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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Sep 22. 2019

[다낭소리] 엄마가 딸에게

 엄마가 딸에게 

 우리 학생들의 효심은 엄청나다. 무엇을 주제로 얘기해도 부모님이 빠지지 않는다. 한 번은 '고마운 사람에게 영상 편지 쓰기'를 과제로 내주었는데 확인하다 보니 나도 눈물이 났다. 자녀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학부모님들이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아이들이 부모님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학생들에게 부모님께 연락할 기회를 주고 싶어 잠깐 시간을 마련했다. 


 그냥 하라고 하면 부끄럽다고 안 할 학생들이 뻔해 몇 가지를 준비해갔다. 우리 학생들은 뭐 그렇게 부끄러운 게 많은지 뭐만 시켰다 하면 “부끄러워요!”하고 내뺀다. 내가 벌써 잊어버린 소녀 감성인지 베트남 중부 사람들의 특성인지 모르겠지만 참 귀엽다. 


 몇 가지 질문을 하며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학생들과 대화해 보았다. 혹시 부모님이 안 계시거나 힘든 가정환경에서 자란 학생이 있을까 싶어 걱정되기도 했지만 오늘 수업은 ‘감사 표현하기’에 초점을 맞추었으니 일단 진행해보기로 했다. 


 대신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부모님이 계시다는 것을 먼저 언급했다. 그리고 부모님 대신 할머니나 할아버지, 나이 많은 형제자매나 주변 어른을 생각해도 좋다고 설명했다. 고민하려고 하면 더 많은 경우의 수가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이 시간이 늘어질 것 같아서 이 정도로만 했다. 


 부모가 되면 무엇이 좋고 무엇이 힘들지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가 생각해도 좋은 것보다는 힘든 게 더 많아 보여서였다. 수십 가지 어려움을 몇 가지 기쁨으로 인해 덮으며 품고 살아오신 부모님, 그분들도 부모 역할은 처음이라 쉽지 않을 텐데 가끔은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꿈이 무엇이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그분들의 10대와 20대를 상상해보려니 어색하고 어렵기만 하다.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어떤 부모님인가에 대해 얘기하다 한 학생이 그런다. 엄마를 너무나도 존경하지만 자기는 엄마 같은 엄마는 못 될 것 같다고…. 


 이어 학생들에게 보여준 동영상은 어느 프로그램에서 가수 양희은과 수현이 부른 「엄마가 딸에게」. 딸에게 해주고픈 말을 가사에 담았는데, 노래를 듣는 방청객들의 눈시울이 죄다 붉어져 보면서 나도 몇 번이나 콧물을 훔쳐 냈었다.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베트남 자막이 있는 것으로 준비해갔다. 노래 중반부부터 벌써 훌쩍이는 학생들도 있었다. 


 분위기를 바꿔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봤냐고 물으니 해본 적이 없단다. 아무렴 근 이십년을 살았는데 딱 한 번도 안 해봤을까 싶어 다시 물으니 학교 다닌 이후로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부러 과장하여 황당하다는 리액션을 하고는 지금 당장 부모님께 연락드려보자고 했다. 길이는 상관없지만 어떻게 쓰든 베트남어로 ‘고맙고 사랑한다.’라는 말이 들어가야 하며 내가 검사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학생들이 수줍어서 전화 못할까 봐 배경 음악도 크게 틀고 전화요금이 없어서 못하겠다는 학생들에게는 내 휴대폰을 빌려주며 연락을 독촉했다. 


 처음엔 머뭇거리던 학생들도 내가 진심인 것을 알고는 슬슬 전화며 문자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부모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갑자기 눈물을 쏟기도 하고 교실 밖으로 나가서 한참을 통화하다 오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까지 예상한 건 아니었기에 학생들의 눈물에 당황하여 허둥지둥 휴지며 마실 차를 갖다 주었다. 그리고 촌스러운 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덩달아 눈물 콧물을 흘렸다. 이번 학기 수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그리고 준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원 활동을 시작하며 사실상 내가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게 그럴만한 깜냥이나 열정이 없을뿐더러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언젠가 이 학교를 떠날 테고 학생들도 졸업해서 다낭을 떠날 것이다. 


 대학교에서 4년 내내 공부했던 것보다 사회생활을 하며 배우는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학이라는 곳이 단순히 지식만을 탐구하는 곳은 아니기에, 나는 우리 학생들이 때때로 삶에 대해 고민도 해보고 그동안 도전하지 않았던 일들을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 능력 닿는 대로 그 기회를 마련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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