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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Oct 15. 2019

[다낭소리] 4학년 사은회

  4학년 사은회

 학과 사무실로 빨간 종이가 날라 왔다. 4학년 학생들의 사은회 초청장. 베트남에서는 붉은색을 주로 사용하느냐고 물었더니 선생님들도 아니라며 의아해한다. 장난스레 ‘무섭다, 안 가면 우리 죽겠다.’하며 행사를 기다렸다. 


 행사장에 가니 식당의 홀 하나를 빌려 화려하게도 꾸며 놨다. 아직 취업도 안 한 학생들이 돈은 어디서 난 건지 걱정이 앞선다. 강사들끼리 돈을 모아 준비한 와인과 케이크를 학생 대표에게 건네고 사회자의 대본을 교정해 주었다. 한국어학과라고 전체 식순을 한국어로 준비한 게 기특하고 예뻐 보였다. 


 행사의 첫 수순으로 선생님들이 무대에 나와 축하 인사를 건네는 시간이 있었다. 나도 부족하지만 베트남어로 덕담과 인사를 건넸다. 이 자리를 준비한 노력에 감동 받았다는 말을 전하며 ‘콤 파이 타오 마이=아부 떠는 거 아니에요.’했더니 모두들 자지러진다. 외국인이 이 말을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표정이다. ‘타오 마이(=아부)’는 요즘 젊은층이 많이 사용하는 은어인데 지난번에 학교 선생님 한 분이 가르쳐 주시기에 기억했다가 써 먹었다. 


 학생들의 공연을 보며 저녁을 먹는 동안 신청곡을 받았다. 서로 자기가 하려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적어 내기 바쁘다. 그렇게 내 차례가 왔다. 무엇을 부를까 하다가 분위기를 띄워 볼 겸 2017년 최고의 댄스 히트곡 ‘GHEN(질투)’을 노래를 불렀다. 다들 아는 노래라 그런지 따라 부르는 소리가 대단하다. 한민족만큼이나 흥 많고 잘 노는 민족이다. 


 행사 마지막 수순으로 학생들이 준비한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듣는 나도 뭉클했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젊은 선생님들이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나는 4학년 학생들을 담당한 적이 없다. 누가 누군지 모르겠고 대단한 정도 없다. 하지만 우리 선생님들은 이 애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계속해서 지켜 봐왔으니 얼마나 뭉클할까. 그 모습을 보다 내가 지금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을 떠올렸다. 그 학생들이 사은회를 할 때 나도 이렇게 울게 될까? 그 생각을 하자 벌써부터 코끝이 찡해졌다. 


 돌아오는 길에 나를 집에 데려다 주며 선생님 한 분이 묻는다. 

  “연장하실 거예요?” 


 아직 먼 얘기처럼 느껴져 그동안은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오늘 학생들과 선생님들 모습을 보니 연장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대답했다.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이 졸업하는 모습은 보고 싶다고…. 그러자 선생님이 말한다. 


  “그럼 끝이 없을 거예요.”  


 맞다. 앞으로 내가 어떤 아이들을 맡게 될지 모른다. 만약 학기마다 다른 학번을 맡는다면 그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다 보고 가겠다는 건 나의 욕심이다. 확신할 수 없는 연장의 고민은 다음으로 미루고 지금은 매일 만나는 아이들에게 집중해야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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