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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Oct 15. 2019

[다낭소리] 한국 사람에게는 비싸지 않아요

 한국 사람에게는 비싸지 않아요

 한국 사람들이 동남아에 와서 먹고 놀라는 과일은 단연 '망고스틴'일 것이다. 보랏빛 껍질 안에 자리한 마늘 모양 과육은 달콤하고 상큼하다. 이건 옆에서 아무리 설명해 줘도 직접 먹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맛이다. 나는 지난 태국 여행 때 처음 먹어 보고 반했었다. 미지근한 과일이 그렇게 맛날 수 있다니…!


 베트남에서 '망꿋'이라고 불리는 망고스틴은 베트남, 아니 동남아 내에서도 비싼 과일에 속한다. 저렴할 때는 1kg에 4만동(2천원)이면 사지만 보통은 8만동(4천원) 이상을 호가한다. 베트남에 오면 망고스틴을 실컷 먹을 줄 알았는데 막상 시장에서는 수확 철이 아니면 잘 팔지도 않는다. 어디서 들여오는 건지 관광객이 자주 가는 한인 마트와 관광지에서만 가판대에 내놓고 판다. 필히 베트남산은 아닐 거다.


 한 번은 학생들과 얘기하다가 ‘망고스틴을 좋아하지만 지금은 비싸서 안 사 먹는다. 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더니 대뜸 “한국 사람에게는 비싸지 않아요!”한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자 베트남 사람에게는 비싸지만 한국 사람에게는 비싼 게 아니란다.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우선은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우리 학생들이 주로 보는 한국인은 여행객이다. 다들 힘들게 시간 내서 온 만큼 화려하게 차려 입는다. 그렇게 입고 시장에서 비싸다고 하니 베트남 사람들이 볼 때는 자기네들에게 부담되는 값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깎으려 드나 싶어 의아할 것이다. 시장에서 턱없이 바가지를 씌우기도 하지만 관광객이 지나치게 값을 깎기도 한다. ‘관광지 불신감’이 커져서 그런지 상인이 부르는 값의 무조건 반을 깎으려 드는 사람들도 있다. 다낭에서 그렇게까지 덤탱이 씌우는 상인은 드물지만 그런 사례가 아예 없지는 않으니 서로 애를 먹는다.


쇼핑의 중심지 한시장
한시장 내부. 2층으로 되어 있다.


 나는 가능하면 값을 흥정하지 않으려 한다. 사기 전에 몇 군데 둘러보며 평균값을 계산하고 타산에 크게 어긋나지 않으면 구입한다. 코이카에서 주는 생활비도 임지에서 다 쓰고 가라고 주는 것인데 500원, 1000원 아낀다고 해서 크게 남는 건 없기 때문이다. 대놓고 말도 안 되는 값을 부르는 게 아니면 이것도 개발협력의 일부분 아니겠느냐 하며 넘어간다. 이런 마음을 먹게 된 데는 페루에서의 경험이 크다.


 스물두 살. 당시 나는 현지인보다 값을 잘 깎아서 친구 어머님들을 폭소하게 만들었다. 당시에는 그게 재밌기도 했고 내 스페인어를 뽐낼 기회가 되어서 흥정에 성공하면 괜히 으쓱해 했다. 한 번은 열심히 값을 흥정하며 학생이라 돈이 없다고 했더니 아주머니가 “여기까지 여행 왔잖아. 그럼 돈 있는 거지!”하고 쏘아 붙였다. 순간 욱해서 ‘아줌마, 저도 여기 장학금 받아서 왔구요, 해외 나와 본 건 이게 처음이에요!’하고 받아치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마트에서는 아무리 비싸도 찍소리 못하고 사면서 왜 시장에서만 이럴까. 물론 시장은 정찰제가 없기 때문에 손해 볼까 싶은 마음에 괜히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하지만 시장에서 사면 마트에서보다 쌀 때가 훨씬 더 많다. 머쓱해져서 돌아서는 나를 불러 세워 결국 원하는 값에 물건을 살 수는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뒤 나는 웬만하면 값을 깎지 않는다.


 ‘한국에게는 비싸지 않다’는 말을 웃어넘기려다 그래도 이건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학생들에게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베트남 물가가 싼 것은 맞지만 한국인도 한국인 나름이라고, 돈이 많은 사람도 있지만 오랜 기간 돈을 모아서 다낭에 여행 오는 사람도 있다고. 그리고 한국에는 해외여행을 한 번도 못 해 본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설명했다. 나 역시도 집에 돈이 많아서 해외봉사 나온 게 아니고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라 가족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나온 것이라고, 그마저도 일하면서 2년 동안 쓸 돈을 모아 놓고 나온 거라고 얘기했다. 그러니 돈이 많든 적든 사람들에게 함부로 바가지 씌우거나 당신은 돈을 펑펑 써도 괜찮다는 태도로 대하면 그 사람들이 베트남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지 않게 될 거라고 당부했다.


 가볍게 얘기한다는 게 호소에 가까운 어조로 말해 버렸다. 요즘 인터넷에 ‘바가지 씌우는 상인 참교육’같은 동영상이 올라오던데, 현지 사정을 잘 모르면서 무턱 대고 욕하는 관광객도 문제이고 외국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속이려는 현지인도 문제다. 여행지에서 한두 푼 깎는 것도 나름의 묘미이고 조금 손해보고 사는 것도 추억으로 남길 수 있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사기꾼이나 도둑놈으로 몰고 가면 안 될 텐데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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