뿐이다. 추위에 약한 선수들이 이 정도 기록을 낸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저마다 아쉬운 소리를 내며 자리를 뜨고 우리도 저녁을 먹으러 갔다. 경기장엔 눈이 오지만 여기는 비가 내리니 반쎄오(베트남식 부침개)를 먹으러! 이런 날엔 반쎄오다. 기름에 지져 바삭한 반쎄오를 먹고 나면 몸과 마음이 따뜻해 질 거다. 실컷 먹고 기분이 풀린 우리는 베트남 사람들이 ‘디 바오(디:가다, 바오:태풍)’라고 부르는 거리 행렬에 참가하러 나섰다. 


 도로는 이미 마비상태. 모두들 그냥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노래하고 베트남 국기를 흔들며 준우승을 축하했다. 사방에서 환호하는 물결에 우리도 같이 휩쓸렸다. 식당에서 우리가 가려는 카페까지 별로 멀지도 않은데 한참이 걸렸다. 오토바이 열기로 몸이 땀에 젖어갈 때쯤 카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베트남은 밤이 되면 노천 카페마냥 인도에 작은 탁자와 의자를 여럿 깔아 둔다. 오늘만큼은 우리도 밖에 앉아 행렬을 구경하기로 했다. 오토바이 뒤에 스피커를 싣고 돌아다니는 사람, 트럭 뒤에 올라타 베트남 국기를 흔드는 사람, 오토바이를 브레이크를 사정없이 밟으며 묘기를 부리는 남자, 누군가 선창을 하면 다같이 따라했고, 조용하다가도 이내 다시 왁자지껄해졌다. 

축구 기간의 거리 행렬


 북부에 파견된 동기와 연락하니 그쪽도 장난 아니란다. 중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베트남 축구 선수들과 이름이 같으면 공짜로 주문할 수 있는 이벤트가 열리기도 했으며 한국 사람에게는 돈을 받지 않고 술과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도 있었다.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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