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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Nov 01. 2019

[다낭소리] 타지에서 아플 때

 타지에서 아플 때

 지독한 감기에 걸려 버렸다. 그제부터 몸이 으슬으슬해서 뜨끈한 국물에 밥과 약을 챙겨 먹었는데도 낫지 않았다. 아침 7시 수업이라 힘을 쥐어 짜내 3시간 수업을 마치고 그대로 집에 와서 뻗었다. 잠깐 눈을 붙이고 다시 시험 감독을 하러 학교로 갔다. 그 뒤로는 암전.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몸이 그대로라 약속을 취소하고 끙끙대며 누워 있었다. 오후 2시까지 비몽사몽간에 누워 있다가 약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밥을 챙겨 먹었다. 양치질을 하는데 토기가 들었다. 토하기는 싫어 입을 다물고 숨을 쉬니 침이 줄줄 나왔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변기를 붙잡고 고개를 숙였다. 입을 벌리자마자 토가 나왔다. 그렇게 수차례 하고 나니 오히려 속이 편했다. 


 오늘도 세차기 비가 내린다. 이렇게 열심히 내리는 비는 오랜만이라 반갑기도 하고 비가 와서 더 아픈 건가 싶어 웃음이 난다. 난방텐트 안에 들어가 전기장판을 틀고 누웠다. 비가 멈추지 않는다. 


 감기는 다 나은 것 같다가도 기승을 부려 안심할 수가 없다. 어젯밤에 기침이 멈춰서 드디어 끝인가 싶었는데 아침이 되니 다시 시작된다. 벌써 몇 알의 약을 삼켰는지 모르겠다. 누워만 있는 게 지겹다. 이제 슬슬 수업 준비도 하고 다음 주를 시작할 힘을 내야 하는데 도무지 기운을 차릴 수가 없다. 우기 때 장염이 유행이라더니 내가 딱 그 짝인가 싶다. 감기 몸살과 배탈이 겹쳐 온몸의 힘이란 힘은 다 빠지는 것 같다. 


 덩달아 전기도 말썽이다. 오전에 잠깐 30분간 정전이라더니 오후 4시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참다 참다 집주인에게 말했더니 고치러 왔다. 두꺼비집을 몇 번 만지자 전구가 깜박거린다. 예감이 안 좋다. 


 전기가 잠깐 들어왔다 또 정전이다. 이번엔 집주인도 어쩔 수 없는지 기다리라는 말만 하다. 한 시간을 기다리니 날이 어둑해져서 밥을 짓거나 다른 활동을 하기도 어렵다. 며칠째 계속된 비에 하늘마저 흐리다. 내가 예상 했던 봉사자의 삶은 이런 것이었지만 막상 겪어보니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간 내가 너무 편히 살아서 더 불편하게 느끼는 걸까? 얼마 전 호주로 국외여행을 다녀 온 동기가 임지로 돌아가기 싫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런 불편함이 지겨워서였겠지. 


 나는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봉사자의 삶을 살아보겠다고 결심했으면서도 ‘집 편한 게 제일’이라는 마음으로 생활비의 10분의 1을 주거비로 더 보태서 살고 있다. 언제나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지만 내가 이토록 편리함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던가. 모처럼 만의 정전이 별 생각이 다 들게 만든다. 


 화요일에 시작된 감기가 토요일 밤까지 이어진다. 휴가도 취소하고 전기장판 위에서 내리 잠만 잤다. 장장 5일을 내리 아프니 이제는 애가 탄다. 다음 주 수업과 동아리도 준비해야 하고 협력활동 예산안을 짜서 사무소에 제출해야 하는데 도무지 힘이 나지 않는다. 나는 하필 왜 이럴 때 아픈 걸까.


 타지에서 아프면 서럽다는 말이 있다. 살아보니 서럽기보다는 곤란할 때가 더 많았다. 몸이 아파도 당장 해야 할 일들이 있고 나를 대신해 줄 사람은 없다. 체력이나 컨디션이 따라 주지 않으면 울면서라도 해야 하기에 가능하면 아프지 않으려고 한다. 베트남에서도 건강을 열심히 챙겼다. 날이 쌀쌀해지면 따뜻한 차도 자주 마시고 냉방병이 무서워서 머리가 살짝 아프다 싶으면 에어컨도 끄고 살았다. 추위에 약한 나를 알고 온수 매트와 난방텐트까지 챙겨왔다. 


 그런데 지난 설 연휴가 시작될 때도 한 번 크게 아프더니 이번에도 그런다. 내가 담당하는 과목의 시험이 끝난 날 저녁부터 아픈 걸 보니 평소에 긴장하고 있던 몸과 정신이 풀어졌나 보다. 내 몸이 스스로 아파도 될 만할 때를 골라 앓는 건가 싶어서 어이가 없다. 크게 잔병치레 안 하는 것을 의지하며 살아왔는데 갑자기 아프니 당황스럽고 몸을 좀 더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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