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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Oct 15. 2019

[다낭소리] 베트남 닌자 리더 같아요

 베트남 닌자 리더 같아요

 여름이 왔다. 하루의 시작을 덥다는 말로 하게 된다. 덥다, 정말 덥다…! 아니, 따갑다! 출근 하려고 오토바이 택시를 타면 팔다리가 따끔거린다. 햇볕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긴 팔에 레깅스를 입고 나와도 그렇다. 자주 노출되는 발이나 손등은 벌써 거뭇거뭇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무장을 한다. 얼굴을 덮는 마스크에 선글라스, 바람막이, 햇빛 가리개 치마, 헬멧으로 무장하고 교정에 들어서면 열에 아홉은 내가 누군지 몰라 무시하거나 갸웃거리기 일쑤다. 먼저 인사하면 ‘쟤는 누군데 인사해?’하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나를 알아보고 빵 터진다. 

  “선생님, 베트남 닌자 리더 같아요!” 


 베트남에 살며 놀란 것 중 하나가 무더운 여름날에도 두꺼운 외투를 입는다는 것이었다. 혹자는 이것이 열을 낮추는 방법이라 말한다. 그늘을 만들어주니 더 시원하기도 하고 바람이 불면 땀이 식어서 시원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우리 학생들 입에서 나온 주된 이유는 ‘햇볕이 따가워서’ 혹은 ‘살이 탈까봐’였다. 


 현재 베트남 내에 ‘피부 하얀 사람이 예쁘다.’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어서인지 아이들 모두 살타는 것을 꺼린다. 무더운 날 교실에 들어가면 아이들이 내뱉는 숨과 열기로 후끈후끈하다. 커튼을 죄다 쳐 놓아 바람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더 덥다. 내가 창문이라도 열라 치면 학생들이 손사래를 치며 막는다. 아무리 더워도 커튼을 꼭꼭 여미는 것은 눈이 부셔서이기도 하지만 타는 것이 싫어서라고 한다. 햇볕에 타면 구릿빛 피부가 되는 게 아니라 잘못 구워 ‘탄 빵’같이 까무잡잡한 색이 되어 버리는 탓이다. 


 베트남에서 농부는 가난한 직업이다. 대체로 야외에서 일하는 사람은 햇볕에 자주 노출되기 때문에 피부가 쉽게 까매지고 잘 사는 집 아이들은 피부가 하얀 편이기도 하다. 그래서 학생들은 피부색에 민감하다. 입을 모아 한국 사람은 피부가 좋다고 칭찬하는 것도 도자기 같은 피부라서가 아니라 대체적으로 한국인 얼굴이 하얗기 때문이다. 같은 동남아 중에서도 태국은 좋아하지만 캄보디아나 라오스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피부가 더 까만 사람을 ‘라오스 사람, 캄보디아 사람’이라고 부르며 놀리기도 한다. 씁쓸한 일이다.

논을 쓴 아주머니


 베트남의 햇볕은, 그대로 눈에 맞는다면 시력이 약해지고 피부에는 기미를 일으키는 무시무시한 존재다.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손등 같은 경우 오토바이 뒤에 이삼 분만 타고 있어도 따끔따끔. 이러다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싶을 만큼 화끈할 정도다. 오토바이나 차를 타고 주변을 둘러보면 인상 쓴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베트남 사람들이 잘 웃기는 하지만 가만 보면 미간에 주름이 깊이 패여 사납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햇빛에 눈이 시려서 저도 모르게 찡그리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도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길을 걷는 내내 미간이 찌푸려진다. 모르고 볼 때는 몰랐는데 여름을 겪어 보니 이해가 간다. 


 잠시잠깐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지만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어르신들을 볼 때면 모자라도 하나 사드리고 싶다. 이 따가운 햇볕을 맞으며 일하는 분들의 삶이 고되 보이고 왠지 모를 짠한 마음이 든다. 어느 순간 베트남 사람들이 외국인이 아니라 이웃 주민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까닭이다. 우리 학생들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일 수도 있는 누군가가 덜 고생했으면 싶고 그들에게 좀 더 다정한 마음이 든다.


 한때 친구들과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려 본 적 있었다. 나에게는 짠한 마음이 드는 게 사랑이다. 누군가가 좋아지면 그 사람의 형편이 어떻든 간에 문득 안쓰럽고 딱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은 눈길 돌리는 곳마다 마음이 따라간다. 바람 한 점 안 통하는 시장에서 물건 파는 아주머니들을 봐도 그렇고 불 앞에서 땀 뻘뻘 흘리며 고기 육수 뜨는 모습을 봐도 그렇다. 이 더위가 얼른 끝났으면 싶지만 날이 더워야 과일이 익고 장사가 되니 마냥 여름이 끝나길 바랄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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