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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Oct 02. 2019

[다낭소리] 버킷 리스트

 버킷 리스트

 개강 초에는 보통 학생들과 함께 '버킷 리스트(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를 작성하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진다. 서로 친해질 겸, 한국어로 대화할 기회를 줄 겸 가볍게 준비하는 시간이지만 학습 의지를 불태울 데는 이만한 소재가 없다. 


 버킷리스트가 무엇인지 알려 주고 작성법을 소개한 뒤 노래 「말하는 대로」를 들려준다. 후에 베트남어로 번역한 가사를 보여 주고 이 가사를 지은 사람에 대해 소개한다. 그가 어떤 20대를 보냈으며 지금은 얼마나 다른 삶을 사는가를 얘기한 뒤 학생들에게 누구일지 맞춰 보라고 한다. 유재석이라고 하면 다들 놀란다. 


 이런 극적인 연출을 하고난 뒤 학생들에게 각자의 버킷리스트를 써 보라고 하면 사뭇 진지한 태도로 임한다. 새 핸드폰을 사고 싶다거나 부모님께 좋은 오토바이를 사드리겠다는 둥 경제적 목표가 많다. 구체적으로 적어 보라고 하면 언제까지 얼마를 저축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계획 없이 돈만 많이 벌고 싶다는 학생도 많다. 그럼 단기간 내에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워 보라고 한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거나 이번 학기에 장학금 받는 걸로. ‘남자친구’도 꼭 빠지지 않는 항목이지만 대부분은 부자가 되고 싶다고 한다. 부자가 되면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으니까.  

 또 다른 시간에는 교재에 선물 얘기가 나와서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뭐냐고 물어 보았다. 돈이라고 답한다.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으니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동아리 시간에 노래 가사 속 '-고 싶다'표현을 배우며 어떤 사물이 되고 싶으냐고 물으니 ATM이란다. '꿈'이나 '소망'을 주제로 대화해도 돌고 돌아 결국 돈이다. 한 번은 좀 더 다양한 화제로 대화하고 싶어서 돈 말고 다른 건 없냐고 물으니 학생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그게 가장 현실적인 거예요."


 맞다. 학생들이 자꾸만 돈돈거리는 것은 그게 가장 필요하기 때문이다. 돈이 필요한 사연은 다양하지만 그게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이니 나는 우리 학생들이 다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처럼 부족한 선생은 더 공부하고 준비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에게 더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고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고 싶다. 


 그러니 수업 말미에는 '그러니까 우리 열심히 공부합시다!'로 끝나기가 일쑤. 아이들이 원하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취직을 잘 해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어 실력이 좋아야하니까. 현재 우리 학생들이 돈을 가장 빨리 벌 수 있는 방법은 베트남 주재 한국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이다. 오래 일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일이년만 버텨도 큰돈을 모을 수 있다. 그 돈으로 부모님 빚을 갚거나 한국 유학을 준비하기도 한다. 어쨌든 학생들이 홀가분해질 수 있는, 다음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종잣돈이 되는 것이다. 


 나는 우리 학생들이 부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 마음을 품고 오늘도 학생들에게 더 공부하자고 잔소리를 한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얘들은 쉬는 시간 더 달라고 아우성. 나는 정말 우리 애들이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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