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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Oct 02. 2019

[다낭소리] 고향으로의 초대

 고향으로의 초대  

 코워커 선생님과 함께 저녁을 먹는데 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오늘 제사 지내는 날이라 음식이 많으니 집에 와서 밥 먹으라는 얘기. 잔말 않고 따라갔다. 밖에서 큰 화로에 쓰레기며 제사 지낸 것들을 태우는 모습을 구경하고, 집에서 정식(불교 채식으로 된 식사)을 먹었다. 이게 다 채소로 만든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요리가 있었다. 해외에 나오면 고기 위주의 식단에 질려 버리곤 했었는데 베트남에서는 채소를 많이 먹어서 좋다.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여하튼 맛있는 요리를 잔뜩 먹고 나니 어머님께서 설 계획을 물어 보셨다. 집에서 쉴 예정이라고 말씀드리니 ‘한국에 안 가고?’하며 놀라신다. 그리고는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고향에 같이 가자고 하셨다. 먼저 물어봐 주신 게 정말 감사했지만 한편으로는 눈치가 보였다. 나도 베트남의 명절 풍경이 어떤지 보고 싶다. 하지만 우리 코워커도 모처럼 만의 휴식을 혼자 보내고 싶을 텐데…. 아마 내가 가면 손님이라 신경 쓰이고 통역하느라 바쁠 것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사양하니 이번엔 코워커가 괜찮다며 같이 가자고 한다. 그냥 던지는 말인가 싶어서 몇 번을 거절하다가 결국 같이 가기로 했다. 


 급히 사무소에 휴가 신청서를 제출하고 나니 실감이 났다. 첫 휴가, 첫 지역 이동! 그간 학교와 집만 왔다 갔다 했기에 다른 지역에 가 보는 건 처음이다. 게다가 코워커의 고향은 북부 시골이라 전통적인 베트남 설 풍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잔뜩 기대되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설을 기다렸건만 갑자기 감기 기운이 들더니 몸이 축 늘어졌다. 남의 집에 갈 때 아프면 안 되는데…. 특히 베트남 사람들에게 새해는 소중한 기간이다. 새해가 오기 전에 대청소를 하며 액운을 몰아내고 집에 방문하는 첫 손님과 집주인의 띠가 잘 맞으면 한 해 운수가 좋다고 여긴다. 그렇게까지 신경 쓰는 기간인데 아픈 내가 가도 될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가면 민폐가 될 것 같아 가지 말까 싶다가도 기껏 초대해 주셨는데 이제와 못 가겠다고 하는 게 죄송해 짐을 꾸렸다. 


 우리 코워커의 고향은 다낭에서 출발하면 차로 15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이다. 교통체증을 피하기 위해 새벽 일찍 떠났다. 앞좌석에는 아버님 어머님이 타시고 뒷좌석에는 코워커의 어린 동생과 내가 탔다. 코워커는 차멀미가 심하고 하노이에 볼일이 있는 관계로 먼저 비행기를 타고 갔다. 소통을 걱정하는 코워커에게 어머님은 번역기가 있으니 걱정 말라 하셨고 나는 바디 랭귀지가 있으니 염려 붙들어 매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여정. 꼬박 하루가 걸릴 테다.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차는 시내를 빠져 나갔다. 휴게소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난 뒤부터는 인적이 드문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차를 길가에 대고 노상방뇨를 했다. 나는 감기약에 취해 자다 깨다를 반복했고 혹 감기 옮길 새라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쉼 없이 달린 차는 낯선 동네로 접어들다 이내 멈춰 섰다. 여기서 저녁을 먹는다고 했다. 아버님의 친구 분 댁인가 보다. 한 상 가득 음식이 차려지고 큰 딸이 부재한 대신 내게로 질문이 쏟아졌다. 대략적인 호구조사를 마치자 술을 권하셨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이지만 일단 받았다. 아버님은 내가 베트남어를 조금은 할 줄 안다는 것이 자랑스러우신 듯 계속해서 베트남어를 시키셨다. 할 수 있는 말을 다 하고 나자 어색함에 부지런히 젓가락을 놀렸다. 


 생전 처음 보는 음식도 많았다. 그 중 바나나 껍질로 싼 빨간 햄은 삭힌 것인지 시고 쿰쿰한 맛이 났다. 도무지 내 입 맛엔 맞지 않아서 하나 먹고는 안 먹고 있었는데 그게 이 지방 특산물이니 많이 먹으라며 여럿이 내 앞으로 밀어 주신다. 그 정성을 무시할 수가 없어서 두어 개 또 집어 먹었다. 빨리 씹어서 꿀떡 삼키고 싶기도 했고 아주 느릿느릿하게 씹으며 조금만 먹고 싶기도 했다. 권하는 손길에 대책 없이 먹었더니 나중에는 삭힌 홍어를 먹은 것처럼 입 안이 따가웠다. 그래도 따끈한 국물과 갖가지 음식을 배불리 먹자 명절 기분이 났다. 

손님맞이 한 상


술자리가 길어지고 아버님 운전하셔야 하는데 저렇게 드셔도 되나 싶어 걱정이 될 때쯤 자리가 파했다. 운전 하셔도 되냐고 여쭤 보니 오늘 여기서 자고 간다 하신다. 오 마이 갓. 아버님 친구 분 소개로 근처 모텔에 방을 잡고 아버님과 어머님, 나와 코워커의 어린 남동생이 같이 누웠다. 내일도 새벽부터 출발한다고 하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비몽사몽간에 일어나니 어머님과 아버님 모두 아침 체조를 하고 계셨다. 따라하라 하시기에 나도 옆에서 가만히 팔을 움직였다. 나야 가는 길에 자면 되지만 아버님이 너무 피곤하실 것 같아 걱정되었다. 다같이 근처 노점상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했다. 

 워낙 시골 마을이라 그런지 내비게이션을 따라 가다가도 중간에 차를 세워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봐야 했다. 이번 설에 가는 곳은 코워커 어머님의 고향이다. 십 몇 년 만에 가는 것이라 하니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아버님 고향은 다낭에서 차로 한 시간이면 도착하는 시골 마을. 사투리가 다양한 베트남은 북부와 중부의 차이도 크다. 중부 지역은 비음과 ‘쾅쾅’거리는 소리를 더 많이 사용한다. 가끔 나도 중부 사투리를 따라해 보는데 코와 인중을 이리저리 움직이면 비슷한 소리가 난다. 내겐 너무 어렵다. 그래서 아버님 말씀은 못 알아들을 때가 많아도 어머님 말씀은 귀에 잘 들어왔다. 나름의 북부 사투리가 있다고는 해도 표준어와 비슷해 발음이 더 정확하게 느껴진다. 

 가는 길에 또 한 번 차를 세웠다. 친척쯤 되는 분의 새 집을 구경하며 완공을 축하하였다. 날씨가 쌀쌀했던지라 집주인은 우리에게 차를 권했다. 술잔처럼 작은 잔에 채워진 녹차는 지옥에서 온 것 마냥 썼다. 북부 사람들은 이렇게 진한 차를 마시는 건가 싶었다. 혀가 아릴만큼 쓴 차를 마신 덕에 잠이 싹 달아났다. 다시 출발한 차는 비포장도로를 달려 점점 시골로 들어섰다. 멀리서 마중 나온 코워커가 보였다. 아, 얼마나 반갑던지…! 스앵님, 드디어 제가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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