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성
참을성이라는 덕목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 참을성과 관련해 많이 회자되는 말이다. 고금을 통해 참을성의 덕과 관련한 이야기는 많다.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반면 갖추기 어려운 덕목이기 때문일 것이다. 참지 못해 일을 그르쳤던 기억 한 두 개쯤은 누구나 갖고 있다. 참을성이라고 하면 종교적인 측면에서 일반화 되어 있을 듯 하다. 삶의 채우지 못한 필요를 기도와 인내로 견뎌낸다. 기적처럼 응답받았다는 류의 스토리는 아직도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클리셰이다. 절대자의 뜻에 비추어 영적으로 더욱 성숙하려는 노력 역시 인내가 밑바탕이 된다.
참을성과 관련해서 '마시멜로우 실험' (1960' 월터미셸 Walter Mischel)이 많이 알려져 있다. 자기통제력이 있으면 삶이 성공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이 실험의 결론이다. 합리적 선택에 대한 미래의 더 큰 보상의 기대 즉, 기회비용이다. 기회비용은 명시적 비용과 암묵적 비용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매몰비용은 제외된다. 시급 3만 원의 아르바이트 대신 친구를 만나 1만원을 소비하면서 놀았다고 하면, 명시적 비용 1만 원과 포기한 아르바이트 시급 3만 원을 더해 기회비용은 4만 원이 된다. 매몰비용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매몰비용의 예로 '콩코드의 오류'를 꼽는다. 70년대 오일 쇼크로 채산성이 급격하게 악화되었지만, 막대한 개발비가 투자되었던 콩코드의 운항을 멈출 수 없었다. 콩코드 노선은 매몰비용이 아까워 적자 운항을 지속하다가 2003년에 중단되었다.
마시멜로 후속 실험
참을성이 덕목으로 여겨지던 시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하고 있다. 1960년대에 처음 실시했던 마시멜로 실험에서 가장 오래 참았던 아이들은 눈을 가리거나 머리를 팔에 대고 엎드려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식탁에서 등을 돌렸고, 노래를 부르거나, 손장난을 치거나, 시간이 빨리 지나가도록 하려고 잠을 청하는가 하면, 식탁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아이도 있었다는 것이다. 미셸 연구팀은 이에 착안해 후속 실험에서는 다른 조건들은 동일하게 한 뒤, 마시멜로를 테이블 위에 그대로 올려 두거나 또는 보이지 않게 덮개로 덮어두는 조건을 만들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기다리는 동안에 재미있는 생각을 하고 있으라고 지시를 받는 경우와 나중에 받을 두 개의 마시멜로를 생각하고 있으라고 지시를 받는 경우로 나누는 조건을 만들기도 했다. 실제로 후속 실험의 결과는 놀라웠다. 마시멜로를 그대로 올려둔 조건에서는 평균 6분 정도를 기다렸지만, 덮개로 덮어두자 11분이 넘는 시간을 기다렸다. 게다가 재미있는 생각을 하고 있으라고 지시받은 아이들은 평균 13분 정도를 기다릴 수 있었고, 기다린 다음에 받게 될 두 개의 마시멜로를 생각하라고 지시받은 아이들은 4분이 채 되지 않은 시간 내에 마시멜로를 먹어버렸다. 아이들이 15분의 시간을 버티지 못한 것은 유혹을 멀리하는 전략을 미처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마시멜로 실험은 어릴 때부터 스스로 마음을 통제할 수 있도록 경험을 통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연구이다. 절제력은 어린 시절의 훈련을 통해 평생을 이롭게 하도록 만드는 인간의 ‘강점’인 것이다
세태 변화에 따른 참을성 교육의 필요성
요즘은 과거에 비해 참을성이 없어졌다고 이야기 한다. 이러한 경향은 전 세대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참지 못해 일어나는 우발적 분노 범죄가 해가 갈수로 늘고 있다. 이것을 개인적 책임으로 볼 것인지 사회적 책임으로 확장해야 할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어느 쪽이 됐던 참을성이 주는 사회적 공익을 생각하면 이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은 공감을 얻고 있다. 성장 속 경쟁에 내몰리면서 배려와 나눔의 미덕을 잃어왔다. 원칙은 큰 목소리에 눌려왔고 팍팍한 삶은 생활의 피로도를 높여왔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인내하려는 생각은 고리타분하게 여겨진다.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눈 앞의 마시멜로를 놓칠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진득함이 느림과 나태함으로 여겨지면서 부작용이 나타난다. 출산율 저하, 과다한 입시 비용, 분노 범죄의 증가, 노사갈등, 원칙의 부재 등이 그것이다.
2011년 7월 22일 오후,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의 정부청사에서 폭탄이 터진다. 그리고 얼마 후 오슬로 북서쪽 30km에 위치한 우퇴위아 섬에서 무차별 총기난사 테러가 발생한다. 그 섬에서는 집권여당인 노동당의 청소년 캠프가 진행 중이었고, 섬을 오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페리 밖에 없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오슬로와 우퇴위아 섬에서 총 7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최근에 본 영화 '7월 22일'의 내용이다. 이 모든 테러는 단 한 사람,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에 의해 실행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여러가지 느낀 점이 있었지만, 주제에 국한해본다면, 이 사건에 대응하는 노르웨이 사회의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영화 말미에 총리가 책임을 통감하고 유족들에게 사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유족들은 총리의 책임이 아니라 테러범의 책임이라며 총리에게 국정 수행을 잘 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범인은 법정최고형을 받았으나 방이 3개가 있는 공간에서 홀로 지낸다고 한다. 2014년 기사에 의하면 그는 ‘대중과 좀 더 소통할 수 있게 해줄 것’, ‘지금 있는 플스2를 플스3로 바꿔줄 것’, ‘더 많은 성인용게임과 안락한 의자나 소파를 제공해 줄 것’ 등을 포함한 12가지의 요구를 하였다고 한다. 노르웨이 사회가 보여준 테러에 대한 대응방식이 좋다고만은 할 수 는 없다. 국민들의 침착한 대응은 오랫동안 쌓아온 국가와 제도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International Social Survey Programme의 2008년 내용중에는 세계 주요 국가 34개국의 국가별 대인신뢰도가 나오는데 덴마크와 노르웨이, 스웨덴이 가장 높은 신뢰도를 보였다. ‘귀하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체로 신뢰할 수 있다‘ 또는 ’항상 신뢰할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의 비율이 노르웨이의 경우 80%(2위)에 가깝다. 한국은 40%(평균 이하)에 못 미친다.
이제는 바뀌어야 할 빨리빨리 문화
해외를 여행하다보면, 사회 인프라나 공적업무의 처리 속도에 있어서 한국을 따라잡을 나라는 몇 안될 것이라 느낄 때가 많다. 아마도 우리의 빨리빨리 기질이 참을성이 부족한 부작용을 낳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말도 빨리, 식사도 빨리, 운전도 급하게 하다보니 심지어 컴퓨터 부팅속도에도 속터져하곤 한다. 이렇다 보니 인쇄된 긴 글을 꼼꼼하게 끝까지 읽어 내려갈 참을성이 부족한 사람들도 늘고 있다. 웹페이지를 빠르게 오가며 요지를 빠르게 파악하려고 대강의 눈대중으로 훑어보는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성들이 쌓여 참을성 없는 학문, 참을성 없는 성과로 사회와 조직들을 모래성 처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새해에는 속도보다는 참을성 있는 우리가 되어 내실있는 공동체로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참고 자료
이음(2018. 12). 영화 '7월 22일', 나는 신뢰가 그립다. [cited 2019. 1. 9.]
박동수(2018. 3). '기회비용'만 알면 하수, 고수는 'OOO'비용을 생각한다! [cited 2019. 1. 9.]
이고은(2014. 4) '마시멜로 효과...우리가 잘 몰랐던 후속 실험들. [cited 2019. 1. 9.]