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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Oct 15. 2019

[다낭소리] 공유와 소유1

 공유와 소유

 언젠가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나를 반성하며 ‘하나님, 제가 너무 좋은 곳에 살아서 자꾸 밖에 나가지 않나 봐요.’했었다. 이사 전에 우려했던 것처럼 방에 도마뱀이나 바퀴벌레가 돌아다니면 그게 싫어서라도 열심히 밖으로 나갈 텐데, 다낭에서 산 지 반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학교와 집만을 오가는 이유가 집이 너무 좋아서라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그때 기도를 마치고 불을 탁 켰을 때, 정말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책상 위에 회색 도마뱀이 올라와 있었다. 


 저도 인기척을 느껴서 놀랐는지 바삐 가던 걸음을 멈추고는 눈만 끔벅끔벅. 그러다 서로 눈이 마주쳤다. 아, 가까이서 본 그 작은 도마뱀의 눈은 참깨만하고 새카맸다. 이걸 어찌할까 싶어 고민하는 사이 그는 후다닥 몸을 숨겼다. 창문 밖이 아닌 옷장과 벽 사이의 작은 틈으로…. 


 그날부터 녀석과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사실 도마뱀쯤이야 학교며 식당이며 어디서든 일상으로 보는 것이고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도 않으니 무섭지는 않다. 도마뱀이 모기도 잡아먹는다고 해서 은근 기대를 했었는데 우리 집 애는 배가 불렀는지 여전히 모기와 함께 산다만 딱히 나쁘지도 않다. 그러라고 키우는 생물이 아니니까. 문제는 안전하다 믿었던 우리 집에 대한 환상이 깨져버렸다는 것. 이제 괜한 핑계 대지 말고 나가서 코에 바람 좀 넣어줘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게 벌써 두 달 전 일이고 최근엔 욕심내어 여름방학 동아리를 운영하는 바람에 다시 학교와 집만 오가고 있다.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방에 틀어박혀 지내던 어느 날. 그러니까 며칠 전 밤에 일어난 일이다.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아 이럴 거면 책이나 읽자는 심산으로 불을 켰다. 그때 마주친, 하얀 방바닥을 기어 다니던 까만 바퀴벌레. 손톱만한 크기라 놀라지는 않았지만 언제 요놈까지 찾아 들었나 싶어서 살짝 짜증이 났다. 아니, 개미와 바퀴벌레는 천적이라더니 우리 집엔 모기와 도마뱀도 심지어 개미도 바퀴벌레도 공생하고 있다. 이런 갸륵한 것들을 봤나…!


 대망의 오늘. 자다 일어나 화장실에 갔더니 시커먼 바퀴벌레가 신나게 활보하고 있었다. 혹시 이거… 딱정벌레…? 얼마나 큰지 굵기도 길이도 딱 내 엄지손가락만 하다. 여기 바퀴벌레가 까딱하면 날아다니고 실수로 밟기라도 하면 와지직 소리가 날 정도로 딱딱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건 길바닥이나 식당에서만 사는 줄 알았다. 대수롭지 않게 처리하고 돌아왔지만 새삼 내가 얼마나 큰 착각 속에 살았던 건가하고 돌아보게 되었다. 


 그동안 여기는 나만 사는 공간인 줄 알았다. ‘내 집’이라는 게 으레 그런 의미이고 가끔 놀러 오는 사람들도 내가 초대하는 것이지 이렇게 마음대로 찾아오지는 않는다. 그런데 요 근래에 보이는 이 불청객들은 불쑥불쑥 나타나 내게 깨우침을 주는 것 같다. ‘짜잔- 놀랐지? 놀랄 것도 없어. 여기 너만 사는 거 아니야.’하고. 그러곤 기세등등하게 활보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착각한다. 내 돈 주고 산 땅. 거기다 내 돈 더 얹어 지은 집이니 온전히 내 것이라고. 뚝딱뚝딱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땅의 원주인들을 몰아내고 ‘내 소유다!’하며 거들먹거린다. 공사가 끝나면 쫓겨났던-실은 아주 오랫동안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았던-이들이 조용히 찾아온다. 그리고 인간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원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들의 등장으로 그곳은 사유에서 공유하는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우리만 그 사실을 모르고 살아갈 뿐-.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도마뱀의 꺽꺽대는 울음소리가 들린다. 가끔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요란스레 제 존재를 드러내며 우리가 같이 살고 있음을 인지시켜 준다. 어쩌면 우리는 꽤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 온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잠들면 녀석들이 깨어나고 내가 깨어있을 땐 놀랄 나를 배려해 잠시 자리를 비켜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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