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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Oct 02. 2019

[다낭소리] 며느리 간접 체험

 며느리 간접 체험

 집안의 수장 되시는 할머님께 준비해 간 설 선물을 드리고 점심을 먹었다. 큰아버지 가족이 함께 사는 이곳에는 내 또래쯤 되는 코워커의 사촌 오빠와 그의 여동생이 함께 살고 있었다. 좌우로 옆집에는 사촌들이 모여 살았다. 우리네 시골마을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때가 되면 밥 먹고 설거지하고 옆집 애기와 놀았다. 그동안에도 계속해서 손님이 찾아왔다. 큰아버님은 집에 이웃이 오면 차를 대접하고 긴 통 담배를 불었다. 가끔 식사를 함께하기도 했다. 손님이 오면 어머님이나 아버님 중 한 분이 나를 소개했다. 인사와 내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진 뒤에는 어른들끼리 담소가 오갔다. 베트남에 시집 온 한국 며느리가 된 기분이었다. 


 오늘은 ‘반쯩’ 혹은 ‘반뗏’이라고 하는 베트남식 떡을 만드는 날. 저녁 먹고 나니 낯선 할머니 한 분이 오셨다. 미리 준비해 놓은 재료를 살펴보시곤 자리에 앉아 작업에 들어가셨다. 나는 뭔가 도울 게 있을까 싶어서 옆에 앉아 있다가 구경만 했다. 송편처럼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만드는 게 아니라 이웃집 할머니를 모셔다가 하는 게 특이했다. 만드는 방법이 쉽지 않기 때문에 보통 시장에서 사거나 돈을 주고 전문가를 부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바나나 잎을 바닥에 몇 장 깔고 그 위에 찹쌀, 녹두, 후추와 소금으로 간한 돼지고기를 올린다. 한데 잘 모아 바나나 잎으로 싸고 풀어지지 않게 고정하면 끝.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는데 막상 만드는 건 쉽지 않은가 보다. 우리 모두 따라해 보다 포기했다. 바나나 잎을 엮는 게 일이다. 내일은 이걸 솥에다 찐다니 기대가 된다. 


반쯩(반뗏) 재료. 북부는 반쯩, 남부는 반뗏이라고 한다. 
반쯩 만드는 법
반쯩 찌는 솥

감기 기운이 떨어지지 않는 날 보더니 코워커가 약을 사다 주었다. 독하다더니 먹자마자 잠이 쏟아졌다. 그렇게 한 숨 자고 나니 열이 내렸고, 한 번 더 먹으니 감기 기운이 가셨다. 새해 전에는 낫고 싶었는데 다행이었다. 상태가 좀 좋아지자 코워커가 시장 구경을 가자고 했다. 얼른 오토바이 뒤에 올라탔다. 가는 길목마다 분홍빛 복숭아꽃을 화분에 담아 팔고 있었다. 우리 집에도 하나 있다, 복숭아나무. 설이 되면 베트남 사람들은 금귤나무와 꽃나무를 집에 갖다 놓는데 북부는 복숭아꽃, 남부는 매화꽃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설’을 떠올리면 북부는 분홍색으로 남부는 노란색으로 기억된다. 


북부 설 시장
부처 손을 닮은 과일 ‘팟 투’. 신 맛이  나는데 주로 제사상에 올리고 먹지는 않는다고 한다.
노란 자몽나무

구경은 잠깐 하고 시장에서 간식거리를 사 먹었다. ‘쩨’라고 하는 베트남 식 디저트인데 빙수처럼 얼음을 넣어 차갑게 먹기도 하고 따뜻하게 먹기도 한다. 옥수수, 콩, 연밥, 연근 등 별의별 채소가 다 들어가고 전분과 설탕을 넣어 달고 걸쭉하다. 거기다 라이스페이퍼와 초록 망고를 채 썰어 맵게 양념한 것을 곁들여 먹었다. 베트남에서 맛보는 단짠(달고 짠 맛)의 조화. 

파파야 샐러드. 파파야를 채썰어 피시 소스(느억맘)로 간하고 땅콩 가루, 육포, 향채와 섞어 먹는다. 
베트남 디저트 '쩨' : 팥, 고구마, 녹두, 연밥, 옥수수, 연근, 다시마, 등이 들어 간다. 
보통은 얼음을 넣어 차게 먹지만 추울 때는 따뜻하게도 해서 먹는다.


 오랜만에 온 고향에 어머님도 신이 나셨는지 매일같이 친구 분들을 만나러 돌아 다니셨다. 설 이후로는 친척집을 방문해야 하니 그 전에 시간을 보내시는 것 같다. 코워커와 나도 덩달아 따라 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거운 구경을 했다. 한 번은 복숭아나무를 구경하러 갔는데, 길 한 쪽 편에 복숭아나무가 길게 늘어져 있어 마치 꽃밭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거리마다 복숭앗빛 지천이었다. 분홍빛 꽃밭에 따스한 날씨까지 어우러져 봄기운이 났다. 매섭던 추위도 슬슬 풀려 가고 있다. 이제 진짜 새해가 오려나 보다. 

복숭아꽃 거리
날이 풀려 제대로 핀 복숭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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