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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Sep 22. 2019

[다낭소리] 즐거운 고생

 즐거운 고생 

 아침 7시 수업도 5시간 연강에도 익숙해졌다. 몸은 힘들지만 정신적인 만족감이 있어 즐겁게 보내고 있다. 지난 학기에는 중간에 투입되어 다른 선생님의 수업을 이어받았었는데 이번에는 직접 커리큘럼을 짜고 내 방식대로 강의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내가 맡은 수업은 2학년 말하기와 3학년 음운론. 말하기 수업은 처음부터 맡고 싶었던 과목이지만 음운론은 좀 걱정 되었다. 분명 배운 것이기는 하지만 잘 가르칠 자신이 없었다. 


 음운론은 쉽게 말해 ‘발음하는 법’을 배우는 과목인데 두 시간 내내 규칙을 설명하고 외우라고 하면 너무 어렵게만 느껴질 것 같았다. 어떤 방식으로 수업해야 학생들에게 흥미를 줄 지, 그러면서도 꼭 배워야 할 것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을지 한참을 고민했었다. 그러다 생각해 낸 방법이 '동영상 더빙'이었다. 


 방식은 이렇다. 학생들 이메일로 다음 수업 때 배울 내용과 2,3분 분량의 드라마 대본을 보낸다. 이때 우리가 배울 발음 규칙이 포함된 글자는 굵게 표시한다. 수업 당일에는 드라마 편집 영상을 보여주며 오늘 배울 내용을 소개한다. 이렇게 학생들의 관심을 환기시킨 뒤 바로 이론 수업에 들어간다. 문장 연습과 테스트를 한 뒤 수업 말미에는 발음에 주의하며 다시 한 번 동영상을 본다. 실제로 배우들이 어떻게 발음하는지 보여준 뒤 발음 규칙을 확인하고, 혹시 잘못 발음한 것이 있으면 찾아보라고 하거나 알려 준다. 다함께 발음에 주의하며 대본을 읽고 연기 연습을 해 본다. 마지막으로 동영상을 음소거로 틀어 놓고 학생들에게 더빙을 시킨다.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일단 화면에 잘생긴 얼굴이 나오니 이목이 집중되었고, 학생들의 발화 시간이 길어져서 지루해 하지 않았다. 다만 매주 수업을 준비하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한국에서도 드라마를 보지 않던 탓에 학생들의 흥미를 끌만 하면서도 그 날 그 날 배우는 발음 규칙과 관련된 영상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먼저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다시 말해 잘생긴 남자 연예인이 나오는 드라마를 선정해놓고 작업을 시작했다. 원하는 부분만 잘라서 편집하고 받아쓰기하며 대본을 만들기까지. '내가 여기 와서 별걸 다 해본다.'싶을 만큼 새롭고 시간을 많이 쏟아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도 동영상을 딱 틀었을 때 학생들의 환호성을 들으면, 수업 시간에 팍 집중하는 눈빛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그 맛에 이 작업을 계속해나가고 있다. 


 2학년 말하기 수업은 비교적 평탄하게 흘러간다. 부담되는 것은 내가 욕심내어 진행하는 과제검사. 매주 그 날 배운 주제를 토대로 동영상을 찍어서 대본과 함께 이메일로 보내게 하는데 일일이 코멘트 달고 대본을 교정해서 보내는 것이 일이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매주 백 명 분의 과제를 일일이 검토하고 교정하다 보면 다 놔버리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아니 누가 시켜서 했냐? 니가 한다매!’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그래도 삭신이 쑤신다. 한 명당 5분씩만 잡으면 될 줄 알았는데 빠르다고는 해도 한국보다 느린 인터넷 속도를 미처 계산하지 못했던 거다. 게다가 학생에게 각기 다른 코멘트를 달기 위해 고민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매번 수업 준비만큼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답장을 받은 학생들이 감동해서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말하면 나는 다시 바삐 손을 움직이게 된다. 

 쉴 수 없다. 아직 확인해야 될 80개의 이메일이 남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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