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매번 다음 달에, 다음 주에 하다가 결국 임신 30주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기가 꼭 40주를 꽉 채우고 나오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이제는 출산 준비를 해야 했다. 근데 왜 이렇게 귀찮은지, 준비해야 되는 양이 많다 보니까 더 엄두가 안 났는지 모른다.
육아용품보다 더 먼저 준비해야 하는 게 바로 출산가방이다. 병원에서 거의 일주일, 조리원에서 이주일, 도합 3주 정도 되는 시간을 밖에서 숙박하기 때문에 장기여행 간다고 생각하고 짐을 싸야 한다. 이 출산가방을 준비하는데도 처음부터 용어의 벽에 막혔다. 무압박양말이 대체 뭐람. 알아보니 분만을 하고 나면 원래보다 몸이 훨씬 붓기 때문에 기존 양말을 신을 경우 압박감이 심해서 봉제선이 부드럽게 되어있는 양말을 말하는 거였다.
그다음 준비해야 하는 건 뽀로로통에 담긴 보리차물. 제왕절개 수술을 하고 난 뒤 목을 들면 안 되기 때문에 뭔갈 마시기 힘든데 물을 쮸압쮸압 빨아먹을 수 있는 이 뽀로로물통이 좋다고 한다. 이렇게 새롭게 알게 된 정보를 취합하고 짐을 차곡차곡 쌓다 보니 24인치 캐리어도 꽉 찰 만큼의 짐이 현재진행형으로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쌓여가는 택배박스를 보니 출산가방은 얼추 준비되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육아용품이 진정한 새로운 세계의 시작이었다. 육아용품 중 가장 큰 지출을 차지하는 유모차와 카시트. 직접 구매하는 방법이 있고 일정기간 동안 대여하는 방식이 있다. 남편이나 나나 둘 다 남의 것 보다 우리 것 쓰는 걸 중시하기 때문에 대여나 당근마켓을 이용하는 건 패스하고 육아용품 전문점에 다녀왔다. 들어가자마자 족히 50대는 되어 보이는 유모차와 카시트들에 압도되었다. 아주 친절하게 하나씩 설명해 주시는데도 30분이 넘어가니 점점 집중력을 잃어가고 피곤해서 동공이 풀려가기 시작했다.
웨딩플래너가 있듯이 출산플래너는 없나요...?
아직도 쇼핑몰 가면 베이비 코너는 파워워킹으로 지나쳐서 아웃백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우리. 육아용품 전문점에서 피곤에 절어 집에 도착한 남편과 나는 역할 분담을 하기로 했다. 평소에 고가의 물건이나 전자제품 리뷰 보는 걸 즐기는 남편이 유모차, 카시트 등 비교적 고가 육아용품들을 전담하고 (무엇을 사든 알아서 사라고 했다.) 자잘한 건 비교적 금방 잘 주문하는 내가 손수건, 아기옷 등 기타 용품을 맡기로 했다.
나는 오늘도 거즈손수건과 엠보손수건의 차이가 무엇인지 공부했고, 내일은 겉싸개와 속싸개가 뭐가 다른지, 언제 필요한 건지 알아보려고 한다. 매일 진행 중인 육아용품의 홍수 속에서 스트레스받을 때도 있지만 문득 서랍을 열면 빼꼼히 보이는 손바닥만 한 아기모자를 볼 때면 '귀여워...' 하며 미소 지으며 다시 힘을 내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