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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Oct 15. 2019

[다낭소리] 얄미운 아이들

 얄미운 아이들

 어제는 이상한 꿈을 꿔서 아침부터 마음이 심란했다. 꿈속에서 나는 갑자기 몰려든 학생들 때문에 진땀을 뺐다. 강의실에 자리는 부족한데 아무도 질서를 지키지 않아서 화가 났고, 평소엔 연락 한 번 없이 안 나오다가 오늘은 왜 이러냐고 짜증을 내다가 잠에서 깼다. 거울을 보는데 잔뜩 굳어 있던 꿈속의 내 얼굴이 생각나서 헛웃음이 나왔다. 평소에 조금씩 신경을 건드리더니 꿈에서까지 나를 괴롭히는구나. 


 고질적인 문제다. 의욕은 높은데 꾸준함은 없는 것. 요청이 들어와 뭔가를 시작하면 저들 맘대로 지각하고 결석해버린다. 다음 주는 낫겠지, 사정이 있는 거겠지 하며 기다려도 여름 방학 내내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학생 한 명이 나오더라도 강의를 하는 게 교사의 자세'라고 생각해 왔지만 연락 없이 안 나오는 학생들은 여전히 기운을 쪽 뺀다. 열심히 강의를 준비했는데 대다수가 말없이 안 나와 버릴 때는 허탈했다. 아까워서 화가 났다. 준비해 간 인쇄물이, 달달거리는 프린터 앞에서 쏟은 시간이, 오래된 복사기 앞에서 전원을 몇 번씩 껐다 켜며 끙끙댄 내 수고가….


 애초에 선착순으로 정해진 인원만 받았으니 꾸준히 참석할 마음이 없다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도 신청하지 말았어야 했다. 한 번쯤은 열심히 나와 보든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넘기든가, 못 나오는 날엔 그 흔한 아프다는 핑계라도 대든가! 그럼 나는 또 모르는 척 속아 줄 텐데…. 신청 후 얼굴 한 번 못 본 학생들이 너무 많다. 연락 없이 안 나오다가 가뭄에 콩 나듯 마음대로 드나드는 학생들은 또 어떻고. 한두 번도 아니고 오늘은 몇 명이나 올지 예상할 수가 없으니 늘 같은 실망을 반복하게 된다. 못 나오면 미리 말하라고 해도 요지부동. 그 맘을 이해할 수 없다.  


 오늘은 생각을 정리해서 학생들에 다시 한 번 공지했다. 고향에 가서든 아르바이트 때문이든 못 나오는 날엔 미리 얘기를 하라고, 쉬고 싶거나 공부하기 싫은 날에는 얘기하고 푹 쉬라고, 뭐든 좋으니 인원수에 맞춰서 수업 준비를 할 수 있게 미리 알려만 달라고. 앞으로 무단결석이 세 번이면 더 이상 내가 하는 동아리에 참여할 수 없다고 주의를 줬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속상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한 건지, 내가 너무 엄한 사람인건지. 애초에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다고 한다. 맘 편히 살려면 ‘그럴 수도 있지’하는 마음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게 덜 힘들다. 그걸 알면서도 지금껏 씨름하는 나도 참 고집이다. 


 하지만 나는 ‘베트남이야. 얘들 원래 그래.’하고 넘기기가 싫었다. 그렇게 판단하고 포기해버리는 것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이건 책임감과 배려에 관한 문제이니까, 적어도 이것만큼은. 그러니 내일 또 뼈아프게 실망할지라도 오늘은 오늘의 기대를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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