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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Nov 01. 2019

[다낭소리] 라면은 처음이라

 라면은 처음이라

 어제 1학년 수업 후 학생들이 나가지 않고 한참 토론을 했다. 뭔가 싶어서 봤더니 학교에서 하는 한글날 행사 준비 회의였다. 우리학교는 한 학년을 세 반으로 나누는데 이번 행사 때 1,2학년 각 반마다 부스를 설치해서 음식을 판매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크게 복잡하거나 조리법이 위험하지 않은 것으로 선생님들이 몇 가지 메뉴를 정하면 학생들이 골라서 만드는 식이다. 


 현재 나는 2학년과 1학년 high quality반을 담당하고 있다. 1학년 우리 반 학생들이 담당한 것은 라면. 회의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지켜보고 있는데 내게 라면 끓이는 법을 물어 본다. 잉? 그냥 냄비에 물 붓고 끓이면 되는데? 이게 무슨 수타면도 아니고 조리법이 따로 있나 싶어서 간단히 말했더니 자기들이 생각한 것은 그게 아니란다. 보여주는 사진을 보니 어디 식당에서나 팔 법한 해물 라면이다. 편성된 예산이 얼마냐고 물어보니 한화로 약 2만 5천원. 50인분을 준비해야 하는데 이 돈이면 라면만 사도 끝난다. 


 턱도 없겠다 싶어 학생들에게 다시 설명했다. 라면이라는 게 간단히 먹으려면 시중에서 판매되는 봉지에 있는 것만 넣고, 기호에 따라 계란이나 다른 재료를 넣고 끓이면 되는 거라고. 그리고 지금 갖고 있는 돈으로 TV에 나오는 것처럼 끓이는 것은 무리니 양파와 버섯만 넣으면 어떻겠냐고 하니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이참에 우리 집에서 같이 라면을 끓여 보자고 했다. 라면보다야 선생님 집에 놀러간다는 생각에 더 신났겠지만 어쨌든 다들 좋아했다. 


 오늘, 동아리를 마치고 정문에 가니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롯데마트로 가서 한국 라면을 사기로 했다. 라면을 몇 개나 사면 좋을지 물어보니 이미 8개를 샀다고 한다. 50인분이라면서 8개가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가서 확인하기로 했다. 나는 지금 사러 가는 건 줄 알았는데 어제 미리 구입해놨단다. 그럼 굳이 마트에 왜 가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따라갔다. 


 마트에 가서 학생들이 샀다는 라면을 눈으로 확인했다. 베트남 회사에서 만든 한국식 라면인데 여러 개가 한 묶음으로 되어 있었다. 이렇게 8 봉지를 샀다는 말이구나 싶어 안도했다. 한국 음식을 선보이는 자리라 당연히 한국 라면을 살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그럼 타산에 맞지 않는다. 


 예산이 적다 보니 아쉬움도 있다. 싸고 구하기 쉬운 재료로 바꿔 버리기 때문에 본 맛이 나지 않는다. 산적 같은 경우도 단무지와 맛살은 빼고 햄은 소시지로 바꾼다. 이해가 되지만 한편으로는 ‘이걸 과연 한국 음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처음 맛보는 사람들이 한국 음식에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들었다. 


 현재 베트남에는 한식당이 많다. 한국인이 직접 운영하는 곳은 값이 비싸 주로 한국인만 찾는다. 베트남 사람들이 자주 가는 곳은 베트남 식당에서 한국 음식을 현지화 해서 판매하는 곳이다. 현지인의 입맛에 맞게 부러 바꾸는 것도 있지만 몇몇 경우는 제대로 된 조리법을 몰라서 혹은 보다 구하기 쉽고 값싼 재료를 이용하기 때문에 맛이 변해 버린다. 그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한국어학과에서 준비하는 한글날 축제에서도 이렇게 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진작 알았으면 후원금이라도 좀 내거나 미리 학생들을 집으로 불러 같이 요리하는 시간을 가졌을 텐데. 


 아쉽지만 오늘 만난 학생들에게 만이라도 제대로 된 맛을 보여 주고파 한국 라면을 구입했다. 라면에 넣을 버섯을 사는데 새송이버섯 두 개 든 한 봉지가 1800원이었다. 시장에서 사면 훨씬 싸긴 하지만 다들 배가 고픈 상태라 시장 가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마트에서 장을 보려던 참이었다. 내가 버섯을 사겠다고 하자 다들 비싸다며 만류한다. 그보다 더 싼 1200원짜리 팽이버섯을 사자고 했는데 그것도 가격이 다른 두 종류가 있어서 한참 말이 오갔다. 마트에 온 김에 이것저것 먹이고 싶어서 학생들에게 뭘 살까 물어보니 다 싫단다. 내가 돈 쓰는 것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지 싶다.


 집에 와 라면을 끓였는데 그만 푹 퍼져 버렸다. 계란을 많이 넣어서 그런지 이것저것 설명하느라 불 끌 타이밍을 놓쳐서 그런지 모르겠다만 ‘망했다’소리가 절로 나왔다. 다행히 학생들은 내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모른 척 해주며 맛있게 먹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다시 한 번 끓였다. 이번엔 성공!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다 의도한 그림이었던 것처럼 부연 설명을 덧붙인다. 내일 판매할 때는 이렇게 면발이 덜 익었을 때 건져내고 손님이 올 때마다 국물만 부어주라고 일러 주었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맛을 보여주고 싶어서 계속 소량으로 요리했다. 세 번째로는 짜장 라면을 끓이고 마침 집에 있던 군만두도 튀겼다. 아까 라면을 끓였을 때는 사진 찍기 바쁘더니 이번에는 소스 비비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기 바쁘다. 한인마트뿐 아니라 베트남 슈퍼에도 버젓이 한국 라면이 있지만 막상 그걸 먹어 봤거나 자주 먹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베트남 식당에서 판매하는 라면을 먹어 보면 면발이 두껍고 덜 쫄깃한 현지식 한국 라면을 사용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비싸서가 아닐까 싶다. 이런 것을 보면 한국어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한국 음식을 소개하고 맛보여 줄 의무감도 든다. 


 1학년 학생들이고 개강한 지 4주 밖에 지나지 않아서 한국어로 소통할 수는 없지만 나의 짧은 베트남어로도 대화가 이어져서 감사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척척 알아들어 주는 학생들 덕에 절로 이런저런 얘기가 튀어 나왔다. 계속 나를 귀엽다 예쁘다 해주는 학생들 덕에 민망하면서도 즐거웠다. 학생들과 얘기하다 보면 별 거 안 해도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내일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아침 7시에 모인다고 해서 급히 집에 보냈다. 하숙집에 가서 먹으라고 약과를 하나씩 쥐어주자 학생 하나가 자기는 이걸 못 먹겠다고, 추억으로만 간직하겠다고 한다. 그 마음이 예쁘고 귀여워서 남은 약과를 다 털어 주었다. 다행히 학생 한 명당 두개씩 꼭 맞게 돌아갔다. 하나는 간직하고 하나는 먹으라고 했더니 다들 깔깔댄다. 


 시간이 늦어 급히 아이들을 내보내려는데 갑자기 가방에서 말린 망고며 바나나를 꺼내 온다. 아까 마트에서 산 게 분명하다. 계산할 때 학생 두 명이 안 보이기에 어디 갔냐고 물으니 처음엔 모른다고 하다가 나중엔 롯데마트에 온 게 처음이라 구경하고 있다고 대답했었다. 미안해서 고민하다가 학생들 나름 성의 표시를 한 것이니 기쁘게 받기로 했다. 


 고맙다고 인사하자 자기들이 더 고맙다고 하며 품에 폭 안긴다. 키는 나보다 더 큰데 열여덟, 열아홉 살이라 그런지 마냥 동생 같고 애기 같다. 한 명 한 명 꼭 안아주며 잘 가라 인사하고 나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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