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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Oct 02. 2019

[다낭소리] 새해

 새해

 오늘은 연말. 베트남 음력으로 12월의 마지막 날이다. TV에서는 만담 쇼가 한창이다. 명절이 되면 베트남의 유명 코미디언들이 나와 한 해 동안 있었던 일을 풍자하는 쇼를 진행한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오갔지만 표정이나 몸짓만 봐도 재밌었다. 우리 코워커 가족들은 수시로 뒤집어진다. 정말 재미있는가 보다. 


 저녁에는 손님들을 초대해 먹을 것을 잔뜩 차려 놓고 먹었다. 손님맞이를 할 때마다 설거지는 자연스레 나와 코워커 혹은 그 여동생의 몫이 된다. 날마다 배불리 먹여 주셨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접시를 닦았다.  한 끼 식사에 사용되는 그릇의 양이 엄청 났기에 설거지하는 데만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내 손이 느린 건지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옆에 그릇이 수북이 쌓일 때는 진땀이 났다. 


 저녁 식사가 늦게 끝났기 때문에 설거지를 마치니 졸음이 쏟아졌다. 손님이 돌아간 거실에서는 어른들이 TV를 보고 계셨고 할머님은 일찍이 잠자리에 드셨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끝나는구나 싶어 나도 씻고 자리에 누웠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코워커 아버님이 방에 들어 오셨다. “해피 뉴 이어!”라고 외치면서! 


 깜짝이야! 너무 놀라 벌떡 일어났지만 상황 파악이 안 되었다. 갑자기 아버님이 돈 봉투를 주신다. 뭔가 싶어 한사코 사양하니 코워커가 이건 ‘럭키 머니’이니까 받으라고 한다. 아, 베트남에서는 12시 땡하고 새해가 밝으면 세뱃돈을 주는가 보다. 아버님께 행운의 2달러를 받고 난 뒤 곧이어 큰어머님께도 럭키 머니를 받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준비할 걸… 순간 아이디어가 떠올라 받은 돈 봉투를 비우고 새로이 돈을 넣어 어른들께 드렸다. 여행 경비로 쓸 돈이었지만 지금까지 어른들이 다 내주신 덕에 내 돈 한 푼 쓰지 않았었다. 이렇게라도 마음을 표한할 수 있어 감사했다.  

세뱃돈 봉투

 덕담을 하며 한차례 럭키머니를 주고받았다. 그 소란에 할머님도 깨셨다. 거실로 나가니 탁자에 과일과 오렌지 즙이 준비되어 있었다. 달콤하게 살라는 의미로 새해 첫 날에 오렌지 즙을 마시는 게 풍습이라고 한다. 아니, 이렇게 스윗할 수가…! TV에서는 불꽃놀이 중계가 한창이었다. 그걸 보며 달달한 오렌지 즙을 마시고 과일을 몇 조각 집어 먹고 난 뒤 방으로 돌아왔다. 꿈만 같았다. 


학교에서 벌인 세뱃돈 따기 게임


 새해 첫 날이 되자 탁자에는 각종 견과류와 말린 과일이 수북이 쌓였다. 코코넛, 당근, 자몽 등 과일이나 채소를 설탕에 절여 말린 것을 통틀어 ‘믁’이라고 하는데 누구나 좋아하는 명절 음식이다. 가까운 친척집은 걸어서 방문하고 먼 길을 가야 하는 경우 오토바이나 자동차를 타고 이동했다. 도착하면 어른들이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동안 나는 옆에서 대기하다가 내 차례가 오면 인사를 드리고 소개했다. 그리고 나면 가만히 앉아 주시는 차나 간식거리를 받아먹었다. 딱 시댁에 처음 방문한 며느리 같았다. 헤어지기 전 단체 사진을 찍어 드리는 것도 나의 역할이었다. 


 이렇게 몇 번을 하자 금방 점심시간이 되었고 먼 동네 친척 분의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가며 나를 소개하고 밥을 먹는데 옆에 큼직한 휘발유 통이 보였다. 뭘까 싶었는데 역시나 술이었다. 짐에서 담근 술. 그 큰 통에 든 것을 다시 대접에 붓고, 남자들이 빙 둘러 앉아 조그만 술잔으로 떠 마셨다. 한 잔 마셔 보니 누구 말대로 내 식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연결 되었는지 알 수 있을 만큼 독했다. 인간의 신체 구조는 얼마나 위대하길래 이런 걸 마시고도 녹지 않는 걸까 싶다. 계속 받아먹다간 죽겠다 싶어서 슬쩍 여자들이 모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명절은 살찌는 계절. 각양 고기부터 베트남 전통 떡, 햄, 육포, 생선, 채소 요리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이렇게 한 상 가득 차려 먹고 나서 또 설탕에 절인 채소나 견과류를 먹는다. 열심히 먹고 있으면 왜 그리 못 먹느냐며 음식을 덜어 주시고, 방금 집어 먹었는데도 고기 좀 먹으라며 혼나는 걸 보면 명절이 맞긴 한가 보다. 가족처럼 대해주시는 마음에 정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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