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낭소리 Oct 15. 2019

[다낭소리] 간헐적 미디어 절식

 간헐적 미디어 절식

 다시 시작된 수업. 설 이후로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동아리를 진행하느라 일주일 중 이틀은 집에 늦게 들어온다. 

퇴근할 때의 학교 풍경

 한 주의 수업이 끝나는 날엔 해야 할 일을 다 마쳤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느슨해진다. 그럼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거나 잘 쉬면 좋을 텐데, 그저 일찍 잠들기 아깝다는 생각에 별로 재밌지도 않은 것을 붙들고 새벽까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설 연휴가 끝나고 난 뒤부터 지난 3월 내내 이렇게 지냈다. 날이 좋든 흐리든 하루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서 노트북만 쳐다본다. 인터넷이 잘 되는 것도, 이렇게 발달된 곳에 산다는 것도 나에게는 독이 된다. 


 어제는 시험을 앞두고 가르칠 내용이 많아 평소보다 늦게 귀가했다. 습관처럼 노트북을 꺼내는데 뭔가 허전하다. 충전기는 놔두고 노트북만 들고 오다니 내 정신도 참.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없으니 놔두기로 했다. 다시 학교까지 가는 게 귀찮기도 하고…. 


 노트북 사용을 못하는 관계로 오랜만에 책을 꺼내 읽었다. 마음에 드는 구절이 많아서 기뻤고, 내친 김에 내일은 예쁜 카페에 앉아서 느릿느릿 책을 읽겠노라고 다짐했다. 내일이 되면 무슨 옷을 입을지 고르다가 그만 외출을 포기해 버릴까봐 입을 옷도 미리 꺼내 놨다. 나는 뭐든 핑계가 많은 사람이니까. 어쩌면 해야 할 이유보다 하면 안 될 이유를 더 쉽게 찾는 것이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늘 혼자일 수 있는 시간을 꿈꿨었다. 다음날 출근이 걱정되어 책을 접을 때, 억지로 잠을 청할 때마다 내게 시간이 더 있기를 하고 바랐었다. 그런 시간이 주어지면 다음날 걱정 없이 책을 읽고 주변 사람들을 위해 더 기도할 거라고 다짐했었다. 그래서 코이카에 지원할 당시 나는 어디 좀 작고 조용한 곳으로 파견되기를 원했다. 사는 게 어느 정도 불편하더라도 삶이 너무 바쁘지 않아서 고요히 생각에 빠질 여유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인터넷이 턱없이 느리다거나 단수와 정전이 벌어지는 일까지는 감내하려는 마음이 있었다는 듯이다. 그래서 내 부임지가 다낭으로 결정되었을 때, 나에게 축하를 건네며 부러워하는 동기들 틈에서 나는 기쁘기보다는 아쉬워했다. 


 파견 이후 시간적 여유가 충분히 있음에도 나는 여태 한국에서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며 지냈다. 오히려 밤늦게까지 여러 가지 미디어로 눈과 귀를 혹사시키다가 지쳐 잠들거나, 잠들기 전까지 계속 머릿속에 뭔가를 집어넣으며 분주하게 살다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이제야 깨닫는다. 지금껏 그렇게 살아온 건 내가 도시로 파견되거나 인터넷이 빨라서가 아니었다는 것을. 편리한 생활이 제공된다고 해서 다 누릴 이유는 없었다. 내 선에서 알아서 조절하고 절제하면 될 것을. 처음부터 그럴 수 있는 것이었는데도 나는 늘 핑계 대기에 바빴다. 그래서 불필요한 정보의 홍수에 빠져 허우적댔고, 눈과 귀를 현혹하는 영양가 없는 것들을 잔뜩 섭취하며 심신을 괴롭혀왔다. 남과 나의 모습을 비교하고 좌절하며,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탐내고 아쉬워하며, 화려하고 반짝이는 것들에 매료되어서 공상에 빠져 현실을 바라볼 때마다 우울했었다. 내가 잠시 뭐에 홀렸던 건지 아니면 빠르게 돌아가는 이 세상이 나를 그렇게 만드는 건지 모르겠다.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했을 때 정말 미디어를 끊어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사회는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메신저의 숫자 1이 사라지는 순간 조급함을 느끼고 왜 답장을 하지 않느냐는 독촉이 날아오는 시대. 그런 시대를 살다 보니 멀미가 난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혼자만 귀 닫고 눈 감고 살 수는 없다. 그러니 일주일에 단 몇 시간만이라도, 아주 가끔이더라도 의식해서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거나 사람들과 바삐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이 다짐이 그리 오래갈 거라는 자신은 없지만 요새 유행하는 말처럼 간헐적으로라도 한 번 해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다낭소리] 특별한 보양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