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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Oct 02. 2019

[다낭소리] 나의 버킷 리스트

 나의 버킷 리스트

 근 여덟 시간을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더니 어깨가 쥐어짜듯이 아파왔다. 오른쪽 어깨만 유독 아픈 걸 보니 자세가 삐뚤어져서 그런가… 아무튼, 이제 씻고 자기만 하면 된다! 저녁도, 샤워도 유보한 덕에 나의 과제가 끝났다. 


 지난 수업 후 과제를 내며 자신의 버킷 리스트를 소개하고 그것을 소망하는 이유를 덧붙이라고 했었다. 학생들이 대본과 함께 동영상을 찍어 제출하면 대본을 교정하고 코멘트 다는 게 내 과제였다. 개강한 지 몇 주 지나지도 않았는데, 매주 과제를 내겠다고 선언해놓고선 내가 먼저 지쳐버렸다. 그래도 학생들의 답장을 읽으며 힘을 얻는다. 


 무작정 사랑받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건 위험한 마음일지도 모른다. 사랑만 받고 싶어서 당장 해야 할 말을 못 하거나 분위기에 휩쓸려 버릴 수가 있으니까. 하지만 학생들의 귀여운 말은 이렇게 지칠 때마다 정말 큰 활력소가 된다. 


 전공도 다르고 경력도 없는 초짜 교사가 학생들을 만날 때 가장 먼저 돌아보게 되는 것은 나의 부족함이다. 문법 하나, 띄어쓰기 하나 틀릴까 봐 신경이 곤두선다. 4년 동안 정해진 과목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는 내가 이 시간에 만나는 유일한 원어민 교사일 테니 혹시라도 내가 잘못 가르치면 다시 배울 기회가 없는 거다. 물론 따로 공부하다가 '그 선생님이 틀렸었네.' 할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대학에 다니는 동안 내가 한 번 가르쳤던 것을 다른 시간에 또 배우지는 못할 테니 더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수업 준비하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부족한 탓에 찾아보는 것도 많고 고민하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나의 부족함을 학생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채우고 싶었고, 아직 한참 멀었지만 그 마음가짐으로 매주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과제를 확인하며 학생들의 예쁜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이유가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서라거나 가족을 위해서일 때. 버킷 리스트로 '부모님께 사랑한다 말하기'를 꼽을 때. 그 고운 마음에 웃음이 났다. '평생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싶다.'라거나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 혹은 '스무 살. 꿈이 많은 나이니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할 때는 그 어른스러움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다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살고 싶다. 나도 경험해 봤기에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태풍 피해를 입은 집이 얼른 수리되었으면 좋겠다.'는 글을 읽을 때는 다시금 마음이 아파왔다. 


 어렸을 때 나는 직접 부자가 되는 건 힘드니 말과 글로 부자들의 주머니를 열어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고 다짐했었다. 더 성장한 후에는 작은 실천이라도 하기 위해 적은 금액이나마 정기 후원을 시작했다. 교회에서나 개인적으로 몇 번의 봉사활동을 하면서 '이런 일을 하며 돈 벌면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 국제개발협력에 관심을 가졌다. 나의 첫 장기 봉사활동지가 외국이었던 영향이 크다. 그리고 진로를 바꾸기 전에 먼저 현장에서 배우고 경험해 보고 싶어 코이카 해외 봉사단에 지원했다. 


 개발협력에 대해 잘 모를 때에는 이 분야에서만큼은 돈보다 더 큰 가치가 있을 거라 믿어왔다. 이제는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렵다는 것을 안다. 코이카 교육원과 사무소에 비치된 책을 꺼내 읽으며 설렘과 실망이 교차했었다. 이름 알려진 지 오래된 NGO 단체도 매년 재정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아무리 좋은 활동이라 해도 당장 얼마가 없으면 중단될 위기를 맞고 선뜻 해결되는 법이 없다. 결국 그 어려움은 대부분 어떤 이유에서건 일단 후원을 결정한 거부에 의해 해결된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단체가 유지되고 후에 단체의 대표가 그 내용을 책에 써낼 수 있으니.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자본 부족으로 사업을 중단하거나 활동을 중지한 단체가 얼마나 많을지 짐작할 수도 없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결국 이 분야도 돈이 장땡이구나 싶었다.  


 아무리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말해도 물질은 우리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나만 해도 그렇고 우리 학생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다낭이 겉보기에는 화려해 보이지만 다낭외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사정은 그렇지가 않다. 대부분 여기서 몇 시간씩 떨어진 시골에 살다가 말 그대로 유학 온 학생들이다. 국립대학으로 학비는 저렴한 편이지만 그 밖의 부대비용이 많이 든다. 부모님이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알기 때문에 학생들은 가능한 한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한다. 학비를 위해, 하숙비를 내기 위해, 본인의 생활비를 위해, 여웃돈을 만들기 위해…. 게 중에는 더 좋은 옷을 사거나 예쁜 카페에 가고 싶어서 일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정말로 돈이 필요해서 일을 구한다. 


 강의가 끝나면 당장 아르바이트하러 달려가서 밤늦게 돌아오고. 녹초가 된 몸으로 다시 책상 앞에 앉기란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친구가 카페 갈 시간에 아르바이트 해야 하는 서러움, 누구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으로 쓰는데 나는 그 돈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 매달 내야 하는 휴대폰 요금과 하숙비에 대한 압박…. 이 모든 것들이 학생들을 위축되게 하고 한군데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 반대로 어떤 학생들은 학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지니 성적 올리기가 더 수월하다. 학원이며 개인 과외를 받기도 한다. 나에게 놀러 가자는 말도 곧잘 한다.  


 소위 있는 집 아이들은 자신감이 넘치고 가난한 아이들은 소극적인 편이다. 나와 어울리는 동안 한국어 연습을 더 할 수 있는데, 돈도 다 내가 낼 텐데 무엇이 걱정되는지 쉽게 용기내지 못한다. 내가 있는 동안 나를 이용하라 다그쳐도 말을 듣지 않아 답답할 때도 많다. 바쁘고 수줍어서 직접 만나기 어려우면 교정해줄 테니 글이라도 써서 보내라고, 전화 걸어 말하기 연습이라도 하자 해도 반응이 없다. 그런 건 오히려 다른 학생들이 더 적극적으로 한다. 


 야유회나 모임을 계획해도 못 나올 때가 많다. 그 애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 한국어 동아리를 열어도 신청하지 못한다. 아르바이트 때문이지 싶어 반을 더 개설하고 다양한 시간대로 잡아도 못 나온다. 피곤해서일수도 있고 그만큼 의지가 없어서 일수도 있다. 내가 학생들의 상황을 다 아는 것도 아니거니와 안다 해도 한 명 한 명 붙잡고 설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기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결국 자주 참여하는 건 경제적 여유가 있는-그래서 시간적 여유도 따라오는- 학생들이다. 경제적인 결핍 때문에 학생들 간 실력 차가 벌어지거나 학습 의지가 꺾이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시작한 동아리인데, 막상 내가 사정을 알고 꼭 좀 나왔으면 싶은 학생들이 못 나오니 속상하다. 그래도 나는 일부가 아닌 전체 학생을 위한 교사이니 나오는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할 책임이 있다. 동아리 학생들과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다른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현재 베트남 국민 대다수가 느끼는 삶의 문제는 ‘상대적 빈곤’이다. 최소한의 의식주가 해결된다고 해서 결핍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베트남은 자원이 풍부해서 굶어 죽는 사람이 거의 없고 사망자의 대다수는 교통사고나 자연재해가 원인이라고 했다, 그 밖에 마약이나 자살로 인한 사망도 늘어가고 있다). 요즘 세상에 가난하다고 해서 SNS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가난하다고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보이는 게 많으니 더 부럽고 남을 부러워할수록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게 된다. 학생들과 대화하다보면 무기력과 우울감에 빠진 모습을 발견할 때가 많다. 


 어떤 말로 힘을 주고 위로하면 좋을까 하다가도 입을 다물고 만다. 이럴 땐 내게서 조언을 구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가만히 듣고 손을 잡아 주고 공감해 줄 어른. 그러니 내가 할 말은 고작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더라는 것, 나도 그랬었고 지금도 때때로 그런 감정에 빠진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내게 좋은 학생이라고 일러주는 것 정도일 테다. 


아, 정말이지 나는. 우리 학생들이 다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바람대로 다들 한국어를 잘해서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돈과 직결된 이곳에서, 나는 우리 학생들이 부자가 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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